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군대이야기
"북파"<15>전과6범기죽이기(1)
김**
|Views 621
|2005.05.07
----------------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1)―전과 6범 기죽이기
특수부대에서 열심히 훈련하던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휴전 북계선에서 기습을 당하고 혼쭐이 난 이후 오히려 작전 잘한다는 소문과 동시에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후방으로 빠진다고 좋아하며 헬리콥터에 실려 후방인 오류동 본부까지는 잘 왔는데, 실컷 얻어터지고 다시 말도로 돌아가면서 본부에서는 깡다구 세고 작전 잘하는 놈으로 통하게 되었다.
오류동 본부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일주일 만에 말도로 돌아온 나를 보고는 모두들 후방에 나가 있는 동안 잘 먹어서 살쪄 왔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 첩보 작전에 꼭 필요한 육군첩보부대 볼음도 파견대장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라는 지령을 받고 그 섬을 찾아갔다가 당연히 그들에게 얻어터지고 돌아와야 할 텐데 본부에서 맞아 생긴 입 안의 상처를 이용해 김 대장을 제압, 우리 문관으로 만들어 볼음도 파견대장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깡패중대 김 상사는 무시무시한 깡다구의 소유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말도에서는 위험한 작전만 생기면 깡패중대 김 상사만 찾아 출동을 시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 번씩 적지의 바다를 누비고 돌아올 때는 ‘이번에도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령도로부터 깡패중대 김 상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와서 결국 또 백령도로 전출을 가야 했다. 백령도에서 열심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또 얼마 안 되어 본부에 새로 생기는 특수부대로 배치되었다. 이것이 낙하산 1기생의 모체다.
낙하산 교육이 끝나자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전과 6범을 교육시키라는 것이었다. 부천 소사 근처에 있는 안가(안전가옥)로 나가 대기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전과 6범에 15년형을 받고 5년 정도 형을 살았다고 하는 전과자를 교육시켰을 때의 멋진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는 당시 30세. 이북 출신, 혈혈 단신으로 성격은 포악하나 의리를 중요시하는 전과자……. 스물세 살이었던 내가 30세인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 교육시켜 백령도를 통해 평양으로 침투시키는 것이 내 임무였다. 물론 형무소로 전과 6범을 찾아간 공작팀장은 안가에 가면 너와 비슷한 감옥 죄수 출신이 있을 테니 같이 교육을 받고 행동을 같이하라고 지시했을 터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경비도 없는 안전가옥이기 때문에 도망갈 마음만 먹으면 그가 나를 죽이고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다. 나는 총도 없고 신분증도 없다. 그는 내가 현역이라는 것조차 전연 모른다. 만약 현역인 줄 알면 그는 나를 당장 죽이고 도망갈 것이다. 나는 다만 전화번호와 암호만 익혀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나이를 30세 정도로 보이기 위해 세수와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전과 6범은 사복을 한 정보장교의 번호판 가린 지프에 실려 안가로 왔다. 나는 방 한쪽 구석에서 요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상을 잔뜩 쓰고 앉아 있었다. 인솔 장교가 돌아가자 전과 6범은 힐끔힐끔 나를 노려보며 힘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반응이 보일지 조바심을 치면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나도 점점 불안해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 별이 여섯 개요.”
범죄자들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선후배를 가리는 위계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만약 전과 5범 이하라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형님, 몰라뵈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는 어려 보이는 이 깡다구는 끗발이 여섯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끄떡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느닷없이 고개를 홱 치켜들고 째려보면서 한 마디 한다.
“이, 쌔끼!”
가만히 있어 봐라. 이건 분명히 7범 아니면 8범 이상이 틀림없어……. 선배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당장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이불을 꺼내 요를 밑에 깔고 이불을 폈다. 그리고 베개를 갖다 놓을 즈음, 나는 이불을 확 재껴서 팽개치고 그 자리에 벌렁 누워 코를 골았다.
사실 내 간은 콩알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전과 6범의 기를 죽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는 얼마든지 나를 죽이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 흉내는 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잠 한숨 못 자고 이튿날 새벽을 맞았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벌써 전과 6범은 대야에 내 세숫물을 준비하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내밀었다. 그리고 세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건을 대령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인상을 쓰면서 말 한 마디 없이 칫솔을 받아 채고 수건까지 받아 챘다. 1단계 전과 6범 기죽이기 시험은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바로 오늘은 전과 6범 기죽이기 2단계 시험을 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나는 그제야 입을 열고 반말로 했다.
