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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27>행복하게살고싶었다.
김**
|Views 603
|2005.08.03
팜데일 기도원에서 생긴 일
어느 날부터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던 싸움도 지겨워지고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면 ‘오늘 퇴근 후에 어떻게 싸움을 할까, 어떻게 대꾸해 주어야 하나’를 연구하곤 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이혼하기로 작정하고, 그날 저녁에는 싸움을 하고 화해를 하지 않은 채 다음날 출근을 해버렸다. 밤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우리 집 앞에는 큰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그 소나무 밑에 있어야 할 아내의 흰색 차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이층 침실에 올라가 보니 베개 위에 노란 편지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지를 보는 순간,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쫙 빠졌다. 그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당시 미주한국일보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광고란에서 보았던 문구들이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 엄마, 모든 문제 해결됐다. 어서 돌아오시오. 아이가 우니 어서 돌아오시오. 전부 내 잘못이오. 당신 소원 다 들어 줄 터이니 어서 돌아오시오.”
당시 가부장적인 한국 남편들의 태도를 참지 못해 집을 나간 아내들이 많았다. 아내가 집을 나간 후에야 남편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며 애절하게 아내를 찾곤 했다. 이제 그런 일이 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에 싹 사라지고 혼자서는 도저히 이민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들을 혼자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게다가 내가 아내를 내친 것도 아니고 아내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기가 막혔다. 갑자기 무릎에 힘도 빠지고…….
과연 저 베개 위에 있는 편지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편지에 뭐라고 써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을…….”
마음을 졸이며 침대 머리맡으로 걸어가 편지지를 집어 들고 제일 처음에 씌어 있는 글씨를 보는 순간…….
편지는 “아빠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실감했다. “아빠야!”라는 글을 보는 순간 힘이 빠져 오들오들 떨리던 무릎에 힘이 생기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다시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아내의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아빠야! 내가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3박 4일간 기도원에 가 있을게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회개기도 많이 하고 올 거예요. 꼭 응답받고 올 게요. 처음으로 당신을 떨어뜨려 놓고 집을 떠나니 마음이 아프지만, 반찬 다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거르지 말고 식사 맛있게 하세요.”
죄를 회개하고 응답받고 돌아온다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야! 큰일날 뻔했구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아내에게 잘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때 마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 부인 길눈 어둡다는 사실 잊었냐?”
나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른 사람보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다. 동서남북 구분을 잘 못하고 도로 찾는 법을 잘 몰랐다. 그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마귀는 또 이렇게 속삭였다.
“집도 잘 못 찾는 네 부인이 언제 한번 기도원에 가 본 적 있냐? 그리고 기도원에 갔는지 다른 곳에 갔는지 알게 뭐야?”
사실 우리는 5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낮에 드리는 주일예배 이외의 다른 예배에는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한 번 드리는 주일예배조차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다. 예배를 드리겠다고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할 뿐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일쑤고 일부러 딴생각을 하며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졸다가 그냥 오는 것도 아니었다. 내 옆자리에는 보험회사에 다니는 집사님이 앉곤 했는데, 같은 교회 집사님이라 보험에 가입도 해주고, 아내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해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분은 꼭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이제 나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축도도 받지 않고 빨리 나가자는 것이었다. 축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옆에 앉을 때는 축도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축도도 받지 않고 아내를 혼자 두고 그분을 따라 바깥에 나오면, 얼른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빨리 담배를 피웁시다.”
당시 나는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피웠는데 예배드리는 동안 못 피운 것을 생각해 담배를 연거퍼 두 대를 피우고 나면 핑그르르 살짝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커피를 마셨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때는 못 마십니다. 빨리 마시자구요.”
집사님의 권유에 따라 커피까지 마시면 그날 교회에서 할 일은 다 마치는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아내는 친구 간호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 할 일을 다한 나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아내를 재촉했다.
“야야! 빨리 가자.”
나는 아내가 친구들과 교제 한 번 마음껏 하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이다.
그런 신앙상태인 내게 마귀가 불안한 마음을 심어 주니 그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기뻤던 마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날 밤 잠을 설치고, 이튿날 아침 일찍 담임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이 아주 반갑게 받았다. .
“목사님, 혹시 기도원 주소를 아십니까?”
“아! 알지요. 기도하러 가시려고요?”
목사님들은 성도가 변화를 받고 기도하러 가는 게 그렇게 좋은지 매우 기뻐하시면서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기도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기도원 약도를 받아 기도원으로 향했다.
