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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14>뻐스차장 길들이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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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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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버스 차장 길들이기

정보부대 6기생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주로 영등포와 인천이었다. 그 당시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는 장거리 버스 차장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장들은 주로 19세에서 23세 정도 되는 예쁜 아가씨들이었는데 차비를 받아내는 억센 모습에 모두 기가 질려 오류동 선배님들께서는 얌전하게 표를 끊고 다니셨다. 그러나 쌔물스러운 우리 정보 6기들에게는 턱도 없는 소리였다.
오류동, 영등포, 소사, 인천 부둣가 부근에서는 오류동 깡패중대라면 아이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썽이 대단했다. 누구든지 눈밖에 나면 박살을 내버리니 건드릴 수도 없고. 헌병들이 와서 잡아가면 아예 동기생 전부 떼거리로 금방 튀어나와서는 싹 쓸어 버리니……. 다방이고 술집이고 끝장을 보았다. 오죽했으면 깡대중대라는 별명을 얻었겠는가.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버스를 탈 때 차비 없앤 일화는 지금은 어림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주로 우리 정보 6기들이 만든 것이다.
당시 정보학교는 오류동 굴다리 철길 옆 학교 건물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훈련장인(2325부대 건너편) B장으로 교육을 갔는데 정보6기 견습소대장인 내가 인솔하고 도로를 따라 대오를 지어가면서 구령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처녀 걸음으로 번호 맞춰이 갓!”
훈련생 모두 처녀들처럼 엉덩이를 흔들면서 가냘픈 처녀 음성을 내며 걸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구경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학교에 가던 아이들까지 따라오면서 구경을 했다.
오류동 큰길과 역에서 나오는 길이 마주치는 코너에는 경인선 버스표를 파는 매표소가 있었다. 베니어판 널빤지로 지은 매표소 안에는 아가씨 두 사람이 열심히 표를 팔고 있었다. 우리 훈련생 30명은 가다 말고 갑자기 달려들어 두 아가씨가 들어앉은 매표소를 통째로 들어다가 길 한복판에 옮겨 놓았다.
“으…읍, 읍, 읍, 읍(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바꾸어 부르면서) 번호 맞춰이 갓.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뒤에서는 서울로 향해 올라가는 차와 인천으로 내려가는 차가 길이 막혀 소란이 일어났다. 매표소를 원 상태로 옮기려면 최소한 인부 30명은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어디서 30명을 구하겠는가? 오전 내내 길이 막히고, 경찰이 동원되고 특히 배차 간격을 맞추어야 하는 버스 운전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서로 클랙슨만 누를 뿐 운전사들마다 한 마디씩 했다.
“이거는 깡패들보다 더하잖아. 으잇! 지긋지긋한 오류동 깡패놈에쌔끼들…….”
이렇게 해서 혼이 난 버스들은 우리 오류동 정보부대원들에게 표를 받지 않게 되었는데 아직 맛을 못 본 버스 차장들은 여전히 쌔물스럽게 돈을 받아내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모두 국방부장관이 발행한 빨간 줄이 두 개 옆으로 비스듬하게 쳐진 공무집행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것만 내밀면 모두 공짜였다. 체포 수사권은 물론 기차든 버스든 무료로 승차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난기 심한 우리 동기생들은 공무집행증 위에 큼지막한 남성 심벌 프르노 흑백사진을 꽂고 다녔다. 버스를 타도 거드름을 피우며 꼭 앉지 않고 복도에 서서 갔다.
어느 날 우리가 탄 차가 출발하고 차장이 껌을 짝짝 씹으며 앞에서부터 돈을 받고 표를 조사해 오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표 보여 주세요.”
우리는 못 들은 척하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표 끊으세요.”
오른쪽 손가락으로 조용히 왼쪽 주머니를 가리키면서 점잖게 노려보자 차장은 약이 많이 올랐는지 재차 “표 끊으세요” 하고 다그쳤다.
“패스 있다.”
패스가 있는 특수부대원들은 옷도 멋있고 어딘가 의젓한데 앞에 서 있는 이 사나이는 옷은 꼭 미군부대 빈 기름깡통 굴리는 인부 스타일이고 모자는 꼭 중공군 모자 같은 것을 쓰고 패스가 있다니 완전히 가짜라고 생각되었는지, 차장은 씹던 껌을 복도에 탁 뱉어 버리고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아예 반말 짓거리로 악을 써댔다.
“패스포트 보잔 말이야!”
