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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속초 아야진 항구 동태 사건
김**
|Views 570
|2004.03.09
드디여 작전 지역으로 배치 받고
정보학교를 수료하자 4명의 사병들이 동해안 오호리 파견대로 배속 명령이 났다.
병33기 김태원(나와), S(전 기상청 예보국장),
병34기 C(전 대전광역시 부시장), L(사업가)
오호리 파견대는 주문진파견대를 철수하고 네꼬부대(미공군 정보부대)가 있는 오호리에 우리 파견대가 같이 있게 되였으며 위치는 속초, 문암이라는곳을 5키로 정도 올라 와서 간성 사이 바닷가에 있었다.
그당시 우리 네 사람은 제일 쫄병인 일등병이고 파견대 요원들은 모두 우리 보다 선배들이자 제일 무서운 고참들만 있다니 이만 저만 걱정이 안되였다.
그래서 파견 나오기전에 본부 행정과에 근무하는 동기생을 통해서 파견대 요원들의 신상을 파악해 봤다.
파견대장으로 Y 대위(전 중정 대령예편), 부관으로 P중위, 선임하사 K상사(전 대한염업비서실장), H상사(작전때 전사), C중사(기독교 장로), L중사, L하사, Y (이북출신 주문진 파견대부터 심부름을 하면서 작전에 참여 나중에 현지입대) 그리고 4명의 문관들(KLO첩보요원으로 있다가 우리에게 흡수된자들)
배속 신고를한 이틋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파견대 생활이 시작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우리 보다 두살 가량이나 더 많은 심부럼꾼 Y까지 무서운 선배님들과 같이 버티고 앉아서 밥상 차려 달라는 것이다.
그날 아침은 내가 식사 당번 차레 였다,
평생 처음해보는 식사 당번이 였다.
군대 신병훈련 받을때는 견습 소대장이기 때문에 식사당번 안했고 또 정보학교에서도 학생반장이기 때문에 식사 당번을 안했든것이다.
열심히 아침밥과 국, 반찬을 선배들앞에 갔다 바치다가 Y 앞에까지 밥상을 채려 놓다 생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마는 현역인 내가 심부럼이나 하는 쑈리와 같은 아그에게 이렇게 계속 밥그릇이나 날라 줘야하나……..
생각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홧김에 선배님들 앞인줄도 모르고 Y 를 향해서 내가 큰소리로 악을 썼다.
“야, 너 이 X끼 이리 나와.”
아침밥을 얻어 먹을려고 죽 앉아서 기다리든 선배님들이 갑작스런 쫄따구의 행동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쩔줄 모른다.
점 잖게 밥상을 받을려든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여 버렸다.
역시 가제는 게 편이라든가………………..
K선임하사관님께서 소리를 꽥 지른다.
야 ! Y, 너 이 X 식 왜 그기 앉아 있는거야?…….……
KLO첩보부대를 비롯해서 주문진 파견대 등등 6년간이나 이런 특수부대에서만 잔뼈가 굵었기에 약을대로 약았고 까질대로 까진 그가 얼마나 혼이 났든지 그날 이후 내 식사 당번은 그가 대신 해 줬으며 휴전선에 배치 되였을때는 내 부관 노릇을 할 정도로 심복이 되여 줬다.
겨울인데 어느날 선임하사관님이 동기생 S(전 기상대 예보국장) 와 나를 부른다.
아야진 항구에 가서 생 동태를(부식용으로) 얻어 오라는것이다.
그것도 한 가마니를 얻어 오라는것이다.……..(부식비는 중간에서 없어지고 대신 자체 조달해야할 형편이였다.)
큰 야단이다. 마음씨 착하기로 유명한 동기생 S 와 의논을 했다.
그래서 결론은 못 얻어오면 기합을 받아야 하니 나 시키는대로 하자고 하면서.
내가 머리를 썼다.
나는 내 계급이 상사이고 S 는 하사 로서 내가 고기잡이 배가 입항하면 배에 올라가서 선장에게 공갈을 처 고기를 빼서 놓고 S 하사 너를 부를 터이니
부르면 너는 옛, 김 상사님 알겠습니다. 하고 가마니를 들고 빨리 뛰여와서 얻어 놓은 동태 꾸르미를 가마니에 줏어 담아야한다.
그리고 다음배로 또 다음배로………..
나는 계급장 없는 군복에 권총을 허리에 찼다.
그리고 S 는 가마니를 들고 아야진 항구로 갔다.
온몸을 오들 오들 떨게 하는 추운 겨울 저녁때.
고기를 잡은배가 아야진 항구로 몰려들어 오기 시작 한다.
나는 배에 올라가서 큰소리로 선장에게 공갈을 친다. 당장 세 꾸러미(18마리)를 얻었다.
“S 하사”
“옛” ……
“이거 줏어 담아” “옛,알겠습니다. 상사님….”
이런식으로 얻은 동태 고기는 한시간 가량후에는 두 가마니가 꽉 찼다.
