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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MK1 함대함 미사일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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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가브리엘 MK1 함대함 미사일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가 수에즈 운하와 골란고원을 넘어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했다. 이른바 ‘10월 전쟁’ 또는 ‘욤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개전과 함께 이집트·시리아 해군 역시 이스라엘의 주요 항구를 봉쇄하기 위해 주요 전투함을 출동시켰다. 특히 SS-N-2 스틱스 함대함 미사일로 무장한 코마·오사급 유도탄 고속정은 이스라엘 해상 봉쇄 작전의 핵심전력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시리아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는데 바로 이스라엘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비밀 병기 가브리엘(Gabriel) MK1 함대함 미사일(사진)의 존재였다. 이날 저녁 시리아 라타키아 항구 부근에서 시리아 해군과 이스라엘 해군 간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몇 안 되는 해전으로 기록된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 해군은 시리아 해군 전투함 5척을 모두 침몰시켰다. 3척은 가브리엘에 의한 것이었고 나머지 2척은 76㎜ 함포에 의한 것이었다.

시리아 해군 역시 스틱스를 발사하며 반격했지만 이스라엘 해군의 전자 방해(ECM)로 단 1발도 목표에 명중시킬 수 없었다.이후 벌어진 다른 전투에서도 가브리엘로 무장한 13척의 이스라엘 해군 전투함은 스틱스로 무장한 이집트 해군의 코마·오사급 유도탄 고속정 27척을 모두 격침했다.이스라엘 해군 손실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스틱스와의 대결에서 가브리엘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이스라엘이 대함 미사일을 요격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 오판한 이집트·시리아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가브리엘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방위산업체인 IAI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첫 번째 함대함 미사일이다. 실제 개발은 62년부터 시작됐지만 설계 개념과 이스라엘 해군의 요구 성능이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최초 발사는 70년 8월 5일에야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대함 미사일 항법·유도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고 제4차 중동전에서 아랍 해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 해전 이후 세계 각국은 함대함 미사일을 소형·경량화시키더라도 충분히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로운 개념의 대함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대함 미사일의 항공기 탑재도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만약 가브리엘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해군은 제4차 중동전에서 이집트·시리아의 해상 봉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스틱스·엑조세와 같이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특정 무기체계가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스라엘 역시 가브리엘의 존재를 공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기술적 완성도와 전과는 놀라운 것이었고 ECM 무기와 함께 해군무기체계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브리엘은 90년대 초 성능이 더욱 강화된 바락(Barak)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해군의 주력 대함 병기로 운용됐다.
2007.01.01
200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