“아침 먹고 시내 구경이나 나가자!”
전과 6범이 펄쩍 뛰었다.
“아니 형님! 높은 양반들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캈소?”
“이 쌔끼! 말이 많아, 내가 책임진단 말이야!”
나는 전과 6범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지금은 대우 본사를 비롯해 빌딩숲을 이루고 있지만 1955년 무렵 서울역은 큰길 옆에는 단층집 군장점들로 가득했고 뒷골목에는 유명한 양동(옐로하우스) 대폿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대폿집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 나는 동동주를 퍼마시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5년여를 썩은 그는 몇 잔 마시지도 못하고 정신이 몽롱해져 휘청댔다. 나야 매일 주전자째 마셔대던 솜씨라 계속 마셔대도 끄떡없었다. 그가 봤을 때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되었다. 같이 감옥살이하다 나왔는데 저렇게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끄떡없는 술 실력(자기와 똑같은 죄수 출신으로 전과 7, 8범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을 과시하는 걸 보면 분명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군장점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술에 취해 비스듬히 쓰고 있는 전과 6범의 육각모자 앞에 대위 계급장을 붙여 주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계급장들을 수북하게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때에 따라 마음대로 바꾸어 달고 다녔다. 나는 전과 6범에게 여기 가만히 서 있으면서 지나가는 군인들이 경례하면 받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줬다.
토요일이다 보니 많은 군인들이 외출을 나와 서울역 부근은 붐빌 수밖에 없었다. 외출 나온 소위 또는 중위급 장교들은 애인과 팔짱을 끼고 보무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장교의 굵직한 팔을 휘감은 가냘픈 애인들은 수많은 사병들의 경례를 받는 늠름한 미래의 남편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대위 계급장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미군부대 깡통이나 굴리는 노무자 복장을 한, 그것도 대낮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건들건들하는 망나니 장교에게 경례를 할 장교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애인을 곁에 두고는 더욱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이들이 경례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때 내가 나서는 것이다.
“야! 임마 너 뭐야?”
깜짝 놀란 장교와 아가씨가 돌아보았다.
“야! 너는 상급자에게 경례도 할 줄 몰라?”
그때 잠자코 옆에 있던 전과 6범의 주먹이 한방 날아갔다. 상대가 “쿵!” 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과 6범의 본성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가만히 곁에 섰고 전과 6범이 패고 차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새파랗게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가씨 옆으로 경찰이 나타나고 헌병 백차가 몇 대 몰려왔다. 꼼짝없이 우리는 잡혀 백차로 호송을 당해 필동에 있는 6관구 헌병대로 끌려갔다.
헌병 당직사령이 헌병 대위였다. 인상 사나운 헌병 사령의 서슬이 퍼랬다. 감히 휴가 나온 육군 장교를 팼다는 것이었다. 술이 덜 깬 전과 6범은 차에 실려가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니 헌병대에 가서도 야단법석을 떨었다.
나는 헌병 당직사령에게 내 암호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우리는 오류동에 있는 공군 특전대원들로 육군 헌병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니 빨리 오류동 부대로 연락하라고 윽박질렀다.
전과 6범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형님이 얼마나 배짱이 좋은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헌병 당직사령의 혁대를 꼬나잡고 귀에 입을 대고 한 마디 했다.
“우리는 오늘밤 이북으로 넘어가는 첩보요원들이다. 너는 지금 현재 이 작전을 방해하고 있다. 실패하면 네가 책임질래?”
헌병 사령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면서 전화를 걸어준다.. 얼마 후 스리쿼터 두 대에 나누어 탄 우리 특수부대 동기생들 20여 명이 권총을 휘두르며 헌병 사령부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헌병 당직사령이 있거나 말거나 안하무인격으로 책상을 뒤엎고 소란을 피우다가 나와 전과 6범을 나꿔채 필동 헌병대를 빠져나왔다. 그것도 군가를 합창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소사 안가까지 정중히 모셔 놓고 돌아갔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이미 계획된 각본에 의한 ‘전과 6범 기죽이기 훈련’이었다. 이 훈련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매한 육군 장교나 장교의 애인, 그리고 헌병 당직사령이 잠시 동안 희생양이 된 셈이다. 나라를 위해 당한 일이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그날 그 모습을 본 전과 6범은 완전히 나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그에게 나는 멋있는 형님으로 비쳐졌고 저 형님 정도라면 목숨을 걸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내가 죽으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해코지하기는커녕 도망갈 염려 또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교육은 시작되었다.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1)―전과 6범 기죽이기
특수부대에서 열심히 훈련하던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휴전 북계선에서 기습을 당하고 혼쭐이 난 이후 오히려 작전 잘한다는 소문과 동시에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후방으로 빠진다고 좋아하며 헬리콥터에 실려 후방인 오류동 본부까지는 잘 왔는데, 실컷 얻어터지고 다시 말도로 돌아가면서 본부에서는 깡다구 세고 작전 잘하는 놈으로 통하게 되었다.
