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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군대에서의 "집합"을 시켰던 이야기~~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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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저는 80년 9월에 입대를 하여 기초 훈련(4주)과 특기 훈련(4주:보급)을 마치고 오산에 있는 30단을 경유하여 서산의 망일산 싸이트로 80년 11월경에 자대를 발령 받았답니다.

서산으로 간이유는 "연고지 배치"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곤 했지요~~

왜냐면 고향이 "충남 연기군"이였고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갔기 때문인듯 했답니다.

 

거기에서 약6개월 동안 혹독한 고생을 하다가 운좋게도 오산(실제는 송탄시 인데 활주로가 오산고 거의 붙여 있음)의 bx로 발령을 나서 거기에서 근무를 약23개월정도 하다가 6개월을 남기고 제주도 모슬포(못살포)로 떼를 써서 전출을 갔지요.

때문에 사병이 이렇게 3번을 전출을 다닌 선,후배가 없을 정도로 전례가 없는 군대 생활을 했나 봅니다.

 

이렇게 몇군데를 전전 하다 보니 졸병 시절에 엄청히 맞기는 했지만 고참때에는 제데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제대를 한셈이지요.

제주도에서는 혼자 이불을 깔기도 하고 게기도 했으니까요~~

중간의 상병들은 "이렇게 하면 군대의 위계 질서가 무너진다"고 하면서 졸병들한테 이불을 깔고 게고 하게 하라고 했지만 나만 "치외법권"을 인정을 해달라고 오히려 졸병들 한테 사정을 하면서 말년의 6개월을 보내곤 했답니다.

 

이만 각설하고~~

오산의 bx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군대 생활이 밤이 되면 외롭기도 했답니다.

때문에 밤이 되면 bx 내의 서점에 있는 책을 몰래 꺼내서  읽곤 했지요.

그중에 당시 "인간 시장"(김홍신) 시리즈 전권을 읽기도 하였답니다.

그런가 하면 옆에 장교 식당에 근무를 하는 사병과 같이 있는 일도 많아 졌고요~~

근데 한가지 큰 단점을 내무반 생활을 하고 있는 졸병 들이 고참으로 인정을 해주지도 않은다는 것이였답니다.

보급품인 세수 비누나 치약,수건 같은 것을 1년이 지나도 단 한개를 갖다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리 소속의 졸병 인데도 인사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지요~~

 

보다 못한 저는 상병 고참한테 한번 "경고"를 주었으나 이내 고쳐 지지가 않아서 한번 "전체 집합"을 bx로 시킨적이 있었답니다.

밤이 야심한 시간에 각목으로 치는 "빳다"소리에 놀라서 당직 장교가 찾아 왔지만 "다치지 않게 잘 때려라~~나는 모르는채 할테니"라고 하고 가시더군요~~

그때 당시 가깝게 지낸 326기 후배는 갑자기 설사가 나온다며 집합을 면하는 잔머리를 굴려서 기꺼이 허락을 해주기도 한기억이 난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다음 부터는 이사람 저사람이 너무 많이 신경을 써주곤 하여 이래서 우리나라 군대는 구타가 존재 해야 하고 "팽이 근성이 있나 보다"라는 사실을 실감 할 수 있었답니다.

하긴 저도 고참중에 유독 집합을 잘거는 고참은 아주 잘해 줄 수 밖에 없음을 인정 하고도 남고요~~

 

아무튼 이런 이후에는 두번 다시 집합을 한번도 안시키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타를 하였고 이내 제대를 하고 말았답니다.

지금은 때린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지만 맞은 사람은 오랫동안 기억이 나곤 할겝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지 막지 하게 때린 것을 아니고 사실 각목은 소리만 요란 하지 아프지는 않다는 것을 졸병때 맞아봐서 잘알고 있답니다.

오히려 망일산에서 갑자기 감정을 억누루지 못하고 옆에 있는 나무를 꺽어서 그것도 술이 취한 상태에서 구타를 하면 잘못 맞을 확율도 있어서 아주 어려움을 겪을 수 도 있지요~~

 

이제는 제대한지 26년이 지나감에 따라서 이모두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답니다.

근데 당시 졸병들은 내가 집합을 하여 때린 기억을 하고나 있을까요??

이제는 그때 당시의 졸병들과 같이 늙어 가고 있는데 말이죠~~

******************끝**************

  • 오은진 2009.06.03 23:18:47 삭제
    부용면 매포역 뒤쪽 마을에 살았고,대전으로 그등핵교 다녔는데,통학했으면 알만 하겄네요.나보다 2년반 먼저 군대간 친구 34개월 먼저간 친구들 보고 탈영하고 싶은 추억이 잇었습니다.
  • 임준선 2009.06.01 12:01:09 삭제
    오선배님도 못된 헌병이셨나 봅니다
    망일산헌병들 영탑리과수원(운산가는 길옆)
    따블백메고가서 엄청나게 작살내던데
    오선배님도 그중 한명이셨나 봅니다
    힘들게 농사진거 그렇게들 해도되나 모르겠네요
  • 문경언 2009.05.29 13:08:59 삭제
    ㅎㅎㅎㅎㅎ
    아름다운 추억담 잘보구 갑니다...^ㅎ^
  • 吳南七 2009.05.27 19:37:00 삭제
    음,,,,,, 망일산 참좋은곳 입니다,,,36년전의 추억이 아련하게 다가오네요...우리때는 구타라는 용어자체가 없엇는디....
    그냥 타작한다고 햇지...
    망일산 중턱에서 엘에무지 메고서 뛰어올라가던 생각이...ㅎㅎㅎ
    그리고 정문앞 과수원집은 우리 과수원이엇는디... 개도 안짓어요,,,헌병들이 가면,,,ㅎㅎ
  • 정재호 2009.05.27 17:27:07 삭제
    우째들 그러셨을까요..
    저는 말년에 집합을 없앴답니다..
    확인은 잘 안되었지만..
    때려야 말을 듣는 세대들이셨나요??ㅎㅎ
    글 잘보고갑니다..
  • 임준선 2009.05.27 17:43:17 삭제
    집합!!!
    말도마십쇼
    대한민국에서 집합이 가장많은곳
    망일산 관제중대
    afternoon 근무후는 향상 자동집합
    집합후 이어지는 기수빳다,줄빳다...
    그러다보니 졸병들은
    향상엉덩이와 팬티가 붙어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