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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군용 열차와 여대생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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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7

조동열 후배님
2주간 칠레를 다녀오느라고 글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열심히 지난 이야기를 옮기겠읍니다. 그런데 문제는 군대생활중 좋은일도 많이 했을텐데 그런것은 기억에서 다 지워지고 나쁜짓한것만 생각나니 이거 야단 났지요.
그러나 이 또한 병영 생활의 낭만이자 추억이기에 그대로 올림을 이해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근황 사진은 정보부대 변종선후배님이 "회원마당" "회원동정"란 155번에 남미 김태원선배님(병33기)근황 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주셨읍니다.

군용 열차와 여대생들

정보인의 방 창을 열면 첩보부대와 실미도 부대표시 베너가 뜬다.
공군 신사들이 보면 섬짓한 해골과 칼 그리고 락하산 윙, 매일 처럼 이창을 열때마다
나는 먼 옛날 내 깡패중대 김상사 시대로 거슬려 올라가곤 한다.

내고향 그리고 부모형제가 살고 계시든곳이 시골 경북 영양군 영양읍이란곳이며 쪼무래기 어린 시절이 그리우면 고향으로 뛰여 갔고--------
조금 큰 날나리 친구들이 그리우면 (고등학교 동창을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강원도 태백은 내 활동 무대 였기에) 뻔질나게 태백 탄전 지대를 찾아가서 한바탕 폼을잡고(남들은 한 개의 권총을 차는것도 어려울 때 두개씩이나 차고) 돌아오곤 할때 였다.
(지금 생각하면 낮 간지러운 어린 추억이지마는………..)

그당시 가장 좋은 교통수단이라면 기차인데 민간 객차에는 2개의 군용 객차가 달려 있을때였으며 청량리에서 - 영천까지, 저녁에 출발해서 이틋날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콩나물 시루처럼 붐비는 객차에 육군 수송승무헌병과 열차수송승무 상사들이 합동근무를 할 때 였다.
그시대에는 이들의 권력이나 배경(일명:빽)이 대단 했으며
그당시 그곳에 근무 했다하면 벼락 부자가 된다는 좋은 보직처였을때다.

나는 휴가 장병들로 콩나물 시루 같은 군용 열차 복도를 비집고 들어가서 선반 위에 얹어 놓은 군용 빽들을 확 쓸어 버렸다.
밑에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있든 군인들이 날벼락을 맞는다,
그러나 계급장 없이 내 옆구리에 찬 권총때문인지
모두가 놀라서 어? 어? 하면서 말을 못하고 나를 집중한다.
나는 윗도리를 확 벗는다, 런닝구앞에는 락하산을 바탕으로 비스듬히 꽃혀 있는 두개의 칼그 위에 해골 바가지 마크------------
그기다가 또한자루의 권총이 007 영화의 주인공 숀 코네리 처럼 내 왼팔 겨드랑이에 차여 져 있지 않는가.
그 뿐아니다 성큼 성큼 의자를 딛고 비여 놓은 선반위로 기여 올라간다.
앉아 있는 장병들의 머리통을 마구 짓 밟으면서--------
어? 내 오른 발목 원커 구두의 옆에는 시퍼른 단도가 꽃혀 있네..
삽시간에 온 군용칸이 물을 끼 얹은듯 고요하다.
기차는 출발 했고 나는 코를 더렁 더렁 골면서 자고 있는데 뭐가 내 옆구리를 쿡 쿡 찌르면서 휴가증 보잔다.
헌병들과 수송승무원들이 승객 장병들 증명서를 조사하고 나오는중이였다.
“ 야 , 왜 잠자는데 깨우는거야?”
“증명서를 좀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빨리 내려 오십시오, 그곳은 짐 얹는곳입니다.”
“ 야 임마 빨리 꺼져, 잠좀 자자.”
모든 장병들이 토끼 눈을 하고 선반 위에 누워 있는 나를 주시한다.
밑에 있든 승무헌병팀들도 화가 난 모양이다.
살벌한 분위기다.
빠리 내려 오라고 고함을 친다.
그때사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 왜 이래? 잠좀 자자 야 이쌔X이들아 나 이북에 갔다 오느라고 잠 못 잤어 그래.……..”
내 T-Shirt 앞에 그려 있는 특수부대 해골마크와 그리고 옆구리와 허리춤에 있는 권총 그뿐아니라 워카 구두 옆에 꽃혀 있는 시퍼런 단도.----------
수송헌병팀들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 죄송 합니다. 푹 쉬십시오. 혹시 필요하신 것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밑에 있는 토끼눈들이 내가 누군지 알어서인지 아예 나와 눈을 마주 치지 않을려고 한다.
새벽이 되여 갈무렵 기여 내려와서 문쪽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오는길이 였는데 수송헌병석에 여대생 두명이 기대앉아서 자고 있고 전방에서 나온듯한 대위 한명이 복잡한 복도에서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고 있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여기는 군인 전용 객차인데 민간인 여대생이 왜 여기타고 가야하고
또 전방에서 수고하다가 나오는 장교가 서서 가야만 하나?
마츰 수송헌병들은 다른 객차로 갔는지 없었다.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너희들 뭐야? 야 ! 너희들 일어서서 나와, 장교님 이리 앉으십시오. ”

