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회원 자료실
MiG-15 전투기
운**
|Views 156
|2006.12.31
| MiG-15 전투기 | |
1950년 11월 1일 압록강 지역을 초계비행하고 있던 미 공군의 F-51D 전투기 편대는 은빛 기체에 커다란 붉은색 별이 그려진 제트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혼비백산한다. 미 공군 전투기들에 일격을 가하고 순식간에 북쪽 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린 이 제트 전투기의 정체는 바로 소련이 비밀리에 중공에 제공한 MiG-15(사진)였다. MiG-15는 뛰어난 상승 능력과 중고도 이상에서의 고기동성, 그리고 대형 폭격기조차도 단 일격에 격파할 수 있는 37㎜ 기관포를 장착, 당시 한반도에 배치된 모든 유엔군 전투기의 성능을 압도했다. 그러나 11월 7일 한반도 북단 신의주 상공에서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간 공중전이 벌어졌을 때 그 결과는 MiG-15의 판정패였다. 이후 10여 일 동안 소련의 비밀병기 MiG-15는 총 다섯 대가 격추됐다. 기체 성능은 MiG-15가 압도적으로 우월했지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조된 중공군 조종사들의 실력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전투기의 성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중공군 사령부의 잘못된 작전과 소련의 간섭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후 소련의 전폭적인 군사 지원으로 만주와 북한 지역에 MiG-15가 대량으로 배치되고 소련군 베테랑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중공군 조종사들도 점차 MiG-15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기체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중전 전술도 개발해 냈다. 그러나 미 공군이 최신예 F-86 전투기를 긴급 배치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된다. 사실 MiG-15의 원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제트 전투기 Me1101이다. 종전 후 독일을 점령한 소련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Me1101의 뛰어난 완성도에 주목했고 그 기술을 강탈해 MiG-15 개발에 최대한 활용했다. 몇 가지 기술적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우방 관계에 있던 영국에서 제트 엔진 기술을 도입하고 스탈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 47년 6월 2일 처녀 비행에 성공했다. 48년부터는 양산이 시작됐고 49년 초에는 모스크바 주변 핵심 방공부대를 중심으로 실전 배치됐다. 한국전쟁 기간 공산군은 MiG-15와 개량형인 MiG-15bis를 운용했다. 방공 요격 전투기로 설계된 만큼 F-86을 비롯한 유엔 공군 전투기에 비해 기체가 작고 중량이 가벼웠다. 때문에 F-86을 포함한 유엔 공군 전투기에 비해 기동성과 상승 성능이 우수했고 특히 최대 상승고도가 더 높아 고공에서 급강하하며 기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공전자장비와 조준 장치, 기체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신뢰성 부분에서는 상당히 뒤떨어졌다. 급선회시 실속에 빠지기 쉽고 스핀 회복이 어려운 것 등 비행 안정성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어 베테랑 조종사가 아니면 조종하기 힘들었다. 유엔 공군에 대한 MiG-15의 우위는 F-86이 한반도에 배치되면서 곧 깨졌지만 전쟁 기간 동안 공산군의 핵심 공중 전력으로 활약했다. 여러 가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MiG-15의 등장은 한국전쟁과 이후 벌어진 공중전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이후 소련의 전투기 개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
공식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