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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11>유지고노름판사건
김**
|Views 521
|200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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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고 노름판 사건
오류동에 있든 공군23군사정보대는 자주 갈 일은 없었지만 내 동기생 김석숭(병33기)이가 유지고(기름창고)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돈이 궁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왜냐하면 무조건 휘발유 몇 깡통씩 빼앗아와 팔면 용돈을 두둑하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지고만 떠올리면 생각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있다.
유지고는 23정보대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다. 그곳에는 정보대에서 나오는 밥 찌꺼기로 돼지를 키우는 돼지아범이라고 불리던 이종구(병29기)라는 현역선배도 있었다. 그리고 딸 하나 데리고 민가에서 두 현역병의 밥을 해주는 과부가 있었다. 당시 동기생 김석숭의 위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모두 기름을 얻어가고 신세를 지니 기관원이든(헌병대,OSI) 높은 분이든 석숭이에게는 꼼짝을 못했다.
내가 말도 파견대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파견대의 한 달치 월급과 부식비를 타서(제법 많은 돈이었음) 말도로 가는 길에 인사차 동기생 석숭이를 방문 했다. 석숭이는 돼지아범 이종구 선배와 함께 민가 과부 아주머니 집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명의 민간인 어른들과 함께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노름판을 벌려놓고 있었다. 와! 모두들 앞에는 돈다발이 쌓여 있었다. 석숭이나 돼지아범은 돈을 잃었는지 나를 보고도 인사할 생각도 못하고 노름판에 미쳐있었다. 모두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노름은 별로 할 줄 모르지만 가만히 뒤에서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꼭 돈을 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침 내 것은 아니지만 수중에 제법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자신감이 생겨 그 판에 끼여들었다. 나는 처음부터 기를 죽이려고 가지고 있던 파견대 한 달치 월급과 부식비(파견대원 30명분)를 앞에 탁 내놓았다. 그러자 민간인 노름꾼들의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패를 잡자, 내 앞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고 나는 신이 났다. 욕심이 생겼다. 아예 판돈을 싹 쓸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 조금 땄을 때 자리를 박차고 있어서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돈을 잃기 시작했다. 화가 나기 시작하고 약이 오르고……, 눈앞에 파견대장에서부터 대원들의 화난 얼굴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마침내는 쫄쫄 굶고 있는 모습과 내가 사정없이 얻어터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홱 뒤집히는 것 같았다. 결국 남은 돈을 다 걸었는데 삼팔따라지였다. 마지막 순간,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앞에 앉아 있던 사나이가 이칠 갑오를 내보이면서 유유히 판돈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손들엇!”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어물어물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았다.
“전부 손들엇! 모두 죽여 버리겠어!”
45도 각도로 권총을 한 발 발사했다.
“꽝!”
종구 선배, 동기생 김석숭, 민간인 노름꾼들 모두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런데 하필 총알이 선반에 얹어 놓은 주인 과부 아주머니 화장품 바구니 속에 있는 분통에 맞았다. 화약 연기 자욱한 방안에 온통 분가루가 하얗게 내려앉고 개평을 뜯으려고 뒤에서 지키고 앉아 있던 과부 아주머니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나는 얼른 판에 있던 돈 모두를 끌어 자루에 담고 마침 기름을 넣으러 온 23정보대 차에 몸을 싣고 유유히 인천부두 분견대를 거쳐 말도로 돌아왔다.
화가 나서 펄펄 뛰는 민간인들에게 석숭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태원이한테 걸려서 오늘 목숨 붙어 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시오!”
한번 혼이 난 돼지아범 선배나 김석숭은 그후 나만 보기만 하면 너무너무 잘해 주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고마운 친구들……, 옛날의 내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친다오.
김석숭은 용인에 살았는데 여주에 있는 아가씨(여주 버스회사 사장 딸)에게 장가 들 때 내가 권총을 차고 함을 지고 갈 정도로 절친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꼭 한번 보고 싶구려…….
