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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19>깡패중대김상사헌병대로배속되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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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4

깡패중대 김 상사, 헌병대로 배속되다

정보특기로 4년을 근무하고 하사(부사관)로 진급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25첩보부대에서는 특수부대 요원(장교 포함)들과 헌병들 간에 충돌이 잦아서 높은 분들이 여간 골머리를 앓은 것이 아니었다.
요즈음의 공군 편제는 어떤지 모르지만 47년 전에는 버젓이 헌병대가 따로 있어도 일과 중인 낮에는 헌병대장이 통솔하다가 일과 후 헌병대장이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첩보부대 주번사령이 헌병대를 통솔하게끔 되어 있었다. 특히 첩보부대 장교들은 주번사령이 되면 저녁 취침 전에 취하는 일석점호 때 아예 헌병대 내무반에 들어와 괜한 트집을 잡는 등 쑥대밭을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평상시 헌병들로부터 받았던 서운함을 푸는 것이었다. 그러면 헌병들 또한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이튿날 근무 시간 때는 악착스럽게 또 트집을 잡아 골탕을 먹였다. 그러다 보니 헌병대와 첩보부대 간에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군기가 제대로 설 리 없었다.
매일 아침 참모회의 때는 어젯밤 사고 보고를 들은 헌병대장과 주번사령과의 언쟁 때문에 부대장이 골치를 많이 썩었다. 이때 작전과에 근무하던 오인제 대위(말도 파견대장을 할 때 나를 데리고 있었음)가 좋은 의견을 냈다.
“깡패중대 김 상사를 헌병대에 배속시켜 두면 어떨까요? 그러면 헌병대에서도, 첩보부대 장교를 비롯해 대원들도 김 상사를 괄시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나에 관한 이야기는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었다. 때는 마침 겨울이라 작전이 없어 특수부대가 쉬고 있을 때였기에 헌병대로 잠시 가서 근무하도록 했던 것이다.
오인제 대위의 생각은 적중해 내가 헌병대에서 근무하게 된 이후 사고가 줄어들었다. 나는 누가 나를 인정해 주면 목숨을 거는 기질이 있는데, 헌병대장이 인정해 주고 아껴 주자 신이 나서 열심히 충성하게 되었고 사고 없이 헌병대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다. 그후 헌병대장의 끈질긴 요구로 부대장으로부터 허락을 얻어 결국은 첩보부대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매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에어쇼 때는 한강 백사장에서 낙하산을 타야 한다는 조건으로 아예 헌병특기로 전환되어 25헌병대에 배속되어 버렸다.
나는 헌병대장의 보디가드 겸 집안 살림을 도와 드리는(그게 뭔지 다 알 것이다) 일을 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하사관인 내가 고참 병장들이나 하는 내무반장을 해야만 했다. 주말에 있을 사고를 막고 주번사령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영외거주를 했는데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외출도 못 나가고 헌병대 내무반을 지켜야 했으며 그 대신 월요일과 화요일날 외출을 나가야만 하는 웃지 못할 헌병 생활을 했다.
대신 내무반 분위기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내무반장 기합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아랫사람들을 감싸주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취침점호 시간에 주번사령이 헌병대 내무반에서도 점호를 받으려고 우리 내무반으로 들어왔다가 내가 버티고 앉아 있으면, “어? 김 하사, 밖에 안 나갔네……. 요즈음 어때……?” 하고 말을 얼버무리고는 쏜살같이 뒤돌아 나가곤 했다. 그 당시 장교들은 가능하면 나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 괜히 건드려 부스럼내어 진급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지 않은가.
미공군 6006부대와 같이 영내에 있다 보니 많은 미군부대 문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재미있는 군대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