오류동 본부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일주일 만에 말도로 돌아온 나를 보고는 모두들 후방에 나가 있는 동안 잘 먹어서 살쪄 왔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 첩보 작전에 꼭 필요한 육군첩보부대 볼음도 파견대장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라는 지령을 받고 그 섬을 찾아갔다가 당연히 그들에게 얻어터지고 돌아와야 할 텐데 본부에서 맞아 생긴 입 안의 상처를 이용해 김 대장을 제압, 우리 문관으로 만들어 볼음도 파견대장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깡패중대 김 상사는 무시무시한 깡다구의 소유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말도에서는 위험한 작전만 생기면 깡패중대 김 상사만 찾아 출동을 시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 번씩 적지의 바다를 누비고 돌아올 때는 ‘이번에도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령도로부터 깡패중대 김 상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와서 결국 또 백령도로 전출을 가야 했다. 백령도에서 열심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또 얼마 안 되어 본부에 새로 생기는 특수부대로 배치되었다. 이것이 낙하산 1기생의 모체다.
낙하산 교육이 끝나자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전과 6범을 교육시키라는 것이었다. 부천 소사 근처에 있는 안가(안전가옥)로 나가 대기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전과 6범에 15년형을 받고 5년 정도 형을 살았다고 하는 전과자를 교육시켰을 때의 멋진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는 당시 30세. 이북 출신, 혈혈 단신으로 성격은 포악하나 의리를 중요시하는 전과자……. 스물세 살이었던 내가 30세인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 교육시켜 백령도를 통해 평양으로 침투시키는 것이 내 임무였다. 물론 형무소로 전과 6범을 찾아간 공작팀장은 안가에 가면 너와 비슷한 감옥 죄수 출신이 있을 테니 같이 교육을 받고 행동을 같이하라고 지시했을 터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경비도 없는 안전가옥이기 때문에 도망갈 마음만 먹으면 그가 나를 죽이고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다. 나는 총도 없고 신분증도 없다. 그는 내가 현역이라는 것조차 전연 모른다. 만약 현역인 줄 알면 그는 나를 당장 죽이고 도망갈 것이다. 나는 다만 전화번호와 암호만 익혀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나이를 30세 정도로 보이기 위해 세수와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전과 6범은 사복을 한 정보장교의 번호판 가린 지프에 실려 안가로 왔다. 나는 방 한쪽 구석에서 요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상을 잔뜩 쓰고 앉아 있었다. 인솔 장교가 돌아가자 전과 6범은 힐끔힐끔 나를 노려보며 힘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반응이 보일지 조바심을 치면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나도 점점 불안해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 별이 여섯 개요.”
범죄자들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선후배를 가리는 위계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만약 전과 5범 이하라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형님, 몰라뵈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는 어려 보이는 이 깡다구는 끗발이 여섯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끄떡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느닷없이 고개를 홱 치켜들고 째려보면서 한 마디 한다.
“이, 쌔끼!”
가만히 있어 봐라. 이건 분명히 7범 아니면 8범 이상이 틀림없어……. 선배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당장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이불을 꺼내 요를 밑에 깔고 이불을 폈다. 그리고 베개를 갖다 놓을 즈음, 나는 이불을 확 재껴서 팽개치고 그 자리에 벌렁 누워 코를 골았다.
사실 내 간은 콩알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전과 6범의 기를 죽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는 얼마든지 나를 죽이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 흉내는 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잠 한숨 못 자고 이튿날 새벽을 맞았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벌써 전과 6범은 대야에 내 세숫물을 준비하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내밀었다. 그리고 세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건을 대령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인상을 쓰면서 말 한 마디 없이 칫솔을 받아 채고 수건까지 받아 챘다. 1단계 전과 6범 기죽이기 시험은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바로 오늘은 전과 6범 기죽이기 2단계 시험을 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나는 그제야 입을 열고 반말로 했다.
“아침 먹고 시내 구경이나 나가자!”
