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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2월29일자 국민일보 신문 기사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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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1

[복음을 땅끝까지⑴] 아르헨티나 김태원선교사


유럽과 남미에서 14년간 사역한 ‘실버선교사’ 김태원(70) 목사는 고국이 영화 ‘실미도’ 열풍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요즘 자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 또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동료의 시체를 둘러메고 사선을 넘나드는 등 거칠게 살았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알코올 중독자가 됐거나 폐병 환자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1952년 공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오류동 20특무전대 정보학교 6기생으로 입교하면서 현역 북파요원으로 담금질됐다. 1년5개월간 특수훈련을 받은 그는 동해안 속초 오호리 파견대에 배속된 뒤 53년 3월 북한 잠입명령을 받았다. 작전내용은 인민군 수색부대 중대장 납치.

밤 11시. 인민군 복장을 한 그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오른쪽 발목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단도를 꼽고 개인화기를 점검한 뒤 군화끈을 질끈 동여맸다. 탄창 2개에 30발을 장전했다. 현역 요원 5명,특수 북파요원 5명으로 구성된 작전조에 끼여 휴전선을 넘었다. 그러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적의 매복조에게 기습을 당했다.

“살벌한 인상의 H상사가 고꾸라졌어요.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후퇴했습니다. ‘하늘님,날 한번 살려주이소. 내 하늘님,은혜 꼭 갚아드릴게요’라며 매달렸어요.”

총 한 방도 못 쏘고 총을 꽉 쥔 채 죽은 H상사 시체를 동료들과 둘러메고 남쪽으로 무조건 달려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이처럼 수십차례 위험한 작전에 동원됐다. 북파공작원 교관,낙하산 1기생 특수부대원 등으로 활동했다.

5년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친 그는 대한석탄공사 산하 장성극장을 운영하면서 잘나가는 주먹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한국 정부가 65년부터 서독으로 광부들을 송출하면서 거친 광부들을 다루기 위한 사람이 필요하자 파독광부훈련소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아내 김성녀씨가 지난 70년 파독 간호사로 떠나면서 그도 2년 뒤 서독으로 떠났다. 77년까지 루드빅스하펜 시립병원에서 남자 보조간호사로 일했다.

그런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였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미국에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졸기 일쑤였어요. 5년여동안 ‘날라리’ 크리스천이었지요.”

그러다가 아내가 3박4일간 기도원에 가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마음속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어요. ‘내 아내가 정말 기도원에 갔을까’ 의심이 생겼지요. 목사님께 기도원 주소를 물어 다음날 일찍 기도원으로 올라갔죠.”

그는 이따금 교회에 가면 갖고 들어가던 성경책을 차의 트렁크에서 집어들고 기도원 기도실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우레와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너 이놈,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려고 하느냐!” 얼마나 놀랐는지 모골이 송연했다. 너무 놀라 문을 열 수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차를 몰아 오렌지 카운티로 향했다. 운전 중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웬일인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뒤 그는 무섭게 변해갔다. 교회 출석은 물론 부흥회와 기도원을 정기적으로 찾았다. 그뿐 아니라 베다니신학대에 진학,유럽선교를 준비했다.

“7년동안 살았던 유럽으로 다시 갔어요. 과거에는 크리스천 동포를 보면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졌는데 제가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다니,감격스러웠어요.”

김 선교사는 88년부터 LA은혜교회 파송으로 유럽에서 유학생 선교에 힘썼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삼성 선교사도 유럽에 유학왔다가 그에 의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12개 교회를 개척하고 60여명의 목회자 선교사를 배출했다.

1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남미로 떠났다. 중남미 30개국 5억 인구의 영혼 구원을 위한 전진기지를 아르헨티나에 세우기 위해서였다. 팀사역과 신학교사역을 통해 이미 졸업생 78명을 배출했으며 현재 재학생 159명을 기독용사로 세워가고 있다. 칠레도 그의 선교권이다. 김 선교사는 원주민 목회자로 구성된 남미 은혜선교협의회를 통해 전 지역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꿈꾸고 있다.

사선 속에서도 살려주신 하나님만 생각한다면 칠순이라는 나이가 청춘으로 느껴진다는 김 선교사. 죽음이 이 생을 가르기 전까지 영원히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고 있다.

함태경기자 zhuanjia@kmib.co.kr


* 밑에 Re 변종선 사진 첨부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