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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의 효시
손**
|Views 114
|2013.10.02
어제는 국군의 날. 당초 10월1일은 공군의 날, 10월2일은 육군의 날이고, 해군의 날은 11월11일에 따로 있었으나 1956년 하나로 통합됐다. 한국전쟁 때 우리 군이 38선을 넘어 최초로 북진한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이다.
현재 공군의 공식 창군일은 1949년 10월1일이지만, 그 효시는 그보다 29년 전 미국에서 비롯되었다는 발굴 연구가 최근 공개됐다. 일제 때인 1920년 임시정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윌로스라는 마을에 비행학교를 설립, 수십명의 한인 청년을 교육 훈련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생도 중 박희성과 이용근은 국제항공연맹으로부터 조종사 자격증을 받아 파일럿이 됐고, 이 보고를 받은 임시정부는 즉각 두 사람을 비행병 참위(소위)로 임명했다.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육군 1호가 누군지, 해군 1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공군 1호만큼은 분명해진 것이다.
이들의 비행학교 생도 시절을 보여주는 교포신문 기사도 있다. “대운동이 있다는 말을 들은 비행학생 4인이 공중에 쌍으로 날아 운동장에 감에, 수천명 군중이 ‘헬로우 보이’ 하고 수건을 두르는 때, 우리 비행기를 탄 박희성씨가 서서히 내림에 수천명 남녀군중이 태극기를 만져보며 악수하는 광경…일인들은 눈이 둥그레져…”(신한민보 1921년 3월31일). 태극 문양이 새겨진 비행기가 미국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뿌듯하다. 이 학교 창설을 지휘한 임시정부 노백린 군무총장은 생도들에게 “미래의 전쟁은 공중전”이라며 “우리 공군이 일본으로 날아가 도쿄 시내를 쑥대밭이 되도록 폭격하자”는 격정적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임시정부에서 창설해 장교를 임관시켰으니 이 비행학교가 공군의 효시가 돼야 마땅하다고 재미언론인 한우성씨는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라는 책에서 주장한다. 제30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은기 예비역 대장이 책의 추천사에서 “자식(공군)이 자라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다른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알고 살아왔는데 뒤늦게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에 따라 호적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공감을 나타낸 것도 흥미롭다. 공군의 역사가 한 언론인의 탐사 연구로 새로 쓰여지고 있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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