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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16>드디여평양을(2)
김**
|Views 711
|200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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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2)―드디어 평양을 향해!
드디어 평양으로 침투시키기 위해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달이 뜨지 않는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 10시경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를 태우기 위해 번호판을 가린 지프 한 대가 와서 멈추고 위장복을 입은 정보장교 두 사람이 오더니 전과 6범의 눈을 가렸다.
이틀 전 내가 현역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벌써 눈치를 채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내색하지 않고 내 말에 잘 따라준 그가 여간 고맙지 않았다. 그런 그이기에 눈을 가리는 장면을 보는 내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이것이 정이라는 것인가 보다.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는 정보장교가 가지고 온 인민군복을, 나는 중공어선 어부복으로 바꾸어 입었다.
침묵 가운데 옷을 갈아입은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지프에 몸을 실었다. 전속력으로 한 시간쯤 달려왔을까? 차가 멈추고, 우리를 기다리는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든 다른 지프에 옮겨 탔다.
출발은 분명히 경기도 소사에 있는 안전가옥에서 했는데 어디로 달려왔는지 모르는 가운데 또 한 시간을 달려서 또 다른 차에 옮겨 탔다. 캄캄한 밤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달려왔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차로 바꾸어 타고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차가 정지했다. 호송해 온 정보장교가 우리를 조그마한 뗌마에 태웠다. 카누 같은 이 배를 노 젓는 사공은 앞으로 평양 침투 때 북파 공작원을 이북 땅까지 인도해야 하는 최종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는 우리 부대 문관이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새벽 3시경, 소슬바람에 풍겨오는 솔잎 냄새를 봐서는 어느 서해안 송림이 있는 바닷가인데……. 혹시라도 북에 침투했다 북괴군에 잡힌다 해도 어디에서 떠났는지 위치를 모르게 하기 위해 이런 작전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전과 6범, 그는 자신을 침투시키는 이 부대의 소속이 어디며 본부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고는 특수부대라는 것뿐이다. 그는 또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바로 북파요원들의 불문율이다. 오히려 물으면 의심을 받는다.
뗌마에서 옮겨 탄 배는 제법 큰 기관이 딸린 배였다. 배 밑창에 내려가서야 눈에서 수건을 풀어 주었다. 그로부터 8시간 후 백령도 앞바다에 정박해 하루를 묵고 이튿날 오후 5시경 드디어 백령도를 출발했다. 곧바로 평양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일단 배가 공해상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밤 12시를 기해 평양 앞바다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공해상에서의 적지 침투는 큰 배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넓적하게 보이는 정크선(중공 고기잡이 어선)과 배 뒤에 로프로 이은 뗌마를 이용한다. 보기에는 돛단배 같지만 6․25때 사용했던 전투용 구라망 비행기 엔진 두 대가 기관실에 설치되어 있으며, 요란한 비행기 엔진소리를 없애기 위해 쿠룽쿠룽 엔진소리가 나는 @마푸라 베기가스구멍을 물밑으로 깊게 설치해 두어 소리가 물속에서만 들릴 뿐 해상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시속이 80노트(1노트는 한 시간에 1해리〔1852미터〕를 달리는 속도임) 정도이니 물위를 뜨는 배가 아니라 물을 박차고 나가는 비행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카리바-50(공습할 때 사격하는 기관총)과 무반동포(발사시 포신이 후퇴하지 않고 반동이 없는 대포)로 중무장을 한 공작선이었다. 만에 하나 북한 비행기에 우리 배가 노출되면 모두 돛을 올리고 고기잡이를 하는 중공 어부로 변신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밤 12시에 공해상에서 출발한 정크선이 새벽 3시경 적지의 목표지점 2킬로미터까지 달려가서 멈췄다. 드디어 정크선 뒤에 달고 온 뗌마에 노를 젓는 문관과 침투하는 북파요원이 타고, 무언의 인사를 짧게 나누고 공작품(다시 돌아올 때의 접선 방법 및 암호, 총, 식량, 사진기, 증명서 등등)을 인계해 준다.
우리는 북파 공작원을 태우고 들어간 뗌마수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아슬아슬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때로는 뗌마수까지 몽땅 잡히는 수도 있고 때로는 공작원이 침투하자마자 생포됨과 동시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까지 기다리다 뗌마수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배만이라도 철수해야 한다.