5번 고속도로로 북상해 올라가다 팜데일로 바꾸어 타고 가는 중간에 팜데일 미국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주위에 한국 기도원이 많지만 당시에는 팜데일 미국 기도원 하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이 기도원에서 많은 한국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
아침 10시 30분경에 기도원에 도착해 보니 닭소리도 나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는 등 기도원 기분이 절로 났다. 다행히 아내의 흰색 차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차를 세우자마자 트렁크를 열고 항상 싣고 다니는 성경책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주일날 교회에 갈 때만 보았던 성경책을 손에 들고 가려니 왜 그리 쑥스러운지……. 사실 성경책은 주일날 외에는 한 번도 들춰 본 적이 없었다. 형식적인 믿음을 갖고 있던 나는 그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지를 툭툭 털어 들어가곤 했다. 교회 성도 행세는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성경책을 꺼내 옆에 끼고 뚜벅뚜벅 기도실로 향했다. 아내가 회개한다고 편지에 쓴 것을 보니 나한테 용서를 비는 줄 알고 ‘3박 4일까지 있을 필요가 뭐 있겠나’ 하고 생각했다. 괜히 고생할 필요 없이 오늘 같이 내려가자고 데리러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성경책을 들고 들어가 기도하는 아내 옆에 앉아 기도하는 척하다가 목소리를 깔면서 “수고했다. 내려가자. 괜찮다. 부부 간에 싸움은 칼로 물베기지” 하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기도실 앞으로 가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에코 음향같이 울리는…….
“너, 이놈!”
에코처럼 울리는 큰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갑자기 머리칼이 확 섰다.
“너 같은 죄인이 감히 어디라고 이곳에 와서 들어오려고 하느냐. 아 아 아 아 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사선을 넘나들었던 북파요원 출신 아닌가. 그런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 얼른 뒤돌아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차에 올라앉아 평생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집사람 새 사람 되어서 내려오게 해주세요, 저는 갑니다.”
그리고 기도원을 빠져 나왔다. 더 이상 그 장소에 있을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또 무섭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왜? 우리는 자주 싸워야 했는가?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 때문에 싸웠다. 아내는 십일조를 내자고 하고 나는 죽어도 못 내겠다고 하고……. 그런데 내 입에서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아이구 하나님, 내 것 다 가져가이소. 그리고 우리집에 웃음소리만 나게 해주이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술 먹고 운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운전을 하느라 차선을 지키지 못하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입으로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찬송가를 부를 줄도 할 줄도 몰랐다.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를 때면 그냥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존심은 있어서 입만 움직이면서 찬양을 부르는 척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찬양이 나오는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울면서 목이 터져라 찬양을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날은 토요일, 기도원에서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나는 아내가 몹시 기다려졌다. 기쁨으로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 아내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돌아오면 꼭 껴안아 주리라.
미국에서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토요일이 되면 정원에 나와 잔디를 깎는다. 그날도 나는 옆집에 살고 있는 미국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막 잔디를 깎고 있었다. 10시 반쯤 되었을 때 아내의 차가 집 앞에 와 멈췄다.
나는 어찌나 반가운지 두 손을 들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는 깜짝 놀라며 차키를 가슴에 끌어안으면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내가 활짝 웃으면서 맞이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런 상의 없이 처음 남편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운데다가 불 같은 내 성격을 너무도 잘 알기에 큰일 치르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단지 사랑스러운 아내를 빨리 안아 주고 싶은 마음에 빨리 오라고 손짓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얼른 뛰어가 겁에 질려 있는 아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혹 옆집에 사는 미국인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얼른 거실로 들어갔다.
기도원에 간 아내는 하나님께 완전히 매달렸다. 3박 4일 동안 금식을 한다는 것이 금식에 대한 지식이 없어 단식을 해버렸다고 했다. 3박 4일 동안 식사도 안 하고 물도 안 마시고 잠도 안 자고 기도만 하다 온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눈물로 회개하는 자를 품에 안아 주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었다. 아내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났으며 뿐만 아니라 기도 응답을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여보, 여보! 나 응답받았어요!”
아내는 기도원에서 아주 신령한 목사님을 만났다고 했다. 목사님은 아내에게 친절하게 신앙 상담을 해주기도 했는데, 기도원에서 내려올 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자매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제 자매님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콧방귀를 뀌었을 텐데 “그래, 알았다. 당신 뜻대로 다해라”라고 말해 주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답받았다는 말에 그런 반응이 보일 사람이 아닌데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기도원을 찾아갔으며, 기도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아! 그렇게 됐구나.”
