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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북파요원의 동해안 추억
김**
|Views 980
|2004.05.13
봄만되면 동해안 재진항구의 미역 체취 후생 사업 생각이 난다.
동해안 속초 간성 거진항구 다음에는 북쪽으로 제진 항구가 있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하든 시절에는 여기서부터 휴전선까지는 군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민간인들의 출입이 금지 되여 있는곳이다.
그러기에 육,해, 공군 각 특수부대 기관에서 후생사업을 한답시고 민간 어선들을
공작선으로 징발 차출해서 선주에게는 수입의 60% 를 주고 우리는 40%를가지며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에게 기관 문관 신분증을 발행해서 신분을 보장하며 윤문관이 직접 배에 상주 감시하는가운데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바다에 들어가서 미역 채취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배의 왕래가 없는 이 어장에는 황금 어장이라는 말 그대로 무진장한 미역이 있었든것이다.
이것은 바로 돈이 였다.
그당시 나는 새들도 떨어트린다는 김창용중장의 특무대, 온통 동해안을 누비든
김동석소령이 이끄는 아야진 청간 육군HID, 해군 ONI 해병 UDT 등 등 우리 공군은 신사로 생각 했든지 아예 그 기관원들 틈에 끼워주지를 않았다.
그러니 우리 오류동 공군특무대는 자연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때였다.
마침 3월 23일 동해안 침투작전에서 적에게 기습을 당하고 그기다가 전우한사람을(H 상사 전사) 잃은 나머지 모두가 좌절해 있을때인데 파견대장님께서 나를 또 상사로 임명 내 밑에 나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은 문관 하나를 중사로 만들어서 다리고 나가 그 기관원들틈에 끼여 공군특무전대 오호리 파견대의 지위를 확보하라는것이다.
사실 그당시 타군 기관원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런 후생 사업 경력이나 군대 경력은 물론 나이가 나보다 훨신 많았고 그리고 뒤에서 돌봐주는 빽과 돈을 마음껏 써서인지 환경이 좋은 사람들이 였다.
나는 비록 상사라고는 하지만 그기 비해서 나이도 그들보다 훨신 어렸고 후생사업 경력도 없었으나 다만 누가 나를 인정해주면 목숨을 거는 의리와 밀어 부치는 뱃짱하나만 갖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경남 방어진 항구에가서 대구리배 2척과 제주도 해녀 5명을 우리 공군특무대 문관으로 고용해서 제진 항구로 끌고 왔다.
물론 문관인 윤중사를 다리고서 각기 자기네 부대의 지위를 확보키 위한 기관원들의 암투 속에서 공군특무대의 위상을 지켜 가면서 각 기관원 책임자들과 어깰를 겨누기 시작했다.
적지가 빤히 보이는 민간인 통제 구역속의 바다 밑은 황금 어장 바로 그것이 였다.
수없이 많은 미역을 채취 했다.
무지하게 많은 돈이 생겼다.
나는 계속 생기는 돈마다 오호리에 있는 파견대장님에게 갖어다 바쳤다.
배에는 윤중사가 타고 다니면서 관리하고 나는 배가 항구를 떠나간뒤에는 지서장을 비롯해서 지방 유지들과 다른 특수부대 기관 책임자들이 한데 어울려 사격 연습이 아니면 사냥을 다녔으며 술집을 누비고 다녔다.
사람의 욕심이란 묘한법 다른 기관원들까지 내 손아귀에 확잡아 넣었고 우리 대구리배 문관 선원들과 해녀들이 내 빽만 믿고 신나게 일하며 돈을 벌어 드릴때 나는 희열을 느꼈고 또 돈이 많이 생기니까 욕심이 잉태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내 현재의 위치와 계급을 망각하기 시작했고 온천하가 내것인냥.............
윤중사에게 내가 없는동안 높은 분들 모르도록 잘 알어서 하라고 일러 놓고(전권을 위임하고) 그동안 빼 돌려 두었든 많은 돈을 들고 고향과 같은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 덕실 그리는 강원도 태백으로 갔다.
지금 같았으면 몇시간 만이면 달려갈 거리를 그때의 교통 사정으로는 하루 반이 소요되는곳이다.
술에 취하면 길 거리에서도 권총을 빵 빵 쑤면서 친구들과 후배들 앞에서
폼을 잡으면서 백만 장자처럼 돈을 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어린 나이에 적지에서 당했든 기습의 후유증 때문에 그래서라도 내 마음을 달래보고 싶었든 것이였음을 새삼 느긴다.
그 지역 경찰이나 군부대에서도 더 큰 사고를 칠가봐 나를 아주 상전 모시듯이 대우 해주는바람에 그 재미에 빠져서 2주만에 제진 항구로 돌아 왔을뗀 내 전권을 위임 받은 윤중사의 배신으로 인해서 나는 무단 이탈자의 신분이 되여 있었다.
오호리 파견대장님 앞에 불려 갔다.
다행히 영창은 안보내고 무단 이탈자로서의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1개월간 외출 금지 빳다 15대를 맞아야만 했다.
화가 머리끝가지 치민 파견대장님이 직접 빳다를 들고 왔다
빳다 15대를 때린다는것이다.
나는 기꺼히 맞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믿었든 윤문관이 나를 배신하고 자기가 제진항 파견대장이 되여 있는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었기에 이를 뿌드덕 갈다보니 더 큰 용기가 생겨 빳다 열다섯대
맞는것이 어려웁지 않을것 같았다.
오히려 이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부대원들이 안절 부절이다.
