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군대이야기

군대 시절에 "거짓말"에 대하여~~

윤**

Views 251

2009.06.18

보통 군대 생활을 하다 보면 학력부터 시작을 하여 모든것이 "거짓말"인 경우가 많이 있답니다.

특히 고참들의 경우 모두 집에는 "금송아지" 한마리 정도는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사실대로 얘기를 하는 고참도 있지만 대부분 "뻥"을 튀겨서 얘기를 하곤 한답니다.

 

저는 제대 6개월을 남기고 제주도 모슬포로 전출을 갔었답니다.

그곳에는 우리 보급소에는 동기생이 한명이 있었는데 특기 교육을 받을 한달 동안 생활을 같이 하였고 그리고 오산에 보급 특기가 약10명 정도가 싸이트로 배치가 되어서 서로 안면은 있는 상태였지요.

그동기생은 육지로 자주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랫는지 몰라도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고 했지요.

때문에 남들 보다는 정기 휴가도 자주 나왔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아이가 보고 싶고 마누라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것 같다고 하여 부대에서 많은 배려를 해준셈이지요.

그런가 하면 관물함에는 아내 사진과 함께 아이 사진도 한장 붙여 있었고요.

 

하지만 결혼 사진이나 돌사진 같은 것을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미처 못하고 돌잔치도 군대 생활중에 이루어 졌으므로 하지 못한것으로만 알았답니다.

더욱이 학교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1학년 다니다가 왔다고 하여 연,고전을 할때면 자기네 학교를 응원을 해야 한다며 근무도 하지 않은 정도 였답니다.

혹시 학사 장교중에 고려대 출신의 장교를 만나면 반갑다며 "쇠주"도 같이 하곤 했지요.

그러면 그동기생에게 점호도 열외를 시켜주고 하는 편리를 많이 보아 주었고요.

제주도의 경우 대대장이 중령이였으나 나머지는 위관 장교로 이루어져서 보통 보급 소장도 중위가 맡아서 하곤 했답니다.

 

그러던중 같은 부대의 중사가 결혼을 하게 되어 우리 사병들은 고참들만 축의금을 조금씩 내고 단체로 애월읍에 가서 "똥돼지"고기도 먹어 보았답니다.(제주도는 결혼시 집에서 기르는 돼지를 잡아 먹음)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한번 하고 신랑집에서 한번 신부집에서 또 한번 이렇게 3번의 결혼식을 치루는 모습을 보았지요.

아무튼 보급소 중사님이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을 다녀온 중사님에게 우리 사병들은 "축의금을 많이 내지 못하여 죄송 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무슨 소리냐며 축의금은 한푼도 들어 오지 않았다는 겝니다.

때문에 우리 동기 한테 어떻게 된일이냐??고 물었더니 분명히 축의금을 전달 했는데 "아마도 결혼식이 바빠서 제대로 부조금을 보지 않았나 보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누구를 의심을 해야 하는지 ~~~

 

아무튼 국방부 시계는 더디게만 흘러 가고 있었기에 일을 찾아서 제주시에 가서 보급 된장도 수령을 하러 다녔고 식사때에는 힘든 배식(고기)를 도맡아 배식을 하곤 하였답니다.

이렇게 생활을 하면서 6개월을 흘렀고 드디어 개구리복을 받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역의 날자가 다가오고 말았지요.

 

제대비를 받은 후 다른 특기의 동기생의 외상값을 갚아 주다 보니  비행기 삯이 모자라서 배편으로 멀고먼 카페리호를 12시간을 타고 부산에 도착을 하였답니다.

이미 앞서 얘기한 동기생은 안면 몰수 하고 비행기를 타고 먼저 도착을 하여 있었고요.

아침이 되어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 지리도 잘모르기 때문에 이미 도착한 같은 특기의 동기생 한테 전화를 하였답니다.

오전 10시경이 되었는데 전화를 하니 동기생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군요~~

먼저 동시기생임을 밝히고 "어머니 아들이 제대를 하여 매우 좋지요??"라고 안부를 물으면서 동기생을 바꾸어 달라고 하였으나 동기생은 집에 없다고 하였답니다.

때문에 그 동기생 어머니에게 별로 할말이 없었기에 그동기생 이름을 부르면서  "아내와 아들은 잘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그동기생 어머님왈 "우리 아들이 어제서야 군대를 제대를 하고 왔는데 무슨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다는 겁니까??"그러면서 "우리 아들 혼사길 막을 일이 있나요??"라고 반문을 하네요~~

이에 말을 바꾸어 그럼 "아들이 이제 고려대에 복학을 해야 겠네요??"라고 했더니 "우리 아들은 상고를 나와서 대학을 가고 보내고 싶어도 떨어져서 못보냈는데 무슨 고려 대학교를 복학을 하느냐"고 되묻네요~~

순간 어안이 벙벙 하여 같이 있던 다른 특기의 동기생과 망연 자실한 표정을 지은적이 있었답니다.

 

그동기생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그관물함에 붙여 있던 것을 형수님과 형의 아들 일까요???

아무리 육지로 자주 못나온다고 해서 그런 "거짓말"을 하고 3년간을 있었을 생각을 하니 조금은 괘씸 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측은 하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군대에서 보면 어떤 졸병을 제대후에 "자기집에 오면 발에 흙을 하나도 묻히지 않고 구경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서울의 경우 당시만 해도 웬만한 도로는 "아스팔트"가 모두 깔려 있으니 자기집을 잘산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답니다.

모든것을 제대로 확인을 할 수 없으니 군대에서는 그런 모든것이 통하는 시절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모두가 정직 하면 좋은데 말이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