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군대이야기
공군"북파 공작원"씨리즈<2>
김**
|Views 596
|2005.02.05
==================
신병시절, 나의 보디가드
대전 항공병 학교에 입교하던 날, 아……, 정말 가관이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 짧은 머리에 소똥도 안 벗어진 놈들이 어깨를 치켜세운 채 담배를 꼬나물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으스대는 모습이라니……. 괜스레 수재처럼 보이는 멀쩡한 애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한 마디씩 던진다.
“야 임마! 넌 어느 학교 출신이여어……?”
그러면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차려 자세로 깍듯하게 대답을 한다.
“예, ○○고등학교 출신입니닷!”
“이 자식, 정신상태 좋네. 얘들아 가자.”
똘마니 같은 놈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꼴이라니……. 지금 기억으로는 그때 부산 D고등학교 럭비 선수 출신 패거리들 일곱 명이 제일 센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50명씩 배치되는 1중대 2구대에 그 패들과 함께 배치되다니!
얼마 후 중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이 들어와 일장 훈시를 했다.
“세상에서의 지식, 계급, 학력은 이제부터 모두 버려라!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다. 그러므로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오직 복종만 있을 뿐이다. 국방부장관의 명령은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이고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은…….”
명령은 계급을 따라 계속 내려왔다.
“따라서 너희들 중에 선출되는 견습소대장의 명령은 결국 국방부장관의 명령이다. 이제 너희 훈련생 중에서 견습소대장을 뽑으려고 한다. 알겠나?”
우리는 일제히 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옛, 알겠습니다!”
“자 너희들 중에 고등학교 다닐 때 학도 호국단장했던 사람 손들어 봐라.”
슬금슬금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또 호령을 했다.
“다음은 운영위원장했던 사람은?”
이번에는 여덟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다음 규율부장했던 사람 있나?”
학교 다닐 때 얼마나 말썽을 피웠던지 규율부장 완장을 채워 줘 한 학기 억지로 착한 체한 기억이 나서 얼른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를 비롯해 열다섯 명이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중대장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야, 이 자식들아 방금 내가 말했지? 여기 고등학교 호국단장, 운영위원장, 규율부장만 모집해 왔냐?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라고 했잖아! 너희들 정신상태가 썩어 먹었어. 야, 소대장! 당장 빳다 가지고 왓!”
현역 상사가 소대장인데 빳다를 들고 왔다.
“정열햇!”
견습소대장 한번 해보겠다고 손들었던 스물여덟 명이 오들오들 떨며 정렬했다. 겁에 질려 서로 뒷줄에 서려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히 이것은 함정이다. 그럴 바에는 멋지게 얻어터지자.
“한 놈씩 나왓!”
나는 용감하게 걸어 나갔다.
“열다섯 대씩 맞는다.”
“옛! 열다섯 대 맞겠습니다.”
허리는 빼고 상체는 굽히고 팔은 올려서 뻗고, 한 대 칠 때마다 기합을 넣었다.
“하나, 둘, 셋…….”
수많은 별빛이 눈앞에 난무했다.
“열넷, 열다섯.”
열다섯 대 다 맞고 나자 그야말로 눈알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이 쫙 빠졌다. 옆으로 비껴서서 아픈 궁둥이를 마구 비비고 있는 동안 동기생들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 나왓!”
탁……, 탁…….
“아구구구…….”
어머니를 찾으며 울부짖는 사람……, 때굴때굴 구르는 사람……. “나 죽소……” 읍소하며 절규하는 사람……. 그 꼴이 어찌나 우스운지 나는 아픈 것도 싹 잊어버리고 한창 그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기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긴 평생 처음 맞아 본 빳다 열다섯 대였으니……. 맞는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뒤에서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오들오들 떠는 다른 동기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오히려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기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항공병 학교 넓은 활주로 연병장을 한 바퀴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0등 안에 들지 않으면 또 다섯 대씩 맞는다!”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어 6등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등까지 앞에 세워 놓고 구령을 부르는 테스트를 한다고 했다. 차례가 되자 나는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구령을 했다.
“차려잇! 열중쉬여으!”
방금 구령을 시작했는데 중대장이 그만 하라는 손짓을 했다.
