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중국의 병법가 손무는 자신의 저서 ‘손자병법’에서 적의 의도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전장을 성공으로 이끄는 결정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시간과 주도권의 중요성이 결정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하늘을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가 등장한 때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 항공전 당시 사용된 영국의 체인 홈이나 이후 유럽 방공전에서 활약한 독일의 캄후버 라인 같은 레이더 경보 체제가 등장하면서 항공전에서 적의 의도를 미리 알고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 요소로 부각됐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제트기나 미사일 같은 보다 빠른 비행체가 등장하고 지상 혹은 함상에 배치된 레이더의 제한된 탐지 범위로는 제시간에 대등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보다 멀리에서 더 빨리 적의 의도를 포착할 수 있는 조기경보 수단, 즉 조기경보기가 필요해졌다.
조기경보기의 필요성에 가장 먼저 눈뜬 것은 함선의 높이나 용적 제한으로 고출력 대형 레이더를 쓸 수 없던 미 해군이었다. 미 해군은 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항공기에 레이더를 달면 탐지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발상으로 조기경계·지휘통제기의 개념이 채 정리되기도 전인 1954년 대잠용으로 사용하던 S-2 트래커에 레이더를 설치한 E-1 트레이서를 조기경보 임무에 투입했다. 이어 64년에는 보다 대형인 C-2 그레이하운드 기체에 회전식 레이더 돔을 장착한 전천후 조기경보기 E-2C 호크아이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로펠러 엔진식 함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크기나 속도, 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65년 12월 22일 미 공군 지휘부에 관련 획득 부서가 만들어지고 이어 67년 3월 지상에 넓게 분산돼 임무를 수행 중이던 지휘·통제·통신체계를 항공기에서 구현하는 조기경보통제기(AWACS)의 개념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실제적 임무는 소련 측 폭격기의 내습에서 유럽 지역을 지킬 수 있는 공중 방어망의 구성이었다. 70년 7월, 치열한 경쟁 끝에 보잉사가 AWACS 개발 프로그램 주계약자로 선정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웨스팅하우스사가 부계약자로 선정돼 레이더 체계 개발을 담당했다. 75년 10월부터 기술 시험과 평가를 거쳐 77년 3월 E-3 센트리가 제552항공경보통제비행단에 배치되기에 이른다. E-3 센트리(사진)는 보잉 707-320의 동체를 개조, 직경 9.1m, 최대 두께 1.8m의 회전식 레이더 돔을 장착한 기체다. 이 레이더 돔에는 1Mw 출력의 도플러식 레이더 등 탐지장비가 달려 있어 반경 200마일 이내의 저고도 비행체는 물론 위성 비행체를 필두로 한 중·고고도 비행체의 탐지·추적·식별이 가능하다.
E-3는 주익 내 연료탱크에는 총 9만500ℓ의 연료를 적재, 재급유 없이 8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비행 중 공중 급유로 임무 범위와 가동 시간을 늘릴 수 있다. E-3는 걸프전 당시 총 845소티, 도합 1만500시간 동안 조기경보와 지휘통제 임무를 수행하며 12만 건 이상의 탐지·추적 실적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총 40건의 격추 중 38건의 공중 관제를 수행하며 조기경보기나 공중전 지휘·통제기로 그 능력을 입증했다. 92년 말까지 68대가 만들어져 오늘날에도 각국에서 조기경보와 지휘통제기로 사용되며 유사한 체계를 개발하려는 국가들에게 국제적으로 널리 벤치마킹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