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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창설 71주년] 하늘 넘어, 우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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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지난 1일은 공군 창설 7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투기 한 대 없이 시작한 공군이, 오늘날 700여 대의 항공기와 6만여 병력을 갖춘 국가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성장했다. 짧은 시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공군의 71년을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소개한다.
공군 역사의 시작
윌로우스 비행학교, 공군의 뿌리
공군의 뿌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노백린(당시 임시정부 군무총장) 장군과 김종립 애국지사, 그리고 항공독립운동을 꿈꿔온 청년들이 모여 미국에 윌로우스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정상의 문제로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이듬해 4월 문을 닫게 됐다. 오늘날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항공력을 바탕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임시정부의 원대한 구상과 항공독립운동가들의 도전 정신이 담겨있는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로 기억되고 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1898~1969) 장군을 중심으로 모인 항공인들은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해 국내 항공인의 힘을 하나로 결집했고, 독립된 군으로 창설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통위부(현 국방부) 직할 항공부대로 출발한 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254호 ‘공군본부 직제’에 의거해 마침내 독립된 군으로 창설됐다. 이는 공군 창설 주역 7인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항공인이 미 군정과 우리 정부를 설득했고, 국민들의 염원과 우리 정부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최용덕 장군은 189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광복 이후 국내 항공단체를 통합한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해 국내 항공인의 힘을 결집했다. 1948년에는 초대 국방부 차관에 임명됐으며, 재직 당시 국군조직법 제정에 참여해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 장군은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1956년에 전역했으며 ‘공군가’ ‘공군의 결의’ ‘공사십훈’ 등을 작사·집필하며 공군이 나아가야 할 정신적 지향점을 제시했다.
특히 최 장군을 비롯해 김정렬·장덕창·박범집·이근석·이영무·김영환 등 공군 창설의 주역 7인은 미 군정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1948년 항공부대 창설을 승인받았다.
또한, 이들 7인은 항공부대 창설에 만족하지 않고 병력과 장비 보강, 교육시설 확충 등 공군을 창군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쉼 없이 노력했다.
6·25전쟁, 공군의 활약
1만4163회 출격
창군 9개월 만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다. 개전 초 변변치 않은 여건 속에서 조종사들은 연락기와 훈련기 후방석에 폭탄을 싣고 맨손으로 던지며 사투를 벌였다.
6월 26일, 공군 조종사들은 이타즈케 주일 미군기지로 건너가 F-51 무스탕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일주일 만에 대한해협을 건너 유엔 공군의 일원으로 연합·합동작전에 참가했다. 공군은 전쟁 기간 1만4163회 출격을 통해 승호리 철교차단, 평양대폭격, 351고지전투 항공지원 등 3대 전승작전을 비롯한 임무를 완수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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