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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공군"북파 공작원" 씨리즈<1>
김**
|Views 785
|2005.01.30
매주 토요일 순서 대로 연재 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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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공작원에서 선교사로!
‘실미도’에서 순직한 동기생 교육대장 고 김순웅 상사를 그리워하며
오류동 깡패중대(특수부대) 김상사의 인생 행전
머리말
실미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실미도>가 관객 1천만명을 넘어서면서 부터다.
공군 로카피스 인터넷 전우회가 운영하는 “정보부대인의 방”에 내가 적지에 침투 했든 글들을 써서 올리고 있었는데, 이글을 읽은 공군 정보부대 후배들이 많은 답신 글 중에는 한창 상영중인 영화 <실미도> 보다 더 실감이 난다든가, 그 당시 안방 극장을 주름 잡고 있던 연속 드라마 <야인시대> 보다 더 재미있다고 빨리 다음편을 올려 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졸 필임을 알면서도 북파요원으로 담금질되던 글을 계속 올리게 되였다.
그러던중 하나님게서 부족한 나에게 훈륭한분들을 보내 주셔서 나의 간증을 책으로 엮어 출간 하게 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심을 알게 되였다.
젊은 나이에 북파 공작원으로서 수 많은 위험한 적지에 침투하여 죽었어도 몇 번을 죽을 수밖에 없었겄만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할것이라, 강을 건널때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 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 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 하리니”(사 43:1-2)
나는 어려서부터 누가 나를 인정만 해주면 그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하나의 철칙으로 알고 훈련되여 왔다. 군대에서는 나라가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지휘관이 나를 인정해 주었기에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을 위해 적지에 침투 하여 수 없이 많은 작전을 수행 했던 것이다.
주님을 만난후에도 예외는 아니 였다. 주님의 위임 권위자인 당회장 김광신목사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셨기에 철저히 순종 하면서 목숨을 걸고 20여년동안 선교의 대열을 이탈 하지 않고 열심히 뛰 였다.그 결과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을 우리 부부에게 부어 주셔서 평신도 선교사로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유럽으로 떠나게 되였던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가면서 “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주 중요 하다.
내가 성공 하느냐, 망 하느냐 삶의 방향이 바뀌여 지기 때문이다.
주님을 만난후 나의 삶은 변 했으며, 이 글을 쓸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나의 간증을 통해 세상에 무서을 것 없던 북파 공작원을 주님께서 어떻게 들어 쓰시는지, 주님의 오묘한 섭리를 경험하고 싶은 후배 선교사 지망생들과 믿음의 동역자께 이책을 권해 드린다. 부족한자를 들어 쓰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 하겠는가? 항상 깨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이 책이 출간 되기 까지 수고 해 주신 강태녀 집사님, 배귀희 집사님, 정성훈 집사님. 그리고 아내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4년 8월
김 태 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차례
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공군 병33기로 입대하다
신병시절, 나의 보디가드
조교 점호와 애국가
첫 적지 침투작전(1)-북파 공작원으로 차출되다
첫 적지 침투작전(2)-매복조에게 기습을 당하다
첫 적지 침투작전(3)-홍 상사의 시체를 메고 사선을 넘다
말도 총기난동 사건(1)-장기 두던 선배를 향해…
말도 총기난동 사건(2)-일주일 만에 다시 말도로
볼음도 김 대장 포섭 작전
유지고 노름판 사건
백령도 도깨비 상투 자르기
아무도 못 말리는 오류동 특수부대원
경인선 버스 차장 길들이기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1)-전과 6범 기죽이기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2)-드디어 평양을 향해!
실미도 교육대장 김순웅 상사를 그리워하며
간담이 서늘했던 낙하산 강하훈련
깡패중대 김 상사, 헌병대로 배속되다
2325전대의 전설, 팬티 바람 난동사건
군용 열차에서 만난 두 여대생
이승만 대통령과 공군 헌병
포항 대보 해변가에서 생긴 일
깡패중대 김 상사의 시대는 가고…
제2부 탄광 주먹에서 선교를 꿈꾸는 크리스천으로
아내의 독일행
광부 훈련소장에서 독일 간호사로
날라리 크리스천
팜데일 기도원에서 생긴 일
부흥회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복에 눈먼 가족, 경찰에 체포되다
나를 단련시키는 하나님
“김태원 집사가 없으면 은혜가 안 돼!”
유럽 선교의 꿈을 품고…
제3부 유럽으로, 중남미로, 세계로!
유럽으로 떠날 채비
아내의 40일 금식, 그리고 기적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풍성한 열매
유럽을 선교의 전진기지로!