다행히 이날은 똄마수가 공작원을 목적지에 무사히 침투시키고 돌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출발하려는데 우리 배를 향해 멀리 양쪽에서 북한 경비정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 공작선이 있는 힘을 다해 속력을 내어 도망 나오던 장면을 생각하면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밤바다의 적막을 깨는 암호 교신소리가 울렸다.
“호랑이 나타났다. 오바.”
“호랑이는 피하라, 작은 차는 버려라, 오바.”
“작은 차는 버려라 오바.”
당시 암호가 호랑이는 경비정이었고, 작은 차는 뗌마였다. 우리는 뒤에 달고 오던 뗌마의 줄을 끊고 전속력을 내어 달렸다. 무게를 줄이고 속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성능이 아무리 좋은 뗌마라도 버려야 했다. 지금은 북에도 그 정도의 성능 좋은 경비정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우리 공작선을 따라잡을 만한 성능 좋은 배가 없었다.
적지의 바다에서 북한 경비정을 따돌리기 위해 몇 시간을 가슴 조였는지 날이 샐 무렵 백령도 앞바다에 왔을 때는 모두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벽 공기를 헤치고 둥근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 속에서 백령도 용기포 부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무전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온 우리 부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해 주는 모습을 보니 피곤이 싹 가셨다. 새벽 고기잡이배를 기다리는 수많은 어부들과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중공 어부들의 모습으로 정크선에서 내릴 때의 기분은 직접 맛보지 않고는 그 스릴을 짐작 못하리라. 나 자신이 봐도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첩보부대원은 작전을 할 때는 힘들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금방 피곤이 사라지고 또다시 다음 작전에 임하게 된다. 이것이 첩보부대원들의 기질인가 싶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서도 내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공해상에서 평양 앞 침투지점(2킬로미터 전)까지 가는 3시간여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선실에는 북파 공작원인 전과 6범이 대기하고 있었고 나는 선상에서 카리바-50에 실탄을 장전하고 또 한 사람은 어깨에 무반동포를 메고 만약을 대비해 경계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카리바-50을 조준하고 있어야 하는데 한 시간 정도 80노트로 달리는 공작선 위에서 바다를 향해 카리바-50을 한 눈으로 조준하며 경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이 욱신욱신 쑤셔오자 나는 또 배짱이 생겼다. 어차피 적지인 바다 위인데, 아픈 눈을 참아가며 부릅뜨고 지키다 보니 오히려 더 불안했다.
‘에잇 모르겠다! 배 위에는 선장과 우리를 인솔하는 정보장교가 연상 망원경으로 어두운 밤바다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또 무반동포를 어깨에 메고 있는 동료가 있지 않는가?’
나는 기관총을 배 위에 그냥 두고 배 밑창 선실로 내려왔다. 전과 6범은 몹시 불안한 듯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하기야 얼마나 불안할까?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얼마 동안 안가에서 생활하면서 정이 많이 들지 않았던가.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북파 공작원이 정말 이 작전을 성공시킬지, 아니 그 전에 오늘밤에 죽을지 살지도 확실치 않을 적지로 들어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우울해서 벌렁 바닥에 드러누워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장난기 섞인 쇼를 하기로 했다. 코를 골면서 잠든 흉내를 냈던 것이다. 이따금씩 코도 드르렁드르렁 골아댔다.
그런데 이 북파 공작원이 침투해서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 나온 것이다. 당시는 침투를 시켰다가 다시 돌아 나올 확률이 아주 적을 때였다. 당연히 심문반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임무를 다 완수할 수 있었느냐는 심문장교의 질문에 함께 안가에서 교육을 받았던 정보요원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나 함께 생활했던 이야기부터 죽 늘어놓았는데, 침투 당시 적지 바다 위에서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좌절해 있던 순간, 그 죽음이 오가는 무서운 적지에서도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배짱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단지 적지에서 지루하고 두려운 마음에서 장난을 쳐본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진술을 계기로 결과는 이상하게 전개되어 나는 작전 잘한다는 소문때문에 어려운 작전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녀야만 했다.
굵고 짧게 멋지고 적게 살기로 작정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젊은 시절, 지금은 모두 다 즐거웠던 추억의 군대생활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2)―드디어 평양을 향해!