“됐어. 결정했어. 뭐, 더 해볼 필요도 없군. 너 이름이 뭐야?”
“옛, 훈련병 김태원입니다!”
“자 이제부터 잘 들어 둬라. 훈련병 김태원의 명령은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이닷! 알았나?”
일제히 “옛!”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대답일 뿐이었다. 현역들이 떠나고 나서 집합을 시켜 보았더니 통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부산 D고등학교 럭비 선수 패거리들은 ‘차려’ 하면 ‘열중쉬어’ 하고, 모든 것을 내 지시와는 반대로 했다. 능글능글 비웃음을 흘리면서…….
우리 구대에는 경북 S고등학교를 나온 A라는 덩치 좋은 복싱 선수 하나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를 구내 식당으로 불러 꼬깃꼬깃 꿍쳐 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소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거래를 시작했다.
“신병훈련받는 동안 덜 터지고 편하게 있다가 나가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보다시피 동래아들이 저 모양이니 영 불가능할 것 같거든. 어때, 나 좀 도와줄래……? 그 대신 사역병과 식사당번은 면제해 주마.”
“말재주는 없지만 대신 주먹은 자신 있는데…….”
“바로 그거야. 이따가 집합해 놓고 차려 열중쉬어를 몇 번 하다가 삐딱하게 나오는 놈들 중에서 한 놈만 골라 불러낼 테니, 나오면 너는 무조건 한 대에 눕혀야 한다.”
“그런 것이라면 염려하지 마라.”
합의가 된 후 나는 구대원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옆에 A를 불러내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차려!’ 하면 어슬렁어슬렁 ‘열중쉬어’를 하는 등 그 패들이 말썽을 일으켰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삐딱하게 구는 한 놈을 불러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한판 붙어 볼 태세로 폼을 잡고 나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나오라는 거야……?”
순간 옆에 서 있던 A의 오른 주먹이 놈의 아구를 돌렸다. 그는 ‘퍽’ 소리를 내며 한 방에 쓰러졌다.
나는 그 패거리들 중에서 두 번째로 까불던 놈에게 명령했다.
“야! 임마 너 가서 양동이에 물 떠와 끼얹어!“
순식간에 모두의 자세가 달라졌다.
“차려! 열중쉬어! ……차려! 열중쉬어! 잘 들어라. 앞으로 까불면 이 꼴 된다. 우리 구대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대신 말만 잘 들으면 빳다 한 대도 안 맞고 수료할 수 있다. 내가 책임진다. 자, 이제 돈을 걷겠다. 꼬깃꼬깃 꿍쳐 놓은 것 있으면 모두 끄집어내란 말이다. 이 돈은 교제비로 쓴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웃어른을 챙겼다. 그리고 이따금 빳다 맞을 일이 있으면 50명을 세워 놓고 대신 앞에 나갔다.
“모두 저의 통솔 부족입니다. 저를 때려 주십시오.”
구대원이 다 보는 앞에서 대표로 열다섯 대씩 거뜬히 맞고 로비 자금 거두고……. 혹독하다는 신병교육을 받는 동안 나만 열다섯 대씩 몇 차례 맞았을 뿐 우리 구대원들은 빳다 한 대 안 맞고 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수료식을 하고 배속을 받기 하루 전, 정들었던 훈련병들이 회포를 푸는 뜻깊은 송별회가 마련되었다. 대전의 유명한 동동주 술통이 훈련소로 실려 왔다. 구대원들 모두 얼큰하게 취했다. 혀 꼬부라진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 앞으로 술사발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태원아 수고했다. 니 때문에 빳다 한 대도 안 맞고 훈련 끝마쳤다. 고맙다. 내 술 한잔 받아라.”
“그래, 고맙다. 자 마시자.”
이런 식으로 구대원들의 술잔을 비우다 보니 엄청난 양의 술을 먹게 되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주먹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A가 술사발을 들고 왔다.
“야, 태원아! 니 내 술 한잔 마셔라.”
“그래 그래 고맙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술잔을 들이키고 빈 잔을 그에게 건네주는 순간이었다.