북한 정무원 총리 사위 강명도, 주님을 영접하다
물적 자원을 동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제가 아론과 훌이 되겠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 김성녀 목사의 간증
“내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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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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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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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병33기로 입대하다
나는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태어나 조무래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는 고향을 떠나 태백에서 자취를 하며 다녔는데, 광산지대인 그곳은 팔도의 건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거친 환경 탓인지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희한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나는 태백 아이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 가는 괴짜였다.
내가 입학한 태백공업고등학교는 그 해에 새로 신설된 학교여서 위로 선배가 없는 까닭에 나와 친구들은 태백 지역을 휘젓고 다니며 폼을 잡았다. 어릴 적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싸움질을 좋아했던 나는 싸움 잘하고 배짱 두둑한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약자한테는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해 친구들과 주변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런데 가끔은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당황하게 했던 일들도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내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새로 온 선생님들마다 내 기를 어떻게든 꺾어 보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선생님이 칠판에 수학 공식을 써놓고는 나보고 풀어 보라고 했다. 내가 수학을 못하는 것을 알고 많은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공식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어떻게 푸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못 풀겠습니다.”
선생님은 ‘옳지, 너 잘 걸렸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그 쉬운 문제도 못 푸냐?”
나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아, 저는 그거 할 줄 모릅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눈이 동그래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야! 너 그렇게밖에 대답 못해! 너, 어디서 눈 똑바로 뜨고 대들어!”
“전 그런 적 없습니다.”
그 즉시 따귀가 한 대 날아왔다.
“아, 왜 때려요?”
이번에는 양손이 마구 날아왔다.
“너 같은 놈은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어. 당장 나가!”
“알겠습니다.”
나는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책보를 쌌다. 그리고 책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학생들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내 행동을 주시했고, 선생님은 매우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야, 그건…… 왜 짊어지냐?”
“왜요? 내가 이것도 기성회비 내고 뭐 내고 해서 다 돈 주고 들어왔는데, 쫓겨나는 판에 내 것 내가 들고 나가는데 뭐 잘못된 것 있습니까?”
선생님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자식아, 그게 농담이지 진짜인 줄 알았냐? 얼른 자리에 앉아라.”
나는 속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도 못되게 굴었는지 선생님께 죄송할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업을 등한히 한 나는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바로 영장이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공군 영장이었다. 6․25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때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군 병33기로 입대했다.
군에 들어가 보니, 모두 그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수업 빼먹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선수랍시고 으스대며 싸움깨나 하던 망나니, 아니면 머리는 비상한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수재들이 떠밀려서 입대를 한 것이 우리 동기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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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공작원에서 선교사로!
‘실미도’에서 순직한 동기생 교육대장 고 김순웅 상사를 그리워하며
오류동 깡패중대(특수부대) 김상사의 인생 행전
머리말
실미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실미도>가 관객 1천만명을 넘어서면서 부터다.
공군 로카피스 인터넷 전우회가 운영하는 “정보부대인의 방”에 내가 적지에 침투 했든 글들을 써서 올리고 있었는데, 이글을 읽은 공군 정보부대 후배들이 많은 답신 글 중에는 한창 상영중인 영화 <실미도> 보다 더 실감이 난다든가, 그 당시 안방 극장을 주름 잡고 있던 연속 드라마 <야인시대> 보다 더 재미있다고 빨리 다음편을 올려 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졸 필임을 알면서도 북파요원으로 담금질되던 글을 계속 올리게 되였다.
그러던중 하나님게서 부족한 나에게 훈륭한분들을 보내 주셔서 나의 간증을 책으로 엮어 출간 하게 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심을 알게 되였다.
젊은 나이에 북파 공작원으로서 수 많은 위험한 적지에 침투하여 죽었어도 몇 번을 죽을 수밖에 없었겄만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할것이라, 강을 건널때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 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 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 하리니”(사 43:1-2)
나는 어려서부터 누가 나를 인정만 해주면 그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하나의 철칙으로 알고 훈련되여 왔다. 군대에서는 나라가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지휘관이 나를 인정해 주었기에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을 위해 적지에 침투 하여 수 없이 많은 작전을 수행 했던 것이다.
주님을 만난후에도 예외는 아니 였다. 주님의 위임 권위자인 당회장 김광신목사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셨기에 철저히 순종 하면서 목숨을 걸고 20여년동안 선교의 대열을 이탈 하지 않고 열심히 뛰 였다.그 결과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을 우리 부부에게 부어 주셔서 평신도 선교사로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유럽으로 떠나게 되였던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가면서 “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주 중요 하다.
내가 성공 하느냐, 망 하느냐 삶의 방향이 바뀌여 지기 때문이다.