드디어 평양으로 침투시키기 위해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달이 뜨지 않는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 10시경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를 태우기 위해 번호판을 가린 지프 한 대가 와서 멈추고 위장복을 입은 정보장교 두 사람이 오더니 전과 6범의 눈을 가렸다.
이틀 전 내가 현역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벌써 눈치를 채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내색하지 않고 내 말에 잘 따라준 그가 여간 고맙지 않았다. 그런 그이기에 눈을 가리는 장면을 보는 내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이것이 정이라는 것인가 보다.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는 정보장교가 가지고 온 인민군복을, 나는 중공어선 어부복으로 바꾸어 입었다.
침묵 가운데 옷을 갈아입은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지프에 몸을 실었다. 전속력으로 한 시간쯤 달려왔을까? 차가 멈추고, 우리를 기다리는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든 다른 지프에 옮겨 탔다.
출발은 분명히 경기도 소사에 있는 안전가옥에서 했는데 어디로 달려왔는지 모르는 가운데 또 한 시간을 달려서 또 다른 차에 옮겨 탔다. 캄캄한 밤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달려왔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차로 바꾸어 타고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차가 정지했다. 호송해 온 정보장교가 우리를 조그마한 뗌마에 태웠다. 카누 같은 이 배를 노 젓는 사공은 앞으로 평양 침투 때 북파 공작원을 이북 땅까지 인도해야 하는 최종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는 우리 부대 문관이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새벽 3시경, 소슬바람에 풍겨오는 솔잎 냄새를 봐서는 어느 서해안 송림이 있는 바닷가인데……. 혹시라도 북에 침투했다 북괴군에 잡힌다 해도 어디에서 떠났는지 위치를 모르게 하기 위해 이런 작전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전과 6범, 그는 자신을 침투시키는 이 부대의 소속이 어디며 본부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고는 특수부대라는 것뿐이다. 그는 또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바로 북파요원들의 불문율이다. 오히려 물으면 의심을 받는다.
뗌마에서 옮겨 탄 배는 제법 큰 기관이 딸린 배였다. 배 밑창에 내려가서야 눈에서 수건을 풀어 주었다. 그로부터 8시간 후 백령도 앞바다에 정박해 하루를 묵고 이튿날 오후 5시경 드디어 백령도를 출발했다. 곧바로 평양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일단 배가 공해상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밤 12시를 기해 평양 앞바다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공해상에서의 적지 침투는 큰 배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넓적하게 보이는 정크선(중공 고기잡이 어선)과 배 뒤에 로프로 이은 뗌마를 이용한다. 보기에는 돛단배 같지만 6․25때 사용했던 전투용 구라망 비행기 엔진 두 대가 기관실에 설치되어 있으며, 요란한 비행기 엔진소리를 없애기 위해 쿠룽쿠룽 엔진소리가 나는 @마푸라 베기가스구멍을 물밑으로 깊게 설치해 두어 소리가 물속에서만 들릴 뿐 해상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시속이 80노트(1노트는 한 시간에 1해리〔1852미터〕를 달리는 속도임) 정도이니 물위를 뜨는 배가 아니라 물을 박차고 나가는 비행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카리바-50(공습할 때 사격하는 기관총)과 무반동포(발사시 포신이 후퇴하지 않고 반동이 없는 대포)로 중무장을 한 공작선이었다. 만에 하나 북한 비행기에 우리 배가 노출되면 모두 돛을 올리고 고기잡이를 하는 중공 어부로 변신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밤 12시에 공해상에서 출발한 정크선이 새벽 3시경 적지의 목표지점 2킬로미터까지 달려가서 멈췄다. 드디어 정크선 뒤에 달고 온 뗌마에 노를 젓는 문관과 침투하는 북파요원이 타고, 무언의 인사를 짧게 나누고 공작품(다시 돌아올 때의 접선 방법 및 암호, 총, 식량, 사진기, 증명서 등등)을 인계해 준다.
우리는 북파 공작원을 태우고 들어간 뗌마수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아슬아슬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때로는 뗌마수까지 몽땅 잡히는 수도 있고 때로는 공작원이 침투하자마자 생포됨과 동시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까지 기다리다 뗌마수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배만이라도 철수해야 한다.