그제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할렐루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야, 바로 이거구나. 행복이 바로 이거구나.”
어느 날부터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던 싸움도 지겨워지고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면 ‘오늘 퇴근 후에 어떻게 싸움을 할까, 어떻게 대꾸해 주어야 하나’를 연구하곤 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이혼하기로 작정하고, 그날 저녁에는 싸움을 하고 화해를 하지 않은 채 다음날 출근을 해버렸다. 밤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우리 집 앞에는 큰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그 소나무 밑에 있어야 할 아내의 흰색 차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이층 침실에 올라가 보니 베개 위에 노란 편지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지를 보는 순간,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쫙 빠졌다. 그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당시 미주한국일보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광고란에서 보았던 문구들이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 엄마, 모든 문제 해결됐다. 어서 돌아오시오. 아이가 우니 어서 돌아오시오. 전부 내 잘못이오. 당신 소원 다 들어 줄 터이니 어서 돌아오시오.”
당시 가부장적인 한국 남편들의 태도를 참지 못해 집을 나간 아내들이 많았다. 아내가 집을 나간 후에야 남편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며 애절하게 아내를 찾곤 했다. 이제 그런 일이 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에 싹 사라지고 혼자서는 도저히 이민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들을 혼자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게다가 내가 아내를 내친 것도 아니고 아내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기가 막혔다. 갑자기 무릎에 힘도 빠지고…….
과연 저 베개 위에 있는 편지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편지에 뭐라고 써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을…….”
마음을 졸이며 침대 머리맡으로 걸어가 편지지를 집어 들고 제일 처음에 씌어 있는 글씨를 보는 순간…….
편지는 “아빠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실감했다. “아빠야!”라는 글을 보는 순간 힘이 빠져 오들오들 떨리던 무릎에 힘이 생기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다시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아내의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아빠야! 내가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3박 4일간 기도원에 가 있을게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회개기도 많이 하고 올 거예요. 꼭 응답받고 올 게요. 처음으로 당신을 떨어뜨려 놓고 집을 떠나니 마음이 아프지만, 반찬 다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거르지 말고 식사 맛있게 하세요.”
죄를 회개하고 응답받고 돌아온다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야! 큰일날 뻔했구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아내에게 잘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때 마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 부인 길눈 어둡다는 사실 잊었냐?”
나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른 사람보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다. 동서남북 구분을 잘 못하고 도로 찾는 법을 잘 몰랐다. 그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마귀는 또 이렇게 속삭였다.
“집도 잘 못 찾는 네 부인이 언제 한번 기도원에 가 본 적 있냐? 그리고 기도원에 갔는지 다른 곳에 갔는지 알게 뭐야?”
사실 우리는 5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낮에 드리는 주일예배 이외의 다른 예배에는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한 번 드리는 주일예배조차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다. 예배를 드리겠다고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할 뿐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일쑤고 일부러 딴생각을 하며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졸다가 그냥 오는 것도 아니었다. 내 옆자리에는 보험회사에 다니는 집사님이 앉곤 했는데, 같은 교회 집사님이라 보험에 가입도 해주고, 아내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해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분은 꼭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이제 나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축도도 받지 않고 빨리 나가자는 것이었다. 축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이 옆에 앉을 때는 축도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축도도 받지 않고 아내를 혼자 두고 그분을 따라 바깥에 나오면, 얼른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빨리 담배를 피웁시다.”
당시 나는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피웠는데 예배드리는 동안 못 피운 것을 생각해 담배를 연거퍼 두 대를 피우고 나면 핑그르르 살짝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커피를 마셨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때는 못 마십니다. 빨리 마시자구요.”
집사님의 권유에 따라 커피까지 마시면 그날 교회에서 할 일은 다 마치는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아내는 친구 간호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 할 일을 다한 나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아내를 재촉했다.
“야야! 빨리 가자.”
나는 아내가 친구들과 교제 한 번 마음껏 하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이다.
그런 신앙상태인 내게 마귀가 불안한 마음을 심어 주니 그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기뻤던 마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날 밤 잠을 설치고, 이튿날 아침 일찍 담임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이 아주 반갑게 받았다. .
“목사님, 혹시 기도원 주소를 아십니까?”
“아! 알지요. 기도하러 가시려고요?”
목사님들은 성도가 변화를 받고 기도하러 가는 게 그렇게 좋은지 매우 기뻐하시면서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기도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기도원 약도를 받아 기도원으로 향했다.
