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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58)공중 우세 이바지 정완채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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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민간 항공기 정비 기술 펼치고파 군 입대
승호리 철교 목숨 건 폭격 전술로 기어이 성공
71년 후 지금 훌쩍 성장한 공군 보니 자랑스러워

 

정완채 옹이 공군1전투비행단 T-50 고등훈련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완채 옹이 공군1전투비행단 T-50 고등훈련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6·25전쟁에서 우리 공군은 수적 열세를 이겨 내며 난무하는 대공포와 자욱한 포연을 뚫고 영공을 누볐다.
공중에서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온 공군 참전용사들은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됐다. 지난 11일 100세가 된 정완채 옹도 항공기 정비사로서
6·25전쟁에 참전해 아군의 공중우세(Air superiority)에 이바지했다. 쉰여덟 번째 ‘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는 정옹이 들려준 공군의 6·25전쟁을 바탕으로 썼다.
이 글을 그의 100번째 생일 선물로 바친다. 글=김해령/사진=양동욱 기자 


출격전투기 정비·무장 임무 수행

“이름은 정!완!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건립 직후, 9월 18일 병2기 육군항공사령부에 입대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1일 공군이 독립해 1전투비행단 정비사로 근무했습니다!”

지난 9일 공군 광주기지에서 만난 정옹은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큰소리로 이 같이 외쳤다. 100세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패기였다.

정옹은 20대 초반 중국 소하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했다. 광복 이후엔 연마한 항공기 정비 기술을 조국을 위해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 군에 입대,
육군항공창 함흥분창에서 동료들과 기술을 공유하는 등 정비 능력을 연마하며 군의 항공력 발전을 위해 일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항공기 정비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정옹에게 6·25전쟁의 기억을 물었다. 그러자 지그시 눈을 감으며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뗐다.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하고, 여의도공항에서 근무하던 중에 전쟁이 발발했죠.
새벽에 기습해온 북한군 전투기들이 여의도 비행장 격납고를 마구 폭격했습니다. 당시 주말이라 많은 이가 휴가를 나간 상황이었죠.
북한군 전투기는 영등포역에도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북한군에 밀린 우리 공군은 수원, 대구를 거쳐 진해비행장까지 후퇴했다.
정옹은 진해비행장에 있을 때 목격한 딘 헤스 미 공군대령(당시 소령)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헤스 대령은 ‘한국 공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미 6146기지부대 부대장으로서 한국 공군 건설 작전인 ‘바우트 원(Bout One)’은 물론 250여 회를 출격하며
6·25전쟁 초기 항공작전을 주도했다.

“헤스 소령이 탄 F-51D 전투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선명합니다.
우리(한국 공군)가 F-51D 10대를 인수해 올 당시 헤스 소령이 교관이어서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그 때 헤스 소령이 사천비행장에서 정비, 비행 교육을 했었습니다.”


 

정옹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온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옹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온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항공기 정비사 드물었던
1940~1950년대
중국 소하 항공기 제작소서
일한 경험 살려
1전투비행단 근무

여의도공항 근무하던 중 6·25전쟁 발발
미 공군 500소티 출격에도 실패한
북 중요 보급 루트 차단 작전 인계 받아
450m 초저고도 폭격, 철교 폭파 성공

국산 T-50 고등훈련기 
비행 모습 보니 가슴 벅차 올라
국내 비행기 제작 기술
‘일류 국가’ 넘어
‘일등 국가’ 되리라 믿어"


참전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기억 남아

헤스 대령과 장병들의 노력으로 한국 공군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그는 6·25전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꼽았다.
이는 1952년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나흘에 걸쳐 한국 공군이 벌인 폭격작전이다. 승호리 철교는 당시 북한군의 가장 중요한 보급 루트였다.

승호리 철교는 주위 산악지형과 빽빽히 배치된 북한군의 대공화기 때문에 번번히 파괴작전에 실패했던 곳. 미 공군도 총 500소티나 출격했음에도 파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 공군 조종사들은 기필코 폭파하겠다는 다짐으로 초저고도 폭격전술을 택했다. 기존 3000피트(약 900m) 폭탄 투하에서 1500피트(약 450m)로 변경한 것이다.
결국 윤응렬 장군 등 우리 공군은 폭탄 12발과 로켓탄 20발, 기총 4700여 발을 퍼부으며 승호리 철교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제가 1전투비행단 예하 10전투비행전대에 복무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미 공군도 성공하지 못한 임무를 인계받은 우리 조종사들은 죽을 각오로 작전에 임했어요. 저는 정비와 무장지원을 하며 조종사들을 도왔습니다.
10명의 조종사는 정비사와 무장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갖춰 놓은 전투기를 타고 목숨을 건 저공비행을 했죠. 모두가 알다시피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정말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정옹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전쟁에서 정비사와 무장사로 근무했다. 정비반장과 무장반장 직책을 달고 대(對)이북작전 출격전투기 무장총책임 등 전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성공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5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앞서 지식과 기술로 작전 수행에 일조했다는 공로로 1951년 9월에도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정옹은 특히 이근석 장군(당시 계급 대령) 역시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공군비행단장이었던 이 장군은 아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이근석 대령이 기억에 선합니다.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 수백 대를 앞세워 밀고 내려오고 있어 급박한 상황이었어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교육만 받고 출격한 이 대령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작전에 임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 탱크를 향해 돌진했죠.
공군의 안타까울 정도로 열악한 상황과 이 대령의 투혼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공군 정비 요원들이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의 주역이자 6·25전쟁 당시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51D를 정비하고 있다. 국방일보DB
공군 정비 요원들이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의 주역이자 6·25전쟁 당시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51D를 정비하고 있다. 국방일보DB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공군 자랑스러워”

이날 부대 초청으로 1전투비행단에 온 정 옹은 국산항공기 T-50 고등훈련기의 비행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나라가 만들어 낸 제트전투기를 보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특히 저도 정비반장으로 임무를 수행한 만큼 정비사 역할의 막중함을 잘 알고 있는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후배들이 막중한 임무를 잘 해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특히 그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공군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훌륭한 비행기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은 이제 일류 국가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해 나가 전 세계 일등 국가가 되어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