“너 이 자식아! 네가 나를 그동안 잘도 이용해 먹었지?”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의 말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별이 몇 개 보였다. 나는 그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며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잠시 후 몽롱하게 정신이 드는데 울면서 기합을 주고 있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그럴 수 있나? 견습소대장이 너희들 때문에 대표로 혼자 맞아 가면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나? 그런데 너희들이 이렇게 끝을 내서야 되겠나……?”
정신이 아직 몽롱한 가운데 마지막 상황이 떠올랐다. 그런데 유난히 입술 부근이 아프고 무지근했다. 만져 보니 입술이 당나발이 되어 있었다. 입술을 꼭 다물고 숨을 크게 쉬었더니 바람이 상처 사이로 술술 새어나올 정도로 입언저리가 구멍 나 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내무반에 있던 유리병 두 개를 깨어 들었다. 내무반 막사가 새것이어서 마룻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빈유리병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
“야! 나와! 감히 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당장 나와! 죽여 버린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설쳐대니 훈시를 하던 소대장과 훈시를 듣고 있던 구대원 모두 도망가 버렸다. 나는 혼자 계속 설치다가 다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구대원들은 우르르 몰려와 나를 위로했다. A는 내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술김에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용서를 빌었다. 내 입에 밥까지 떠먹이면서 용서를 빌어대니 화는 났지만 술김에 실수한 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수료식을 하고 나는 오류동 정보학교 6기로 입교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항공병 학교 수료생 중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 말썽깨나 일으키던 문제 인물 30명이 차출되어 온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나를 때려눕힌 A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술김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죄 때문에 내게 밥을 갖다 주고 심부름도 하고 보디가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정보학교 6기생 입소식을 하고 또 견습소대장을 뽑을 때였다. A가 내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미 복싱 선수 출신이라는 것이 다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말이라면 모두 설설 기었다.
“야! 너그들 소대장 태원이 시켜. 빨리빨리! 이 자식들 손 안 들어?”
그는 내가 한사코 싫다고 하는데도 전원 손을 들게 해서 나는 또 소대장이 되었다. 그는 정보학교를 나와 다른 부대로 갔는데, 훗날 헌병특기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보고 싶은 얼굴이다.
신병시절, 나의 보디가드
대전 항공병 학교에 입교하던 날, 아……, 정말 가관이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 짧은 머리에 소똥도 안 벗어진 놈들이 어깨를 치켜세운 채 담배를 꼬나물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으스대는 모습이라니……. 괜스레 수재처럼 보이는 멀쩡한 애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한 마디씩 던진다.
“야 임마! 넌 어느 학교 출신이여어……?”
그러면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차려 자세로 깍듯하게 대답을 한다.
“예, ○○고등학교 출신입니닷!”
“이 자식, 정신상태 좋네. 얘들아 가자.”
똘마니 같은 놈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꼴이라니……. 지금 기억으로는 그때 부산 D고등학교 럭비 선수 출신 패거리들 일곱 명이 제일 센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50명씩 배치되는 1중대 2구대에 그 패들과 함께 배치되다니!
얼마 후 중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이 들어와 일장 훈시를 했다.
“세상에서의 지식, 계급, 학력은 이제부터 모두 버려라!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다. 그러므로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오직 복종만 있을 뿐이다. 국방부장관의 명령은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이고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은…….”
명령은 계급을 따라 계속 내려왔다.
“따라서 너희들 중에 선출되는 견습소대장의 명령은 결국 국방부장관의 명령이다. 이제 너희 훈련생 중에서 견습소대장을 뽑으려고 한다. 알겠나?”
우리는 일제히 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옛, 알겠습니다!”
“자 너희들 중에 고등학교 다닐 때 학도 호국단장했던 사람 손들어 봐라.”
슬금슬금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또 호령을 했다.
“다음은 운영위원장했던 사람은?”
이번에는 여덟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다음 규율부장했던 사람 있나?”
학교 다닐 때 얼마나 말썽을 피웠던지 규율부장 완장을 채워 줘 한 학기 억지로 착한 체한 기억이 나서 얼른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를 비롯해 열다섯 명이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중대장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야, 이 자식들아 방금 내가 말했지? 여기 고등학교 호국단장, 운영위원장, 규율부장만 모집해 왔냐?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라고 했잖아! 너희들 정신상태가 썩어 먹었어. 야, 소대장! 당장 빳다 가지고 왓!”
