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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오류동 기차 기적 못 울리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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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9

저는 지금 50년전 옛날 이야기같은 낭만적인 군대생활을 회고 하면서 글을 씁니다.

( 1 ) 오류동 기차 기적 못 울리게

정보부대 방장님이신 김오선후배님께 위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자리 마련해 주셔서 옛날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든 그시절을 회상할수
있어서 말입니다.
이 방을 통해서 동기생들과 그때 같이 근무 했든 선후배님들의 소식도 알수 있을테니 ................
기다려 집니다.
후배님들의 글중에 오류동 선배들의 전설 같은 무시 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대개의 것은 주로 나를 주축으로한 우리 정보6기와 락하산 1기동기생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일 껍니다.
저는 공군 병33기생입니다.(그때33기생들은 전국에서 그해 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못한 풋내기들을 차출해서 입대 시켰음) 항공병학교를 수료하자
여기서 또 고등학교 재학시절 학교에서 말썽깨나 피우든 문제아급들 각경찰서 사찰계의 신원조회를 통해 30명을 차출 오류동 정보학교 6기로 입교 시켰드랬읍니다.
정보학교가 바로 오류동 굴레방다리 밑 국민학교 건물이 였는데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밤만되면 녹아떨어져 자야하는데 바로 철길옆 철조망을 사이에둔 굴다리 밑을 지나다니는 인천행기차의 뿌웅-뿌웅----기적소리때문에 한번씩 깨버리면 잠을 잘수가 있어야지......
당시 내가 6기생 학생 반장 이였는데 어찌 화가 치미든지 나가서 기관사를 향해서 M2를 연발로 갈겨버렸지요......
야, 이 새X들아 제발 잠좀 자게 해다오............
한번만 더 기적울리면 죽여 버린다고 소릴 질렀지요.......
우리 부대가 어떤 부대인지 알고 있는 그들은 아마 혼 났을껍니다.
그날 이후로는 오류동 굴다리 밑을 지날때는 기적 소리는 커녕 살살 기여서 기차가 다녔읍니다.
정보교육이 끝나고 배치된곳이 2325부대(미국 정보 전략가이신 오류동 네꼬부대라고도 함)로 배치되여 파견대를 돌아 다니다가 락하산 1기생이 되였고(정보6기와 이미 네꼬부대에서 첩보작전을 하고 있든 문관 대원들이 36기로 현지 입대해서 현역으로서우리와 동기생이 되였으며 이중에는 실미도 책임자인 대장이였다가 그날 난동자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김순웅준위도 락하산 1기 동기생입니다.
특수 교육과 공수훈련 A장그리고 B장에서의 교육과 개봉동의 C장교육(첩보통신소 뒷편 산아래 골짜기에 있었음) 그리고 덧고개의 락하산 훈련에 얽힌 추억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때로 락하산 훈련을 위해 관악산 산상 훈련장에까지 갈때도 있었고.....
공수부대가 생기기전까지는
매년 10월1일 국군의날 "에어 쑈" 에는 우리 동기생 30명이 한강 백사장 사열대 앞에 수 많은 관증들의 박수 갈체를 받으면서 락하산을 타고 내렸읍니다.
..... 그때는 현역중에 파라슈트를 타는(60번이상 쩜프기록) 사람이 우리 동기생들뿐이 였으니까요.
오류동, 영등포, 소사, 인천부둣가 근처에서는 애들까지 오류동 깡패중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썽을 피웠드랬읍니다.
매일 한번씩 조교였든 김병제상사(복싱 선수)가 팬츠바람으로 집합시켜놓고 한사람마다 빳다 열다섯대씩을 때리는데 엉덩이는 안때리고 꼭 허벅지를 때려서 피를 철철 흘리게 만들어 오류동 시내를 한바퀴 구령을 마추어서 구보를 시키는통에 오류동 사람들과 차를 타고 서울 인천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모습을 보고 질겁을 하는것이였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부대를 깡패중대라고 불렀읍니다.
그리고 계급이 일등병인대도 모두 상사 노릇을 했읍니다.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걸렸다하면 박살을 내 버리니 감히 누가 건드릴수가 없는 거고........
설영 헌병들이 와서 잡아가면 금방 튀여 나와서는
이번에는 아예 동기생 30명 전원이 때걸이로 몰려 나와서는 그 장소를 싹 쓸어버리니까.......다방이고 술집이고....끝장을 보는것이였읍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 없는 짓들이 였지요.
그러나 그 시절 그때는 그것이 통했읍니다.
인천,서울 장거리 여객뻐스 탈때 차비 없엔 이야기 등등

다음 기회 있을때 마다 글을 올리기로 하겠읍니다.
"굵고 짧게 멋지고 적게" 산다는 각오로 조국에 목숨을 걸었든 젊은 시절이였읍니다

첫번쩨 배치된곳이 오호리(속초) 파견대 였으며 이곳에서 동해안기슭을 타고 작전을 들어 갔다가 휴전 북계선에서 기습을 당해 일행중 H 상사가 전사하고........
10명중 제일쫄병인 내가 시체를 메고 인솔해서 휴전선을 빠져 나오는 뱃짱을 보이므로 말미아마 그때부터 작전 잘한다고 팔리기 시작 ..........
서해안 교동도, 말도, 백령도파견대 등등.
힘든 작전만 있으면 나를 불러 써 먹든 시절.

마즈막 제대 1년반동안은 헌병 특기로 전환되여서 30관제 경보전대 오산,포항대보,
제주도모슬포,강능헌병대를 거처 남들이 3년이면 나오는 군대 생활을 6년이나 했으니 말입니다.....
이유는 전쟁이 발발하면 내 특기인 첩보임무를 띠고 평양에 락하산으로 침투를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