주님을 만난후 나의 삶은 변 했으며, 이 글을 쓸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나의 간증을 통해 세상에 무서을 것 없던 북파 공작원을 주님께서 어떻게 들어 쓰시는지, 주님의 오묘한 섭리를 경험하고 싶은 후배 선교사 지망생들과 믿음의 동역자께 이책을 권해 드린다. 부족한자를 들어 쓰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 하겠는가? 항상 깨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이 책이 출간 되기 까지 수고 해 주신 강태녀 집사님, 배귀희 집사님, 정성훈 집사님. 그리고 아내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4년 8월
김 태 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차례
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공군 병33기로 입대하다
신병시절, 나의 보디가드
조교 점호와 애국가
첫 적지 침투작전(1)-북파 공작원으로 차출되다
첫 적지 침투작전(2)-매복조에게 기습을 당하다
첫 적지 침투작전(3)-홍 상사의 시체를 메고 사선을 넘다
말도 총기난동 사건(1)-장기 두던 선배를 향해…
말도 총기난동 사건(2)-일주일 만에 다시 말도로
볼음도 김 대장 포섭 작전
유지고 노름판 사건
백령도 도깨비 상투 자르기
아무도 못 말리는 오류동 특수부대원
경인선 버스 차장 길들이기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1)-전과 6범 기죽이기
전과 6범을 북파 공작원으로(2)-드디어 평양을 향해!
실미도 교육대장 김순웅 상사를 그리워하며
간담이 서늘했던 낙하산 강하훈련
깡패중대 김 상사, 헌병대로 배속되다
2325전대의 전설, 팬티 바람 난동사건
군용 열차에서 만난 두 여대생
이승만 대통령과 공군 헌병
포항 대보 해변가에서 생긴 일
깡패중대 김 상사의 시대는 가고…
제2부 탄광 주먹에서 선교를 꿈꾸는 크리스천으로
아내의 독일행
광부 훈련소장에서 독일 간호사로
날라리 크리스천
팜데일 기도원에서 생긴 일
부흥회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복에 눈먼 가족, 경찰에 체포되다
나를 단련시키는 하나님
“김태원 집사가 없으면 은혜가 안 돼!”
유럽 선교의 꿈을 품고…
제3부 유럽으로, 중남미로, 세계로!
유럽으로 떠날 채비
아내의 40일 금식, 그리고 기적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풍성한 열매
유럽을 선교의 전진기지로!
북한 정무원 총리 사위 강명도, 주님을 영접하다
물적 자원을 동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제가 아론과 훌이 되겠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 김성녀 목사의 간증
“내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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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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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주 특별했던 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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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병33기로 입대하다
나는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태어나 조무래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는 고향을 떠나 태백에서 자취를 하며 다녔는데, 광산지대인 그곳은 팔도의 건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거친 환경 탓인지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희한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나는 태백 아이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 가는 괴짜였다.
내가 입학한 태백공업고등학교는 그 해에 새로 신설된 학교여서 위로 선배가 없는 까닭에 나와 친구들은 태백 지역을 휘젓고 다니며 폼을 잡았다. 어릴 적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싸움질을 좋아했던 나는 싸움 잘하고 배짱 두둑한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약자한테는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해 친구들과 주변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런데 가끔은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당황하게 했던 일들도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내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새로 온 선생님들마다 내 기를 어떻게든 꺾어 보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선생님이 칠판에 수학 공식을 써놓고는 나보고 풀어 보라고 했다. 내가 수학을 못하는 것을 알고 많은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공식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어떻게 푸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못 풀겠습니다.”
선생님은 ‘옳지, 너 잘 걸렸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그 쉬운 문제도 못 푸냐?”
나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아, 저는 그거 할 줄 모릅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눈이 동그래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야! 너 그렇게밖에 대답 못해! 너, 어디서 눈 똑바로 뜨고 대들어!”
“전 그런 적 없습니다.”
그 즉시 따귀가 한 대 날아왔다.
“아, 왜 때려요?”
이번에는 양손이 마구 날아왔다.
“너 같은 놈은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어. 당장 나가!”
“알겠습니다.”
나는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책보를 쌌다. 그리고 책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학생들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내 행동을 주시했고, 선생님은 매우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야, 그건…… 왜 짊어지냐?”
“왜요? 내가 이것도 기성회비 내고 뭐 내고 해서 다 돈 주고 들어왔는데, 쫓겨나는 판에 내 것 내가 들고 나가는데 뭐 잘못된 것 있습니까?”
선생님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자식아, 그게 농담이지 진짜인 줄 알았냐? 얼른 자리에 앉아라.”
나는 속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도 못되게 굴었는지 선생님께 죄송할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업을 등한히 한 나는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바로 영장이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공군 영장이었다. 6․25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때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군 병33기로 입대했다.
군에 들어가 보니, 모두 그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수업 빼먹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선수랍시고 으스대며 싸움깨나 하던 망나니, 아니면 머리는 비상한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수재들이 떠밀려서 입대를 한 것이 우리 동기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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