현역 상사가 소대장인데 빳다를 들고 왔다.
“정열햇!”
견습소대장 한번 해보겠다고 손들었던 스물여덟 명이 오들오들 떨며 정렬했다. 겁에 질려 서로 뒷줄에 서려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히 이것은 함정이다. 그럴 바에는 멋지게 얻어터지자.
“한 놈씩 나왓!”
나는 용감하게 걸어 나갔다.
“열다섯 대씩 맞는다.”
“옛! 열다섯 대 맞겠습니다.”
허리는 빼고 상체는 굽히고 팔은 올려서 뻗고, 한 대 칠 때마다 기합을 넣었다.
“하나, 둘, 셋…….”
수많은 별빛이 눈앞에 난무했다.
“열넷, 열다섯.”
열다섯 대 다 맞고 나자 그야말로 눈알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이 쫙 빠졌다. 옆으로 비껴서서 아픈 궁둥이를 마구 비비고 있는 동안 동기생들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 나왓!”
탁……, 탁…….
“아구구구…….”
어머니를 찾으며 울부짖는 사람……, 때굴때굴 구르는 사람……. “나 죽소……” 읍소하며 절규하는 사람……. 그 꼴이 어찌나 우스운지 나는 아픈 것도 싹 잊어버리고 한창 그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기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긴 평생 처음 맞아 본 빳다 열다섯 대였으니……. 맞는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뒤에서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오들오들 떠는 다른 동기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오히려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기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항공병 학교 넓은 활주로 연병장을 한 바퀴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0등 안에 들지 않으면 또 다섯 대씩 맞는다!”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어 6등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등까지 앞에 세워 놓고 구령을 부르는 테스트를 한다고 했다. 차례가 되자 나는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구령을 했다.
“차려잇! 열중쉬여으!”
방금 구령을 시작했는데 중대장이 그만 하라는 손짓을 했다.
“됐어. 결정했어. 뭐, 더 해볼 필요도 없군. 너 이름이 뭐야?”
“옛, 훈련병 김태원입니다!”
“자 이제부터 잘 들어 둬라. 훈련병 김태원의 명령은 공군 총참모장의 명령이닷! 알았나?”
일제히 “옛!”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대답일 뿐이었다. 현역들이 떠나고 나서 집합을 시켜 보았더니 통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부산 D고등학교 럭비 선수 패거리들은 ‘차려’ 하면 ‘열중쉬어’ 하고, 모든 것을 내 지시와는 반대로 했다. 능글능글 비웃음을 흘리면서…….
우리 구대에는 경북 S고등학교를 나온 A라는 덩치 좋은 복싱 선수 하나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를 구내 식당으로 불러 꼬깃꼬깃 꿍쳐 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소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거래를 시작했다.
“신병훈련받는 동안 덜 터지고 편하게 있다가 나가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보다시피 동래아들이 저 모양이니 영 불가능할 것 같거든. 어때, 나 좀 도와줄래……? 그 대신 사역병과 식사당번은 면제해 주마.”
“말재주는 없지만 대신 주먹은 자신 있는데…….”
“바로 그거야. 이따가 집합해 놓고 차려 열중쉬어를 몇 번 하다가 삐딱하게 나오는 놈들 중에서 한 놈만 골라 불러낼 테니, 나오면 너는 무조건 한 대에 눕혀야 한다.”
“그런 것이라면 염려하지 마라.”
합의가 된 후 나는 구대원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옆에 A를 불러내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차려!’ 하면 어슬렁어슬렁 ‘열중쉬어’를 하는 등 그 패들이 말썽을 일으켰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삐딱하게 구는 한 놈을 불러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한판 붙어 볼 태세로 폼을 잡고 나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나오라는 거야……?”
순간 옆에 서 있던 A의 오른 주먹이 놈의 아구를 돌렸다. 그는 ‘퍽’ 소리를 내며 한 방에 쓰러졌다.
나는 그 패거리들 중에서 두 번째로 까불던 놈에게 명령했다.