다행히 이날은 똄마수가 공작원을 목적지에 무사히 침투시키고 돌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출발하려는데 우리 배를 향해 멀리 양쪽에서 북한 경비정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 공작선이 있는 힘을 다해 속력을 내어 도망 나오던 장면을 생각하면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밤바다의 적막을 깨는 암호 교신소리가 울렸다.
“호랑이 나타났다. 오바.”
“호랑이는 피하라, 작은 차는 버려라, 오바.”
“작은 차는 버려라 오바.”
당시 암호가 호랑이는 경비정이었고, 작은 차는 뗌마였다. 우리는 뒤에 달고 오던 뗌마의 줄을 끊고 전속력을 내어 달렸다. 무게를 줄이고 속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성능이 아무리 좋은 뗌마라도 버려야 했다. 지금은 북에도 그 정도의 성능 좋은 경비정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우리 공작선을 따라잡을 만한 성능 좋은 배가 없었다.
적지의 바다에서 북한 경비정을 따돌리기 위해 몇 시간을 가슴 조였는지 날이 샐 무렵 백령도 앞바다에 왔을 때는 모두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벽 공기를 헤치고 둥근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 속에서 백령도 용기포 부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무전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온 우리 부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해 주는 모습을 보니 피곤이 싹 가셨다. 새벽 고기잡이배를 기다리는 수많은 어부들과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중공 어부들의 모습으로 정크선에서 내릴 때의 기분은 직접 맛보지 않고는 그 스릴을 짐작 못하리라. 나 자신이 봐도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첩보부대원은 작전을 할 때는 힘들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금방 피곤이 사라지고 또다시 다음 작전에 임하게 된다. 이것이 첩보부대원들의 기질인가 싶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서도 내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공해상에서 평양 앞 침투지점(2킬로미터 전)까지 가는 3시간여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선실에는 북파 공작원인 전과 6범이 대기하고 있었고 나는 선상에서 카리바-50에 실탄을 장전하고 또 한 사람은 어깨에 무반동포를 메고 만약을 대비해 경계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카리바-50을 조준하고 있어야 하는데 한 시간 정도 80노트로 달리는 공작선 위에서 바다를 향해 카리바-50을 한 눈으로 조준하며 경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이 욱신욱신 쑤셔오자 나는 또 배짱이 생겼다. 어차피 적지인 바다 위인데, 아픈 눈을 참아가며 부릅뜨고 지키다 보니 오히려 더 불안했다.
‘에잇 모르겠다! 배 위에는 선장과 우리를 인솔하는 정보장교가 연상 망원경으로 어두운 밤바다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또 무반동포를 어깨에 메고 있는 동료가 있지 않는가?’
나는 기관총을 배 위에 그냥 두고 배 밑창 선실로 내려왔다. 전과 6범은 몹시 불안한 듯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하기야 얼마나 불안할까?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얼마 동안 안가에서 생활하면서 정이 많이 들지 않았던가.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북파 공작원이 정말 이 작전을 성공시킬지, 아니 그 전에 오늘밤에 죽을지 살지도 확실치 않을 적지로 들어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우울해서 벌렁 바닥에 드러누워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장난기 섞인 쇼를 하기로 했다. 코를 골면서 잠든 흉내를 냈던 것이다. 이따금씩 코도 드르렁드르렁 골아댔다.
그런데 이 북파 공작원이 침투해서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 나온 것이다. 당시는 침투를 시켰다가 다시 돌아 나올 확률이 아주 적을 때였다. 당연히 심문반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임무를 다 완수할 수 있었느냐는 심문장교의 질문에 함께 안가에서 교육을 받았던 정보요원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나 함께 생활했던 이야기부터 죽 늘어놓았는데, 침투 당시 적지 바다 위에서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좌절해 있던 순간, 그 죽음이 오가는 무서운 적지에서도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배짱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단지 적지에서 지루하고 두려운 마음에서 장난을 쳐본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진술을 계기로 결과는 이상하게 전개되어 나는 작전 잘한다는 소문때문에 어려운 작전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녀야만 했다.
굵고 짧게 멋지고 적게 살기로 작정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젊은 시절, 지금은 모두 다 즐거웠던 추억의 군대생활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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