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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무제
이**
|Views 453
|2006.03.31
때는 1972년 여름.
공군본부 의장병인 소생이 용산에 있는 미8군 의장대에 파견근무를 하던 시절.
당시 계급은 짝대기 두개.
미8군 의장대는 미국군, 영국군, 태국군 의장대와 미국, 영국군의 군악대가 미8군을 예방하는 고위 인사를 위한 열병 및 분열 행사를 주 목적으로 하는 곳.
미국군 중대장의 영어 구령에 맞추어 모든 행사 훈련을 하는데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30분 가량 훈련이 실시 되고 나머지 시간은 각 군별 자유시간이며 외국군 외 한국군은 육, 해 공, 해병대 4개 소대가 외국군과 같은 건물내에서 생활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서론이며 소생이 하고픈 본론은 이렇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 두차례의 열병 분열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소대장의 집합 구령이 떨어지고 집합하면 어떤 명분이던지 훈련의 부실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전 소대원에 빳따행사가 벌어집니다.
어느날 아침 소생은 아침에 기상을 하여 내무반 의자에 앉는 순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읍죠.
앉는 순간 엉덩이에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인데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살펴보니 콩알보다 더 큰 뾰루치가(일명 뽀드락지) 밤 사이에 생겨서 곪아 있고 상처 주변이 화끈거리고 있었읍니다.
상처가 물체에 닿으면 아프고 서 있으면 고통을 덜 느끼는 상황에서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훈련을 실시하고 다음 순서인 빳따 행사를 위해 집합을 했지요.
여름이라 전 소대원 빤스차림으로 집합을 했고 소대장의 명에 의하여 분대장이 한명씩 돌아가며 10여대의 빳따를 치면 모두 죽을상으로 엉덩이를 움켜쥐는데 드디어 소생의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빳따를 기다렸지 않겠읍니까?
그런데
분대장이 소생의 엉덩이에 두차례 빴따를 내려치더니 중단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소생은 속으로 빨리 쳐라하고 있는데 "야~ 너 궁뎅이에 무슨 이상이 있어?"하고
묻는것이 아니겠읍니까?
소생은 당연히 "없읍니다!"하고 고함을 내 질렀죠.
원래 군대는 고함으로 시작해서 고함으로 끝나는 곳 아닙니까.
그러니 분대장이 "다음" 하고 소생의 순서를 끝내고 다음 선수(빴따 맞을)를 불렀읍니다.
소생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슬그머니 엉덩이에 손을 가져갔읍니다.
그런데 손에 끈적 끈적한 거시 묻어나길래 손을 보니 빨간 피가 묻어있는 것이었읍니다.
그 순간 상황 판단은 끝이 났읍니다.
엉덩이에 생긴 뾰루지가 두대의 빳따로 인해 터져 버려서 그 상처의 피가 분대당으로 하여금 빴따 맞아 엉덩이가 터진것으로 오해를 하게 한 것 입니다.
빴따 행사가 끝나고 분대장은 소생에게 지금 즉시 121에(당시 미8군 영내 병원을 원투원으로 호칭했음) 다녀 오라고 하데요.
소생의 원투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기분이었지요.
아픈 상처를 말끔히 낳게 해주고 병원에도 보내주니 빳따 만세. 분대장 만세. 의장대 만세를 얼마나 속으로 외쳤겠읍니까?
그날 이후 소생은 약 2주일간 빴따 행사에 열외를 받았읍니다.
그때는 정말 살맛이 나데요.
그 당시 분대장이었던 200기 이 석윤 선배(강원도 춘천 출신)가 이 사연을 보신다면 기억을 하실런지요?
의장대 선후배님들이 그립습니다.
공군본부 의장병인 소생이 용산에 있는 미8군 의장대에 파견근무를 하던 시절.
당시 계급은 짝대기 두개.
미8군 의장대는 미국군, 영국군, 태국군 의장대와 미국, 영국군의 군악대가 미8군을 예방하는 고위 인사를 위한 열병 및 분열 행사를 주 목적으로 하는 곳.
미국군 중대장의 영어 구령에 맞추어 모든 행사 훈련을 하는데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30분 가량 훈련이 실시 되고 나머지 시간은 각 군별 자유시간이며 외국군 외 한국군은 육, 해 공, 해병대 4개 소대가 외국군과 같은 건물내에서 생활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서론이며 소생이 하고픈 본론은 이렇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 두차례의 열병 분열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소대장의 집합 구령이 떨어지고 집합하면 어떤 명분이던지 훈련의 부실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전 소대원에 빳따행사가 벌어집니다.
어느날 아침 소생은 아침에 기상을 하여 내무반 의자에 앉는 순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읍죠.
앉는 순간 엉덩이에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인데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살펴보니 콩알보다 더 큰 뾰루치가(일명 뽀드락지) 밤 사이에 생겨서 곪아 있고 상처 주변이 화끈거리고 있었읍니다.
상처가 물체에 닿으면 아프고 서 있으면 고통을 덜 느끼는 상황에서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훈련을 실시하고 다음 순서인 빳따 행사를 위해 집합을 했지요.
여름이라 전 소대원 빤스차림으로 집합을 했고 소대장의 명에 의하여 분대장이 한명씩 돌아가며 10여대의 빳따를 치면 모두 죽을상으로 엉덩이를 움켜쥐는데 드디어 소생의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빳따를 기다렸지 않겠읍니까?
그런데
분대장이 소생의 엉덩이에 두차례 빴따를 내려치더니 중단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소생은 속으로 빨리 쳐라하고 있는데 "야~ 너 궁뎅이에 무슨 이상이 있어?"하고
묻는것이 아니겠읍니까?
소생은 당연히 "없읍니다!"하고 고함을 내 질렀죠.
원래 군대는 고함으로 시작해서 고함으로 끝나는 곳 아닙니까.
그러니 분대장이 "다음" 하고 소생의 순서를 끝내고 다음 선수(빴따 맞을)를 불렀읍니다.
소생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슬그머니 엉덩이에 손을 가져갔읍니다.
그런데 손에 끈적 끈적한 거시 묻어나길래 손을 보니 빨간 피가 묻어있는 것이었읍니다.
그 순간 상황 판단은 끝이 났읍니다.
엉덩이에 생긴 뾰루지가 두대의 빳따로 인해 터져 버려서 그 상처의 피가 분대당으로 하여금 빴따 맞아 엉덩이가 터진것으로 오해를 하게 한 것 입니다.
빴따 행사가 끝나고 분대장은 소생에게 지금 즉시 121에(당시 미8군 영내 병원을 원투원으로 호칭했음) 다녀 오라고 하데요.
소생의 원투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기분이었지요.
아픈 상처를 말끔히 낳게 해주고 병원에도 보내주니 빳따 만세. 분대장 만세. 의장대 만세를 얼마나 속으로 외쳤겠읍니까?
그날 이후 소생은 약 2주일간 빴따 행사에 열외를 받았읍니다.
그때는 정말 살맛이 나데요.
그 당시 분대장이었던 200기 이 석윤 선배(강원도 춘천 출신)가 이 사연을 보신다면 기억을 하실런지요?
의장대 선후배님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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