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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된 장군의 ‘인생 이모작’…식량안보 기여 또 다른 군인의 길
사**
|Views 151
|2022.04.27
좋은 일(Job)이 생길 거야
2018년 복숭아 과수원 시작했지만 판로 개척 ‘쓴맛’
“내가 해보자” 법인 만들어 직접 재배한 이천쌀 등 판매
‘품질로 승부’ 지난해 매출 12억 원·국제박람회 초청도
근면·성실·책임감…군인 특성 잘 맞아 도전해볼 만
류성식 일팔구삼 대표가 고래실미 쌀포대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정직과 정성을 다해 만들겠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일팔구삼이 판매하는 고래실미 쌀포대에 적힌 문구다.
예로부터 임금에게 바치던 진상미로 유명한 이천쌀을, 이천에서도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기름진 ‘고래실논’에서 수확해 이곳 쌀의 맛은 일품이다. 여기에 당일 도정한 햅쌀 판매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 밥맛과 향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정성을 기울여 재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판매하자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류성식(61) 일팔구삼 대표는 육사 39기로 1983년 임관해 2017년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34년간 제복을 입은 군인 출신이다. 육군30기계화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육군부사관학교장 등을 거친 그는 여타 예비역 장군과는 달리 ‘농부의 길’을 선택, 고향인 경기도 이천시 율면에서 쌀·복숭아·포도·꿀 등을 판매하고 있다. 모내기 철을 앞둔 지난 22일 그를 만나 농부의 길을 선택한 이유와 농업법인을 설립한 과정을 들어봤다. 글·사진=이원준 기자
율면은 이천시 14개 읍·면·동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남북으로 석원천, 동서로 청미천이 흘러 물이 풍부하고 하천을 따라 넓고 비옥한 평야가 발달해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했다고 한다. 쌀·복숭아·포도 등이 이곳 특산물이다. 율면은 류 대표가 9세 때까지 자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자신도 언젠가 군복을 벗는다면 꼭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리라 생각했다고 류 대표는 말했다.
“어렸을 때 서울로 유학을 가다 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대령이었을 때부터 농민신문을 구독하면서 농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진급이 계속 안 되면서 한직을 돌았는데, 이 시기 농사 연구를 하고 계획을 짜면서 귀농을 준비했죠.”
류 대표는 육군부사관학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택(古宅)을 리모델링하고, 그 뒤에 새 집을 짓는 것이었다. 7~8년간 틈틈이 귀농 준비를 했기에 큰 비용이 드는 결정에도 거침이 없었다. 다만, 가장 큰 걸림돌은 시골 생활을 꺼리던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땅도, 돈도, 기술도 아니고 바로 배우자의 허락이라는 것입니다(웃음). 아내는 처음엔 귀농을 반대했지만 예쁘고 크게 새 집을 지으니까 ‘당신 고집을 어떻게 꺾겠느냐’며 결국 동의해 줬죠. 지금은 부부가 함께 시골에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습니다.”
류 대표는 2018년 복숭아 과수원을 가꾸며 첫 농사를 시작했다. 그해 여름 정성껏 수확한 복숭아 100상자를 서울로 출하했지만, 경매가 끝난 뒤 그가 손에 쥔 돈은 낙찰가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농산물 판로 개척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첫해 농사는 농약값, 인건비, 포장비 등을 계산하면 번 돈은 거의 원가 수준이었죠. 더는 농산물시장 경매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직접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보자고 결심했고, 그렇게 농업회사법인을 차렸습니다.”
일팔구삼은 2020년 5월 자본금 3억 원으로 출발했다. 사명은 류 대표가 태어난 고택이 1893년 지어진 데서 따왔다. 고택은 현재 사무실 겸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류 대표가 이끄는 일팔구삼은 빠르게 매출 기록을 쌓고 있다. 처음에는 지인 위주로 판매했지만, 법인 설립 3년 차인 지금은 온라인 오픈마켓을 통한 매출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정성이 담긴 농산물을 알아본 소비자들이 많이 생기면서다. 덕분에 지난해 총 12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5억 원대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항상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정성껏 농사를 지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오전 6시, 여름철에는 오전 5시부터 일과를 시작해요. 2~3시간 밭일을 마친 뒤 아침을 먹고, 또 나가서 일하죠. 보통 오후 7시까지 일합니다. 제 별명이 악덕업주입니다(웃음). 군 시절 그랬듯, 제가 앞장서 일하니까 직원들도 따라서 하는 편이죠.”
정성과 정직으로 재배한 일팔구삼 농산물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국 BBC가 발행하는 푸드 매거진 ‘굿푸드코리아’가 오는 6월 개최하는 식자재 박람회에 고래실미가 우리 쌀을 대표해 초청받은 것. 류 대표는 ‘모든 성패는 준비에 달렸다는 마음가짐으로 치밀하게 준비한 덕분’이라고 겸손해했다.
류 대표의 꿈은 귀농을 고민하는 전역장병에게 ‘제2의 인생’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는 농부가 된 자신처럼 많은 전역장병이 귀농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인과 농부는 그 특성이 비슷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군인과 제일 잘 맞는 일이 농사라고 생각합니다. 군인이라면 몸에 밴 근면성·성실성·책임감이 농사에 딱 맞죠. 그래서 오랜 기간 임무를 수행하고 전역했다면 제2의 인생으로 농사일을 과감히 시작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농사를 지으면 건강도 지키고 삶의 활력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전역한 뒤에도 20년간 생산활동을 하면서 부부가 재밌게 지낼 수 있고,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생기죠.”
류 대표는 날로 심각해지는 농촌 고령화 문제도 함께 거론했다. 농촌이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이때, 귀농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그는 강조했다.
“농촌은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평생 봉직한 사람이 전역한 뒤에도 식량 안보를 위해 일하는 것은 군인 특성과 잘 맞고, 군인의 가치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임무를 마친 군인이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튼튼하고 건강해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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