이번에는 앉아 있던 손님들까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으잇! 시끄럽구만…….”
앞에서 운전하던 운전사 아저씨도 신경이 쓰이는지 앞에 달린 백미러를 슬금슬금 훔쳐보면서 차를 운전했다. 차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장사 안 해도 좋아. 이 사기꾼 같은 놈 버릇 좀 고쳐야겠어. 야! 패스포트 내놔 봐.”
나는 아주 점잖게 공무집행증을 꺼내 눈앞에 슬쩍 빨리 펴서 보이는 둥 마는 둥하고 도로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처녀 차장은 더 팔짝팔짝 뛰었다. 분명히 공무집행증에는 빨간 줄이 있어야 하는데 빨간 줄이 없는 컴컴한 흑백사진 같은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가짜다.
차장은 아주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작정했는지 빨리 보여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손님들까지 모두 화를 내고 한 마디씩 했다.
“시끄럽다! 그 군인 양반, 이 차 대절했나?”
“그 군인 양반 돈 없으면 타지를 말지. 에잇 참!”
이때를 기다린 내가 점잖게 공무집행증을 꺼내 차장 눈앞에 똑바로 펼쳐 보였다. 신분증을 보는 순간 차장은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아서 숨을 콱 죽였다. 분해서 벌벌 떨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했다.
그렇다고 처녀가 승객들에게 이상한 사진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나.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그렇게 큰소리치던 차장이 찍소리 못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높은 양반인가 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계속 백미러를 보던 운전사는 영문을 모르고 묻기만 한다.
“왜 그래? 왜 그래?”
드디어 오류동에 도착했다.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째려보는 차장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한 마디 하고 내렸다.
“야, 수고했다. 잘 가라 응!”
그제야 정신을 차린 차장이 내 뒤통수에 대고 울부짖는다.
“야! 이 깡패놈들아!”
우리는 멀리 사라져 가는 버스 번호를 적어 두었다. 다음 토요일날 작전을 위해…….
토요일 외출 시간만 되면 우리 동기생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모인다. 토요일날 오후만 되면 오류동 버스 정류장 삼거리는 구경 나온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한주간 동안 적어 둔 버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당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길은 이 길 하나밖에 없었기에 토요일날 소사 버스 정류장까지 오면 이미 서울 영등포로 가는 손님으로 버스는 만원 상태였다.
그런데 욕심쟁이 버스 운전사들은 또 오류동에서 차를 세우고 짐짝처럼 마구 태운다. 콩나물 시루도 보통 콩나물 시루가 아니다.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어 앞문을 닫기 어려울 정도다. 이때 차장이 매달리면서 “오라잇” 하며 신호를 준다. 이때 차가 살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핸들을 반대로 꺾는 순간 사람들이 홱 안으로 쏠리고 그 순간 찰칵 문을 닫는다. 우리는 이것을 노렸다. 당시 차장들은 모두 치마를 입었다.
차장들은 미니스커트보다 조금 긴 검정 주름치마를 입었고 신은 하나같이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녔다. “오라잇” 하는 신호와 동시에 살살 차가 움직이면 우리 동료 한 놈이 차장을 따라가면서 겨우 문에 붙어 출발하는 처녀 차장의 치마를 두 손으로 덜렁 들추는 것이다. 차장은 비명을 지른다.
아고, 아고…… 그렇다고 차에서 내릴 수는 없기에 꼼짝없이 당한다. 한 놈은 그런 차장을 뒤 따라가면서 속옷을 확 내린다. 또 한 놈은 뛰어가면서 손바닥으로 처녀의 볼기를 힘껏 탁 친다. 그 순간 찰칵 문이 닫치고 버스는 계속 서울로 서울로…….
이 소문은 경인간 버스 터미널로, 버스 차장과 운전기사들에게 삽시간에 퍼졌다. 그후 차비는커녕 우리 정보부대원들이 타기만 하면 계급장 없으면 무조건 상사님으로 통했다. 아니면 오빠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리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하고 애교를 떨면서 인사성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그러나 다른 군인들이 차비 문제로 누이동생 차장들의 속을 썩일 때면 오류동 오빠들이 기분 좋게 다 해결해 줌으로써 차장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용돈가지 얻어 쓰면서..............
오류동에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공군예비역 전우회의 인터넷 모임 로카피스(ROKAFIS)의 ‘작은모임’ ‘정보부대인의 방’에 들어가 보면 당시 나의 별명이었던 ‘깡패중대 김 상사’ 시리즈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