대 성공이다.
차에다 싫고 오다가 생각하니 오늘은 너무 많이 얻은 것 갔다.
파견대에 들어 오다가 생각하니 마츰 부대 앞 구멍가게에 내가 그동안 술값이 외상으로 좀 남아 있었는데 돈 대신 동태 한가니를 주고 해결했으며 남은 돈은 현금으로 얼마를 받아서 내가 용돈으로 혼자 다 써버렸다.
며칠후 내 실력을 안 선임하사관님이 또 나를 부르드니 지난번 얻어 온 동태고기가 너무 맛 있었다고 하면서 또 동태고기를 얻어 오라는것이다.
상사의 명령은 곧 공군 참모 총장의 명령이라고 배우지 않었든가?
그래서 급하게 S 를 불렀다. 그리고 같이 고기 얻어러 가자고 했다.
그랬드니 S 가 하는말…
”지만 웃쭐하고 나는 뭐 똥되고…. 그리고 양심 좀 있어봐라, 쌔빠지고 가마니 들고 설쳤는데 고기 한가마니 팔아서 지 혼자 다 쳐먹고……..니 혼자 가라. 난 안갈란다.”
S가 화날만도 하다, 손을 싹삭 비비면서 나는 사정을 했다.
그래서 결국 이번에는 S 가 권총 찬 상사 노릇을 하고 나는 가마니든 김하사가 되였습니다.
드디여 S 상사는 아야진 항구 명태 잡이배에 올라 갔습니다.
나는 먼 발치에서 S 상사님이 내 이름 부를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배에 올라가서 선장을 만난 S 상사님은 연상 선장님에게 굽신 굽신 절을 하다말고 다음배로 옮겨 갑니다.
나는 열심히 가마니를 들고 딸아 다녔지마는 결국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명태 한 두름 6마리를 얻어들고 파견대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면서 그가 하는말,
“야, 태원아, 나는 안되드라 다음부터 상사노릇 니가 해라.”
고기 줏어 담는 하사는 내가 할끼다……………….
빙그시 웃든 그 순진하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로부터 항상 상사 노릇은 내가 하고........ 그대신 한가마니씩은 꼭 팔아서 돈을 반 반씩
나누어서 용돈으로 썼습니다.
결국 나는 착하디 착한 공부 밖에 모르든 동기생에게 삥땅 뜯기를 최초로 가르켜준 장본인이 된 셈입니다.
4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미안 한지..
하기사 아직도 그때 그 모습……….변질 되지 않고 착한 모습의 S를 나는 사랑합니다.
정보학교를 수료하자 4명의 사병들이 동해안 오호리 파견대로 배속 명령이 났다.
병33기 김태원(나와), S(전 기상청 예보국장),
병34기 C(전 대전광역시 부시장), L(사업가)
오호리 파견대는 주문진파견대를 철수하고 네꼬부대(미공군 정보부대)가 있는 오호리에 우리 파견대가 같이 있게 되였으며 위치는 속초, 문암이라는곳을 5키로 정도 올라 와서 간성 사이 바닷가에 있었다.
그당시 우리 네 사람은 제일 쫄병인 일등병이고 파견대 요원들은 모두 우리 보다 선배들이자 제일 무서운 고참들만 있다니 이만 저만 걱정이 안되였다.
그래서 파견 나오기전에 본부 행정과에 근무하는 동기생을 통해서 파견대 요원들의 신상을 파악해 봤다.
파견대장으로 Y 대위(전 중정 대령예편), 부관으로 P중위, 선임하사 K상사(전 대한염업비서실장), H상사(작전때 전사), C중사(기독교 장로), L중사, L하사, Y (이북출신 주문진 파견대부터 심부름을 하면서 작전에 참여 나중에 현지입대) 그리고 4명의 문관들(KLO첩보요원으로 있다가 우리에게 흡수된자들)
배속 신고를한 이틋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파견대 생활이 시작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우리 보다 두살 가량이나 더 많은 심부럼꾼 Y까지 무서운 선배님들과 같이 버티고 앉아서 밥상 차려 달라는 것이다.
그날 아침은 내가 식사 당번 차레 였다,
평생 처음해보는 식사 당번이 였다.
군대 신병훈련 받을때는 견습 소대장이기 때문에 식사당번 안했고 또 정보학교에서도 학생반장이기 때문에 식사 당번을 안했든것이다.
열심히 아침밥과 국, 반찬을 선배들앞에 갔다 바치다가 Y 앞에까지 밥상을 채려 놓다 생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마는 현역인 내가 심부럼이나 하는 쑈리와 같은 아그에게 이렇게 계속 밥그릇이나 날라 줘야하나……..
생각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홧김에 선배님들 앞인줄도 모르고 Y 를 향해서 내가 큰소리로 악을 썼다.
“야, 너 이 X끼 이리 나와.”
아침밥을 얻어 먹을려고 죽 앉아서 기다리든 선배님들이 갑작스런 쫄따구의 행동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쩔줄 모른다.