전과 6범이 펄쩍 뛰었다.
“아니 형님! 높은 양반들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캈소?”
“이 쌔끼! 말이 많아, 내가 책임진단 말이야!”
나는 전과 6범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지금은 대우 본사를 비롯해 빌딩숲을 이루고 있지만 1955년 무렵 서울역은 큰길 옆에는 단층집 군장점들로 가득했고 뒷골목에는 유명한 양동(옐로하우스) 대폿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대폿집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 나는 동동주를 퍼마시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5년여를 썩은 그는 몇 잔 마시지도 못하고 정신이 몽롱해져 휘청댔다. 나야 매일 주전자째 마셔대던 솜씨라 계속 마셔대도 끄떡없었다. 그가 봤을 때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되었다. 같이 감옥살이하다 나왔는데 저렇게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끄떡없는 술 실력(자기와 똑같은 죄수 출신으로 전과 7, 8범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을 과시하는 걸 보면 분명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군장점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술에 취해 비스듬히 쓰고 있는 전과 6범의 육각모자 앞에 대위 계급장을 붙여 주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계급장들을 수북하게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때에 따라 마음대로 바꾸어 달고 다녔다. 나는 전과 6범에게 여기 가만히 서 있으면서 지나가는 군인들이 경례하면 받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줬다.
토요일이다 보니 많은 군인들이 외출을 나와 서울역 부근은 붐빌 수밖에 없었다. 외출 나온 소위 또는 중위급 장교들은 애인과 팔짱을 끼고 보무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장교의 굵직한 팔을 휘감은 가냘픈 애인들은 수많은 사병들의 경례를 받는 늠름한 미래의 남편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대위 계급장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미군부대 깡통이나 굴리는 노무자 복장을 한, 그것도 대낮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건들건들하는 망나니 장교에게 경례를 할 장교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애인을 곁에 두고는 더욱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이들이 경례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때 내가 나서는 것이다.
“야! 임마 너 뭐야?”
깜짝 놀란 장교와 아가씨가 돌아보았다.
“야! 너는 상급자에게 경례도 할 줄 몰라?”
그때 잠자코 옆에 있던 전과 6범의 주먹이 한방 날아갔다. 상대가 “쿵!” 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과 6범의 본성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가만히 곁에 섰고 전과 6범이 패고 차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새파랗게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가씨 옆으로 경찰이 나타나고 헌병 백차가 몇 대 몰려왔다. 꼼짝없이 우리는 잡혀 백차로 호송을 당해 필동에 있는 6관구 헌병대로 끌려갔다.
헌병 당직사령이 헌병 대위였다. 인상 사나운 헌병 사령의 서슬이 퍼랬다. 감히 휴가 나온 육군 장교를 팼다는 것이었다. 술이 덜 깬 전과 6범은 차에 실려가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니 헌병대에 가서도 야단법석을 떨었다.
나는 헌병 당직사령에게 내 암호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우리는 오류동에 있는 공군 특전대원들로 육군 헌병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니 빨리 오류동 부대로 연락하라고 윽박질렀다.
전과 6범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형님이 얼마나 배짱이 좋은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헌병 당직사령의 혁대를 꼬나잡고 귀에 입을 대고 한 마디 했다.
“우리는 오늘밤 이북으로 넘어가는 첩보요원들이다. 너는 지금 현재 이 작전을 방해하고 있다. 실패하면 네가 책임질래?”
헌병 사령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면서 전화를 걸어준다.. 얼마 후 스리쿼터 두 대에 나누어 탄 우리 특수부대 동기생들 20여 명이 권총을 휘두르며 헌병 사령부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헌병 당직사령이 있거나 말거나 안하무인격으로 책상을 뒤엎고 소란을 피우다가 나와 전과 6범을 나꿔채 필동 헌병대를 빠져나왔다. 그것도 군가를 합창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소사 안가까지 정중히 모셔 놓고 돌아갔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이미 계획된 각본에 의한 ‘전과 6범 기죽이기 훈련’이었다. 이 훈련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매한 육군 장교나 장교의 애인, 그리고 헌병 당직사령이 잠시 동안 희생양이 된 셈이다. 나라를 위해 당한 일이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그날 그 모습을 본 전과 6범은 완전히 나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그에게 나는 멋있는 형님으로 비쳐졌고 저 형님 정도라면 목숨을 걸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내가 죽으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해코지하기는커녕 도망갈 염려 또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교육은 시작되었다.
공식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