“야! 임마 너 가서 양동이에 물 떠와 끼얹어!“
순식간에 모두의 자세가 달라졌다.
“차려! 열중쉬어! ……차려! 열중쉬어! 잘 들어라. 앞으로 까불면 이 꼴 된다. 우리 구대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대신 말만 잘 들으면 빳다 한 대도 안 맞고 수료할 수 있다. 내가 책임진다. 자, 이제 돈을 걷겠다. 꼬깃꼬깃 꿍쳐 놓은 것 있으면 모두 끄집어내란 말이다. 이 돈은 교제비로 쓴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웃어른을 챙겼다. 그리고 이따금 빳다 맞을 일이 있으면 50명을 세워 놓고 대신 앞에 나갔다.
“모두 저의 통솔 부족입니다. 저를 때려 주십시오.”
구대원이 다 보는 앞에서 대표로 열다섯 대씩 거뜬히 맞고 로비 자금 거두고……. 혹독하다는 신병교육을 받는 동안 나만 열다섯 대씩 몇 차례 맞았을 뿐 우리 구대원들은 빳다 한 대 안 맞고 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수료식을 하고 배속을 받기 하루 전, 정들었던 훈련병들이 회포를 푸는 뜻깊은 송별회가 마련되었다. 대전의 유명한 동동주 술통이 훈련소로 실려 왔다. 구대원들 모두 얼큰하게 취했다. 혀 꼬부라진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 앞으로 술사발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태원아 수고했다. 니 때문에 빳다 한 대도 안 맞고 훈련 끝마쳤다. 고맙다. 내 술 한잔 받아라.”
“그래, 고맙다. 자 마시자.”
이런 식으로 구대원들의 술잔을 비우다 보니 엄청난 양의 술을 먹게 되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주먹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A가 술사발을 들고 왔다.
“야, 태원아! 니 내 술 한잔 마셔라.”
“그래 그래 고맙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술잔을 들이키고 빈 잔을 그에게 건네주는 순간이었다.
“너 이 자식아! 네가 나를 그동안 잘도 이용해 먹었지?”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의 말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별이 몇 개 보였다. 나는 그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며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잠시 후 몽롱하게 정신이 드는데 울면서 기합을 주고 있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그럴 수 있나? 견습소대장이 너희들 때문에 대표로 혼자 맞아 가면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나? 그런데 너희들이 이렇게 끝을 내서야 되겠나……?”
정신이 아직 몽롱한 가운데 마지막 상황이 떠올랐다. 그런데 유난히 입술 부근이 아프고 무지근했다. 만져 보니 입술이 당나발이 되어 있었다. 입술을 꼭 다물고 숨을 크게 쉬었더니 바람이 상처 사이로 술술 새어나올 정도로 입언저리가 구멍 나 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내무반에 있던 유리병 두 개를 깨어 들었다. 내무반 막사가 새것이어서 마룻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빈유리병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
“야! 나와! 감히 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당장 나와! 죽여 버린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설쳐대니 훈시를 하던 소대장과 훈시를 듣고 있던 구대원 모두 도망가 버렸다. 나는 혼자 계속 설치다가 다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구대원들은 우르르 몰려와 나를 위로했다. A는 내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술김에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용서를 빌었다. 내 입에 밥까지 떠먹이면서 용서를 빌어대니 화는 났지만 술김에 실수한 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수료식을 하고 나는 오류동 정보학교 6기로 입교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항공병 학교 수료생 중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 말썽깨나 일으키던 문제 인물 30명이 차출되어 온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나를 때려눕힌 A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술김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죄 때문에 내게 밥을 갖다 주고 심부름도 하고 보디가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정보학교 6기생 입소식을 하고 또 견습소대장을 뽑을 때였다. A가 내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미 복싱 선수 출신이라는 것이 다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말이라면 모두 설설 기었다.
“야! 너그들 소대장 태원이 시켜. 빨리빨리! 이 자식들 손 안 들어?”
그는 내가 한사코 싫다고 하는데도 전원 손을 들게 해서 나는 또 소대장이 되었다. 그는 정보학교를 나와 다른 부대로 갔는데, 훗날 헌병특기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보고 싶은 얼굴이다.
공식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