이들은 여대생들인데 방학을 이용해서 안동까지 여행을 가는중이란다.
일반 객차가 너무 복잡해서 복도에 서서 가는것을보고 수송헌병들 자리인 여기 앉혀 주었다는것이다.
그러기에 자기네는 못 나가겠다는것이다.

순간 내 젊은 혈기가 이성을 마비 시켰다.

결국 나는 이성을 잃고 말었다.
권총을 두개나 찬 무법자가 고래 고래 고함을 치고 야단 법석을 떨었으니 잠자든 장병들은 모두 깨여서 오들 오들 떨고
자존심 강한 여대생들은 통곡하고……..
수송헌병과 철도수송승무상사들은 싹 싹 빌고 난장판이 생겼다.

그래서 결국 대위님을 그자리에 않혀 드렸드니 갑자기 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 갈체가 튀여 나왔고 여대생들은 엉엉 울면서 민간 객차로 쫓겨 감으로해서 야밤의 군용 열차 난동은 끝났다.

나는 먼동이트는 새벽 안동역에 내렸드니 먼저 내린 어제밤 그여대생 두사람이 역 개찰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콤나물 시루 같은 객차 복도에서 서서오느라고 얼굴이 말이 아니다,지금이야 디젤 기관차로 운행하기에 연기가 없지마는 그시절 기차는 모두 무연탄을 사용 했기에 제천과 풍기 긴 터널을 지나려면 온통 객차속이 꿀뚝 갔다고나 할까.
눈만 하얗고 얼굴이 온통 새까맣고 헬숙한 그녀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미안 하든지 -

그녀들은 내 인적 사항을 알고 싶단다.
그녀들이 하는말은 비록 얼마 살아보지 못한 세월이지마는 일생에 그런 망신을 당해보기도 처음이고............
그런 용감한 군인을 만나보기도 처음이란다.

어제밤은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이기에 꼭 오늘을 간직하고 싶으니 내 주소 성명 그리고 부대 이름을 가르켜 달란다.

결국은 이북을 넘나드는 특수부대 북파요원이기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르켜줄수 없노라고 하면서 그때는 아쉽게 헤여 졌지마는 중앙선 기차를 탈때마다 그녀들의 생각이 난다.

지금쯤 노인네가 되였을 그들도 기차를 탈때마다 또는 북파요원들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메스콤으로 읽고 들을때마다 그때 해골과 칼 락하산이 그려있는 T-Shirt 차림의 무섭게 생긴 어린 특수부대요원의 모습을 생각하고 피식 웃으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