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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20>팬티바람 난동사건
김**
|Views 681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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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전대의 전설, 팬티 바람 난동사건
오류동 2325전대 헌병대에는 ‘팬티 바람 난동사건’이라는 오랜 세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새벽 6시경 느닷없이 헌병대 내무반에 비상이 걸렸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전대원들에게 팬티 바람으로 헌병대 앞마당으로 집합을 하라는 주번사령 공사 O기생 S대위(첩보대 작전과 근무)의 명령이었다.
이유는 병29기생인 헌병대 근무자 세 명이 제대를 사흘 앞두고 토요일 외출을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귀대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단 이탈자가 생긴 데 대한 헌병대 내무반 연대기합이라고 했다. 당시 일반 장교들은 헌병들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주번이 걸릴 때마다 꼭 앙갚음을 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 따라 항상 주말을 지키기 위해 내무반장 역할을 하던 나도 덩달아 팬티 바람으로 집합을 했다.
3월이라 아직 춥기만 한 새벽, 잠결에 영문도 모르고 뛰어나와 ‘엎드려 뻗쳐’를 하자 그제야 잠이 깨고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어찌나 추운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런데 주번사령 S대위가 저쪽 왼쪽에서부터 빳다 다섯 대씩 무조건 쳐오고 있었다. 아비규환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처음 맞은 헌병은 다섯 대를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아예 쭉 뻗었다. 순간 나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잠자던 오류동 깡패중대 김 상사의 본성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아무리 미귀대자가 생겼고 단체기합이라도 해도 이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날벼락도 아니고 밤새 초소 근무를 한 어린 헌병들이 새벽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팬티 바람에 빳다를 맞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앞으로 튀어나갔다.
“빳다 못 때립니다.”
“뭐, 이 자식! 너 깡패중대 김 상사란 놈이지? 임마 너 나 우습게 보지 마, 오늘 네 버릇을 완전히 고쳐 주마, 너부터 맞아, 엎드려!”
S대위는 우리 부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다른 장교들이 헌병대 내무반에 깡패중대 김 상사라는 성질 더러운 놈이 있는데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자, 자기가 버릇을 고칠 테니 두고보라고 하면서 별러 왔다는 것이었다. 미귀대 사건은 나를 잡기 위한 꼬투리에 불과했다.
“못 엎드립니다.”
“왜 못 엎드린다는 거야?”
“예, 저는 치질이 있어서 빳다 못 맞습니다.”
“뭐? 이 자식!”
그가 빳다를 들어 내 어깻죽지를 내리치려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옛날 깡패중대 김 상사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러자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엎드려 있던 헌병들은 팬티 바람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오들오들 떨고, 바로 근처에 있던 정문초소 헌병도 떨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우리 부대와 미군부대 식당 쓰레기를 가로질러 소달구지를 끌고 들어오던 부대 앞 오류 고아원 달구지꾼이 놀라 쏜살같이 소를 몰고 도망쳐 돌아갔다.
헌병대 무기고에서 총을 끄집어내려는 순간 장교 숙소에서 내려온 영내거주 장교들과 팬티 바람으로 달려든 수많은 헌병들에게 제지를 당해 결국 정신을 잃은 채 침대에 와서 누워야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보통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하극상으로 인정되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아침 출근시간이 되었다. 헌병대장 안양 중위, 선임하사관 장창선 상사, 작전계장 최윤학 중사(나중에 헌병장교로 임관되었다고 들었음)가 내 소식을 듣고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모두 나를 두둔해 줬다. 그런데 사태 수습이 큰 문제였다.
부대장은 즉각 참모회의를 비상소집했다. 헌병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군법 회의는 면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전을 성공시킨 공로가 인정되었고 성격이 난폭하게 된 원인이 참작되었으며, 부하를 아끼는 의협심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진 사건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똑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지만 영창에 넣어야 한다고 결론이 나 결국 자대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다.
깡패중대 김 상사가 영창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러나 형식적인 영창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선후배들은 물론 수송반, 보급계, 미군 PX 담당자, 미군식당 주방장들의 면회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나면 운동한다는 핑계로 근무 헌병과 함께 뒷산으로 산책 나갔고, 밤에는 영창문을 따고 나와 내무반에서 자고……. 고지식한 근무 헌병만 “아이고! 선배님, 이러다 걸리면 저는 어떡해요?”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3일 만에 영창에서 나와 다시 헌병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헌병대는 다른 일반 병과 장교들이 와서 간섭을 못하는 그야말로 치외법권 지대가 되었다. 헌병들은 깡패중대 김 상사를 내무반장으로 모신 덕분에 살맛난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산에 있는 30관제경보전대 헌병대로 발령이 났고, 곧 포항 대보 헌병대로 배속되어 포항으로 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S대위가 요직에 있는 동기생들에게 연락을 해 내 버릇을 반드시 고쳐 놓으라고(원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20년 전 S대위가 미국 내가 살고 있는 L.A에서 조그마한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간 나를 보고 너무 놀라고 불안해하기에 내가 예수를 영접한 이야기며 S대위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키고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은 오히려 좋은 추억이었다고 운을 떼며 오류동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자 그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면서 놀라워했다. 우리는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내가 만난 예수를 꼭 만나시라고 권면하면서 헤어졌다.
그후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마켓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에서 내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듣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옛날과 너무나 달라진 나를 보고 ‘무엇이 깡패중대 김 상사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독일로 떠난 후에 나는 S대위님이 변화를 받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집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아마 장로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다.