유지고 노름판 사건
오류동에 있든 공군23군사정보대는 자주 갈 일은 없었지만 내 동기생 김석숭(병33기)이가 유지고(기름창고)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돈이 궁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왜냐하면 무조건 휘발유 몇 깡통씩 빼앗아와 팔면 용돈을 두둑하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지고만 떠올리면 생각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있다.
유지고는 23정보대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다. 그곳에는 정보대에서 나오는 밥 찌꺼기로 돼지를 키우는 돼지아범이라고 불리던 이종구(병29기)라는 현역선배도 있었다. 그리고 딸 하나 데리고 민가에서 두 현역병의 밥을 해주는 과부가 있었다. 당시 동기생 김석숭의 위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모두 기름을 얻어가고 신세를 지니 기관원이든(헌병대,OSI) 높은 분이든 석숭이에게는 꼼짝을 못했다.
내가 말도 파견대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파견대의 한 달치 월급과 부식비를 타서(제법 많은 돈이었음) 말도로 가는 길에 인사차 동기생 석숭이를 방문 했다. 석숭이는 돼지아범 이종구 선배와 함께 민가 과부 아주머니 집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10여 명의 민간인 어른들과 함께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노름판을 벌려놓고 있었다. 와! 모두들 앞에는 돈다발이 쌓여 있었다. 석숭이나 돼지아범은 돈을 잃었는지 나를 보고도 인사할 생각도 못하고 노름판에 미쳐있었다. 모두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노름은 별로 할 줄 모르지만 가만히 뒤에서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꼭 돈을 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마침 내 것은 아니지만 수중에 제법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자신감이 생겨 그 판에 끼여들었다. 나는 처음부터 기를 죽이려고 가지고 있던 파견대 한 달치 월급과 부식비(파견대원 30명분)를 앞에 탁 내놓았다. 그러자 민간인 노름꾼들의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패를 잡자, 내 앞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고 나는 신이 났다. 욕심이 생겼다. 아예 판돈을 싹 쓸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 조금 땄을 때 자리를 박차고 있어서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돈을 잃기 시작했다. 화가 나기 시작하고 약이 오르고……, 눈앞에 파견대장에서부터 대원들의 화난 얼굴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마침내는 쫄쫄 굶고 있는 모습과 내가 사정없이 얻어터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홱 뒤집히는 것 같았다. 결국 남은 돈을 다 걸었는데 삼팔따라지였다. 마지막 순간,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앞에 앉아 있던 사나이가 이칠 갑오를 내보이면서 유유히 판돈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손들엇!”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어물어물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았다.
“전부 손들엇! 모두 죽여 버리겠어!”
45도 각도로 권총을 한 발 발사했다.
“꽝!”
종구 선배, 동기생 김석숭, 민간인 노름꾼들 모두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런데 하필 총알이 선반에 얹어 놓은 주인 과부 아주머니 화장품 바구니 속에 있는 분통에 맞았다. 화약 연기 자욱한 방안에 온통 분가루가 하얗게 내려앉고 개평을 뜯으려고 뒤에서 지키고 앉아 있던 과부 아주머니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나는 얼른 판에 있던 돈 모두를 끌어 자루에 담고 마침 기름을 넣으러 온 23정보대 차에 몸을 싣고 유유히 인천부두 분견대를 거쳐 말도로 돌아왔다.
화가 나서 펄펄 뛰는 민간인들에게 석숭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태원이한테 걸려서 오늘 목숨 붙어 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시오!”
한번 혼이 난 돼지아범 선배나 김석숭은 그후 나만 보기만 하면 너무너무 잘해 주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고마운 친구들……, 옛날의 내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친다오.
김석숭은 용인에 살았는데 여주에 있는 아가씨(여주 버스회사 사장 딸)에게 장가 들 때 내가 권총을 차고 함을 지고 갈 정도로 절친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꼭 한번 보고 싶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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