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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1 아드바크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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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0

F-111 아드바크

전쟁을 통해 수많은 무기가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그중에서 미 공군의 F-111 아드바크(Aardvark·사진)는 특이한 존재다. 무기체계의 성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실전 배치와 동시에 전쟁에 사용된 몇 안 되는 현대 무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실전에 투입돼 91년 걸프전쟁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퇴역했는데 이처럼 전쟁을 통해 등장하고 전쟁을 끝으로 퇴역한 무기는 F-111이 유일하다.

최초 완성기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 공군 관계자들은 F-111에 대해 대단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총 중량이 36톤(최대 45톤)에 전투기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대형기가 돼 버렸지만 미 공군의 까다로운 작전 요구 성능을 완벽히 충족했고, F-111의 특기인 장거리 침투 공격 능력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특히 세계 최초의 실용 가변익 전투폭격기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완성된 F-111은 핵무기를 포함한 다종 다양한 폭탄을 장착하고 60m 이하의 초저고도를 고속으로 비행, 장거리 목표를 타격할 수 있었다.

F-111의 성능에 크게 만족한 미 공군은 실전 배치와 동시에 베트남전쟁 작전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F-111의 최초 실전 참가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최첨단 무기로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겨우 55회의 출격 임무만 수행하고 본토로 소환된 F-111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졸전(?)으로 미 공군에서 퇴출될 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그러나 미 공군은 F-111을 퇴출시키는 대신 개발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하고 운용 전술을 보완하면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노렸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체의 성능과 장단점을 철저히 다시 파악한 미 공군은 72년 F-111의 실전 투입을 재개한다. 그리고 동년 9월부터 작전에 투입된 제474전술전투비행단 소속 F-111A 2개 비행대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이듬해 3월까지 4000회가 넘는 출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작전 기간 중 기체 손실은 단 7대에 불과했다.베트남전쟁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F-105나 F-4 등의 전투기에 비해 F-111은 높은 귀환율과 함께 월등히 우수한 폭탄 탑재력, 정밀 폭격 능력과 90% 이상의 폭격 명중률을 자랑했다.

특히 지원기가 불필요한 단독 작전 능력 등은 F-111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원한 퇴출이냐 화려한 부활이냐는 위기 상황에서 F-111은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F-111은 리비아 공습 작전인 엘도라도 협곡 작전에서 편도 5000㎞ 이상의 거리를 비행, 주요 목표를 정밀 타격함으로써 장거리 폭격 능력과 침공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고 퇴역 직전인 걸프전쟁 당시에도 총 2417회의 출격을 통해 이라크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타격했다.

만약 최초 실전 투입 결과에 실망한 미 공군 수뇌부가 F-111의 퇴출을 결정했다면 이후 F-111이 거둔 승리와 영광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F-111은 퇴역하기 전까지 전투기 외형을 가진 미 공군 최후의 전투폭격기이자 핵심 전폭기 전력으로 운용됐다.
2006.12.30
2006.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