2325전대의 전설, 팬티 바람 난동사건
오류동 2325전대 헌병대에는 ‘팬티 바람 난동사건’이라는 오랜 세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새벽 6시경 느닷없이 헌병대 내무반에 비상이 걸렸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전대원들에게 팬티 바람으로 헌병대 앞마당으로 집합을 하라는 주번사령 공사 O기생 S대위(첩보대 작전과 근무)의 명령이었다.
이유는 병29기생인 헌병대 근무자 세 명이 제대를 사흘 앞두고 토요일 외출을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귀대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단 이탈자가 생긴 데 대한 헌병대 내무반 연대기합이라고 했다. 당시 일반 장교들은 헌병들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주번이 걸릴 때마다 꼭 앙갚음을 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 따라 항상 주말을 지키기 위해 내무반장 역할을 하던 나도 덩달아 팬티 바람으로 집합을 했다.
3월이라 아직 춥기만 한 새벽, 잠결에 영문도 모르고 뛰어나와 ‘엎드려 뻗쳐’를 하자 그제야 잠이 깨고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어찌나 추운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런데 주번사령 S대위가 저쪽 왼쪽에서부터 빳다 다섯 대씩 무조건 쳐오고 있었다. 아비규환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처음 맞은 헌병은 다섯 대를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아예 쭉 뻗었다. 순간 나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잠자던 오류동 깡패중대 김 상사의 본성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아무리 미귀대자가 생겼고 단체기합이라도 해도 이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날벼락도 아니고 밤새 초소 근무를 한 어린 헌병들이 새벽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팬티 바람에 빳다를 맞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앞으로 튀어나갔다.
“빳다 못 때립니다.”
“뭐, 이 자식! 너 깡패중대 김 상사란 놈이지? 임마 너 나 우습게 보지 마, 오늘 네 버릇을 완전히 고쳐 주마, 너부터 맞아, 엎드려!”
S대위는 우리 부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다른 장교들이 헌병대 내무반에 깡패중대 김 상사라는 성질 더러운 놈이 있는데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자, 자기가 버릇을 고칠 테니 두고보라고 하면서 별러 왔다는 것이었다. 미귀대 사건은 나를 잡기 위한 꼬투리에 불과했다.
“못 엎드립니다.”
“왜 못 엎드린다는 거야?”
“예, 저는 치질이 있어서 빳다 못 맞습니다.”
“뭐? 이 자식!”
그가 빳다를 들어 내 어깻죽지를 내리치려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옛날 깡패중대 김 상사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러자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엎드려 있던 헌병들은 팬티 바람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오들오들 떨고, 바로 근처에 있던 정문초소 헌병도 떨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우리 부대와 미군부대 식당 쓰레기를 가로질러 소달구지를 끌고 들어오던 부대 앞 오류 고아원 달구지꾼이 놀라 쏜살같이 소를 몰고 도망쳐 돌아갔다.
헌병대 무기고에서 총을 끄집어내려는 순간 장교 숙소에서 내려온 영내거주 장교들과 팬티 바람으로 달려든 수많은 헌병들에게 제지를 당해 결국 정신을 잃은 채 침대에 와서 누워야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보통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하극상으로 인정되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아침 출근시간이 되었다. 헌병대장 안양 중위, 선임하사관 장창선 상사, 작전계장 최윤학 중사(나중에 헌병장교로 임관되었다고 들었음)가 내 소식을 듣고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모두 나를 두둔해 줬다. 그런데 사태 수습이 큰 문제였다.
부대장은 즉각 참모회의를 비상소집했다. 헌병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군법 회의는 면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전을 성공시킨 공로가 인정되었고 성격이 난폭하게 된 원인이 참작되었으며, 부하를 아끼는 의협심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진 사건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똑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지만 영창에 넣어야 한다고 결론이 나 결국 자대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다.
깡패중대 김 상사가 영창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러나 형식적인 영창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선후배들은 물론 수송반, 보급계, 미군 PX 담당자, 미군식당 주방장들의 면회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나면 운동한다는 핑계로 근무 헌병과 함께 뒷산으로 산책 나갔고, 밤에는 영창문을 따고 나와 내무반에서 자고……. 고지식한 근무 헌병만 “아이고! 선배님, 이러다 걸리면 저는 어떡해요?”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3일 만에 영창에서 나와 다시 헌병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헌병대는 다른 일반 병과 장교들이 와서 간섭을 못하는 그야말로 치외법권 지대가 되었다. 헌병들은 깡패중대 김 상사를 내무반장으로 모신 덕분에 살맛난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산에 있는 30관제경보전대 헌병대로 발령이 났고, 곧 포항 대보 헌병대로 배속되어 포항으로 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S대위가 요직에 있는 동기생들에게 연락을 해 내 버릇을 반드시 고쳐 놓으라고(원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20년 전 S대위가 미국 내가 살고 있는 L.A에서 조그마한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간 나를 보고 너무 놀라고 불안해하기에 내가 예수를 영접한 이야기며 S대위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키고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은 오히려 좋은 추억이었다고 운을 떼며 오류동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자 그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면서 놀라워했다. 우리는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내가 만난 예수를 꼭 만나시라고 권면하면서 헤어졌다.
그후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마켓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에서 내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듣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옛날과 너무나 달라진 나를 보고 ‘무엇이 깡패중대 김 상사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독일로 떠난 후에 나는 S대위님이 변화를 받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집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아마 장로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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