점 잖게 밥상을 받을려든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여 버렸다.
역시 가제는 게 편이라든가………………..
K선임하사관님께서 소리를 꽥 지른다.
야 ! Y, 너 이 X 식 왜 그기 앉아 있는거야?…….……
KLO첩보부대를 비롯해서 주문진 파견대 등등 6년간이나 이런 특수부대에서만 잔뼈가 굵었기에 약을대로 약았고 까질대로 까진 그가 얼마나 혼이 났든지 그날 이후 내 식사 당번은 그가 대신 해 줬으며 휴전선에 배치 되였을때는 내 부관 노릇을 할 정도로 심복이 되여 줬다.
겨울인데 어느날 선임하사관님이 동기생 S(전 기상대 예보국장) 와 나를 부른다.
아야진 항구에 가서 생 동태를(부식용으로) 얻어 오라는것이다.
그것도 한 가마니를 얻어 오라는것이다.……..(부식비는 중간에서 없어지고 대신 자체 조달해야할 형편이였다.)
큰 야단이다. 마음씨 착하기로 유명한 동기생 S 와 의논을 했다.
그래서 결론은 못 얻어오면 기합을 받아야 하니 나 시키는대로 하자고 하면서.
내가 머리를 썼다.
나는 내 계급이 상사이고 S 는 하사 로서 내가 고기잡이 배가 입항하면 배에 올라가서 선장에게 공갈을 처 고기를 빼서 놓고 S 하사 너를 부를 터이니
부르면 너는 옛, 김 상사님 알겠습니다. 하고 가마니를 들고 빨리 뛰여와서 얻어 놓은 동태 꾸르미를 가마니에 줏어 담아야한다.
그리고 다음배로 또 다음배로………..
나는 계급장 없는 군복에 권총을 허리에 찼다.
그리고 S 는 가마니를 들고 아야진 항구로 갔다.
온몸을 오들 오들 떨게 하는 추운 겨울 저녁때.
고기를 잡은배가 아야진 항구로 몰려들어 오기 시작 한다.
나는 배에 올라가서 큰소리로 선장에게 공갈을 친다. 당장 세 꾸러미(18마리)를 얻었다.
“S 하사”
“옛” ……
“이거 줏어 담아” “옛,알겠습니다. 상사님….”
이런식으로 얻은 동태 고기는 한시간 가량후에는 두 가마니가 꽉 찼다.
대 성공이다.
차에다 싫고 오다가 생각하니 오늘은 너무 많이 얻은 것 갔다.
파견대에 들어 오다가 생각하니 마츰 부대 앞 구멍가게에 내가 그동안 술값이 외상으로 좀 남아 있었는데 돈 대신 동태 한가니를 주고 해결했으며 남은 돈은 현금으로 얼마를 받아서 내가 용돈으로 혼자 다 써버렸다.
며칠후 내 실력을 안 선임하사관님이 또 나를 부르드니 지난번 얻어 온 동태고기가 너무 맛 있었다고 하면서 또 동태고기를 얻어 오라는것이다.
상사의 명령은 곧 공군 참모 총장의 명령이라고 배우지 않었든가?
그래서 급하게 S 를 불렀다. 그리고 같이 고기 얻어러 가자고 했다.
그랬드니 S 가 하는말…
”지만 웃쭐하고 나는 뭐 똥되고…. 그리고 양심 좀 있어봐라, 쌔빠지고 가마니 들고 설쳤는데 고기 한가마니 팔아서 지 혼자 다 쳐먹고……..니 혼자 가라. 난 안갈란다.”
S가 화날만도 하다, 손을 싹삭 비비면서 나는 사정을 했다.
그래서 결국 이번에는 S 가 권총 찬 상사 노릇을 하고 나는 가마니든 김하사가 되였습니다.
드디여 S 상사는 아야진 항구 명태 잡이배에 올라 갔습니다.
나는 먼 발치에서 S 상사님이 내 이름 부를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배에 올라가서 선장을 만난 S 상사님은 연상 선장님에게 굽신 굽신 절을 하다말고 다음배로 옮겨 갑니다.
나는 열심히 가마니를 들고 딸아 다녔지마는 결국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명태 한 두름 6마리를 얻어들고 파견대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면서 그가 하는말,
“야, 태원아, 나는 안되드라 다음부터 상사노릇 니가 해라.”
고기 줏어 담는 하사는 내가 할끼다……………….
빙그시 웃든 그 순진하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로부터 항상 상사 노릇은 내가 하고........ 그대신 한가마니씩은 꼭 팔아서 돈을 반 반씩
나누어서 용돈으로 썼습니다.
결국 나는 착하디 착한 공부 밖에 모르든 동기생에게 삥땅 뜯기를 최초로 가르켜준 장본인이 된 셈입니다.
4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미안 한지..
하기사 아직도 그때 그 모습……….변질 되지 않고 착한 모습의 S를 나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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