5번 고속도로로 북상해 올라가다 팜데일로 바꾸어 타고 가는 중간에 팜데일 미국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주위에 한국 기도원이 많지만 당시에는 팜데일 미국 기도원 하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이 기도원에서 많은 한국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
아침 10시 30분경에 기도원에 도착해 보니 닭소리도 나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는 등 기도원 기분이 절로 났다. 다행히 아내의 흰색 차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차를 세우자마자 트렁크를 열고 항상 싣고 다니는 성경책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주일날 교회에 갈 때만 보았던 성경책을 손에 들고 가려니 왜 그리 쑥스러운지……. 사실 성경책은 주일날 외에는 한 번도 들춰 본 적이 없었다. 형식적인 믿음을 갖고 있던 나는 그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지를 툭툭 털어 들어가곤 했다. 교회 성도 행세는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성경책을 꺼내 옆에 끼고 뚜벅뚜벅 기도실로 향했다. 아내가 회개한다고 편지에 쓴 것을 보니 나한테 용서를 비는 줄 알고 ‘3박 4일까지 있을 필요가 뭐 있겠나’ 하고 생각했다. 괜히 고생할 필요 없이 오늘 같이 내려가자고 데리러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성경책을 들고 들어가 기도하는 아내 옆에 앉아 기도하는 척하다가 목소리를 깔면서 “수고했다. 내려가자. 괜찮다. 부부 간에 싸움은 칼로 물베기지” 하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기도실 앞으로 가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에코 음향같이 울리는…….
“너, 이놈!”
에코처럼 울리는 큰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갑자기 머리칼이 확 섰다.
“너 같은 죄인이 감히 어디라고 이곳에 와서 들어오려고 하느냐. 아 아 아 아 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사선을 넘나들었던 북파요원 출신 아닌가. 그런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 얼른 뒤돌아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차에 올라앉아 평생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집사람 새 사람 되어서 내려오게 해주세요, 저는 갑니다.”
그리고 기도원을 빠져 나왔다. 더 이상 그 장소에 있을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또 무섭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왜? 우리는 자주 싸워야 했는가?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 때문에 싸웠다. 아내는 십일조를 내자고 하고 나는 죽어도 못 내겠다고 하고……. 그런데 내 입에서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아이구 하나님, 내 것 다 가져가이소. 그리고 우리집에 웃음소리만 나게 해주이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술 먹고 운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운전을 하느라 차선을 지키지 못하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입으로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찬송가를 부를 줄도 할 줄도 몰랐다.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를 때면 그냥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존심은 있어서 입만 움직이면서 찬양을 부르는 척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찬양이 나오는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울면서 목이 터져라 찬양을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날은 토요일, 기도원에서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나는 아내가 몹시 기다려졌다. 기쁨으로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 아내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돌아오면 꼭 껴안아 주리라.
미국에서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토요일이 되면 정원에 나와 잔디를 깎는다. 그날도 나는 옆집에 살고 있는 미국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막 잔디를 깎고 있었다. 10시 반쯤 되었을 때 아내의 차가 집 앞에 와 멈췄다.
나는 어찌나 반가운지 두 손을 들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는 깜짝 놀라며 차키를 가슴에 끌어안으면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내가 활짝 웃으면서 맞이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런 상의 없이 처음 남편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운데다가 불 같은 내 성격을 너무도 잘 알기에 큰일 치르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단지 사랑스러운 아내를 빨리 안아 주고 싶은 마음에 빨리 오라고 손짓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얼른 뛰어가 겁에 질려 있는 아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혹 옆집에 사는 미국인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얼른 거실로 들어갔다.
기도원에 간 아내는 하나님께 완전히 매달렸다. 3박 4일 동안 금식을 한다는 것이 금식에 대한 지식이 없어 단식을 해버렸다고 했다. 3박 4일 동안 식사도 안 하고 물도 안 마시고 잠도 안 자고 기도만 하다 온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눈물로 회개하는 자를 품에 안아 주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었다. 아내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났으며 뿐만 아니라 기도 응답을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여보, 여보! 나 응답받았어요!”
아내는 기도원에서 아주 신령한 목사님을 만났다고 했다. 목사님은 아내에게 친절하게 신앙 상담을 해주기도 했는데, 기도원에서 내려올 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자매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제 자매님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콧방귀를 뀌었을 텐데 “그래, 알았다. 당신 뜻대로 다해라”라고 말해 주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답받았다는 말에 그런 반응이 보일 사람이 아닌데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기도원을 찾아갔으며, 기도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아! 그렇게 됐구나.”
그제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할렐루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야, 바로 이거구나. 행복이 바로 이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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