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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제1편 후보생대대 이야기
이**
|Views 802
|2007.01.27
한많은 공군이야기 제1편 <후보생대대>
재수를 중도포기하고 집에 몰래 응시하였으나 1차합격후 집에 신원조회가 와서 들통이 나자
형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대를 하게 되었다
<*우리기수 이전에는 대학졸업자들 중에서 선발하였으나 공군사상 처음으로 고교졸업자를 선발하였음 당시 조종사수요가 부족하였고 이스라엘공군 흉내를 좀 내볼려고 했던 일 >
1975년1월5일 포플러가 길게 늘어진 대전교육사령부 동문을 통해 사복을 입고 들어갔더니
각종 확인절차를 끝내자 마자 보급대로가서 군복을 주더군요 주섬주섬 다블백에 담아 교련시간에 배운 앞으로가 구령에 맞춰 내무반으로 가서 짐을 풀고 다시 기지병원에가서 주사도 맞고 신체검사등등 입교절차후 저녁에 내무반에서 각종 피복에 주기를 하는데 그 작업이 늦었다는 이유로 첫 빤스바람 집합 훈육관께서 군복이 그리 쉽게 입는것이 아니라는 일장훈시를 했지만 귀에는 안들어오고
금방이라도 집으로 가고 싶더군요 멀리 전파사에서는 그당시 유행하던 Lobo가 부른" Stony"란 팝송이 구슬피 울리고 ...아 첫날밤 암호는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개성" "문산"
아침에 일어나니 왠 젊은이들이 창밖에서 냉수마찰을 하고 있네요 <그녀석들은 저희랑 함께 시험을 치렀으나 운좋게 3개월먼저 입교한 조종사관23기 선배님들 1기수 선배라고 디게 괴롭혔음>
그로부터 빡쎈 3개월간의 기본군사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항공병학교의 다른 과정들과는 달리 저희는 항상 배낭을 메고 훈련장을 헤매고 다녔으며
주식576그램 부식 252그램 합께 878그램의 일용할 양식과 점호후 수양록 작성시 주는 꽈베기 1개외에는 다른 음식물의 섭취는 금하게 되어있었는데 배가 엄청 고팠습니다
하루는 동기생이 쥬시후렛쉬껌을 1통구해 왔길래 몰래 잠자리에서 반조각씩 나눠 먹던중 훈육관 양아무개중위가 코를 킁킁거리며 "이게 무슨냄새야"로 들통이나 밤에 빤스바람 뺑뺑이 ...이핑게 저핑게로 밤마다 한번씩 빤스바람에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질 않았지요
다 과거지만 당시로서는 무지무지한 고통이었다우
귀에는 동상이 걸려 진물이 나고
그래도 비행기 탈 수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길 3개월여 어느듯 수료가 가까워 오자
기본군사훈련이 끝나면 1박2일간의 외출이 허용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더군요
그날이 되자 점심을 먹는데 중대장이 식당에 와서
빨리 식사하고 외출 나가야지 하는말에 먹느둥 마는둥 내무반으로가 구두닦고 멋을 내고 있는데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집합이란 명령이 하달
후다닥 (맨날 집합은 선착순)뛰쳐 나갔으나 5명만 세우고 나머지는 246병동을 돌아와 선착순
그럭저럭 선착순집합이 마무리되자 중대장 하모대위가 단위에 올라와 하는 말씀
너희 동기생중 이러저러한 위반자가가 있었다는 훈시
내용인즉 기본군사훈련 끝나면 외출 보내준다고 몰래 편지를 띄웠는데
서신검열에 걸렸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연설하며 특별훈련을 실시하겠다나
그래 군대는 외출보낼때 기합을 줘서 보낸다 더라며 서로를 위로하며 토요일 오후를 빡빡기었는데
어느듯 해는 서산에 기울고 보내주진 않고 저녁식사시간 저녁밥 먹으면 보내 주려나 했으나
또다시 기합으로 일관하더군요 그래저래 학수고대했던 하루는 저물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는 왜 그리도 집이 그리운지 겪으신분들은 다들 이해하시겠지요
기본군사훈련 수료후 통신학교와 기술학교에서 2개월간 교육중
박대통령이 그 무슨 긴급조치인가를 발동하면서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저는 당시 나이가 되질않아 투표권이 없었으나
찬성하라는 교육 받고 투표가 끝나자 마자 중대장이 또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와
"그렇게도 교육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중대에서 2명의 반란표가 있었다"며
국민투표일 쉬는날 오후를 완전히 기합으로 채웠답니다
참 지금에서야 보면 어이없는 일이었지요 ㅎㅎㅎ
조종사로서의 정비교육과 통신교육을 받은후
항공생리교육과 생환교육에 들어갑니다
제2편 <생환교육 항공생리교육>을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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