빳따를 치기 시작 했다.
하나, 둘, 셋,
열다섯대를 때리겠다든분이 겨우 세대를 치고 그냥 빳따를 팽개치면서 반성문을 써라고 하면서 그냥 대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끝 나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이 의문이 였는데 이번에 한국에 나가서 만나게되면 꼭 한번 물어 봐야겠다.
그당시 파견대장 유규림 대위........
그 후에도 내 거칠은 군대 생활 동안 계속 나를 감싸 주셨든 형님 같은 그분을 영원히 잊어버릴수가 없다.
며칠전에는 51년전 미인 처럼 아름답기만 하든 사모님과 장시간 전화상으로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얼굴은 못보고 전화상으로 나누었든 사모님이 분명 70세가 훨씬 넘었을텐데
아직도 그때 그음성 그대로이다,
사모님 닮아서 예쁘기만하든 어린 딸 명숙이
이뻐서 우리 대원들은 질투를 해가면서 서로 업어주든 유명숙이가 벌써 50세가 넘은 중년으로 대학교수가 되여 연세대와 이화 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단다.
아이니칼하게도 전방에서 업어주든 문제아 같은 병사는 목사가되고 업혀 다니든 대장님딸은 교회 권사님이 되셧다니 이 얼마나 소설과 같은 이야기 입니까?
인자하기만 하시든 유규림 파대장 그분은 현재 공군 안국 동지회 회장(공군대령예편) 직분을 맡고 계시면서 북파요원들의 보상법을 통과 시키기 위한 일에 총력을 다하고 계신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 나도 한사람이지마는………..
또한 수많은 북파요원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 갔는데 위령탑이라도 세워서 그들의 영혼이라도 달래 주고 싶어하는 공군 안국 동지회 회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머리 숙여 기도 한다.
또한 이일의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무총장님은 나도 잘아는 병 19기 이원성 예비역 상사가 계신다고 한다.
모두 보고 싶은 얼굴들이자 지나간 이야기 꺼리이다.
동해안 속초 간성 거진항구 다음에는 북쪽으로 제진 항구가 있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하든 시절에는 여기서부터 휴전선까지는 군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민간인들의 출입이 금지 되여 있는곳이다.
그러기에 육,해, 공군 각 특수부대 기관에서 후생사업을 한답시고 민간 어선들을
공작선으로 징발 차출해서 선주에게는 수입의 60% 를 주고 우리는 40%를가지며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에게 기관 문관 신분증을 발행해서 신분을 보장하며 윤문관이 직접 배에 상주 감시하는가운데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바다에 들어가서 미역 채취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배의 왕래가 없는 이 어장에는 황금 어장이라는 말 그대로 무진장한 미역이 있었든것이다.
이것은 바로 돈이 였다.
그당시 나는 새들도 떨어트린다는 김창용중장의 특무대, 온통 동해안을 누비든
김동석소령이 이끄는 아야진 청간 육군HID, 해군 ONI 해병 UDT 등 등 우리 공군은 신사로 생각 했든지 아예 그 기관원들 틈에 끼워주지를 않았다.
그러니 우리 오류동 공군특무대는 자연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때였다.
마침 3월 23일 동해안 침투작전에서 적에게 기습을 당하고 그기다가 전우한사람을(H 상사 전사) 잃은 나머지 모두가 좌절해 있을때인데 파견대장님께서 나를 또 상사로 임명 내 밑에 나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은 문관 하나를 중사로 만들어서 다리고 나가 그 기관원들틈에 끼여 공군특무전대 오호리 파견대의 지위를 확보하라는것이다.
사실 그당시 타군 기관원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런 후생 사업 경력이나 군대 경력은 물론 나이가 나보다 훨신 많았고 그리고 뒤에서 돌봐주는 빽과 돈을 마음껏 써서인지 환경이 좋은 사람들이 였다.
나는 비록 상사라고는 하지만 그기 비해서 나이도 그들보다 훨신 어렸고 후생사업 경력도 없었으나 다만 누가 나를 인정해주면 목숨을 거는 의리와 밀어 부치는 뱃짱하나만 갖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경남 방어진 항구에가서 대구리배 2척과 제주도 해녀 5명을 우리 공군특무대 문관으로 고용해서 제진 항구로 끌고 왔다.
물론 문관인 윤중사를 다리고서 각기 자기네 부대의 지위를 확보키 위한 기관원들의 암투 속에서 공군특무대의 위상을 지켜 가면서 각 기관원 책임자들과 어깰를 겨누기 시작했다.
적지가 빤히 보이는 민간인 통제 구역속의 바다 밑은 황금 어장 바로 그것이 였다.
수없이 많은 미역을 채취 했다.
무지하게 많은 돈이 생겼다.
나는 계속 생기는 돈마다 오호리에 있는 파견대장님에게 갖어다 바쳤다.
배에는 윤중사가 타고 다니면서 관리하고 나는 배가 항구를 떠나간뒤에는 지서장을 비롯해서 지방 유지들과 다른 특수부대 기관 책임자들이 한데 어울려 사격 연습이 아니면 사냥을 다녔으며 술집을 누비고 다녔다.
사람의 욕심이란 묘한법 다른 기관원들까지 내 손아귀에 확잡아 넣었고 우리 대구리배 문관 선원들과 해녀들이 내 빽만 믿고 신나게 일하며 돈을 벌어 드릴때 나는 희열을 느꼈고 또 돈이 많이 생기니까 욕심이 잉태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내 현재의 위치와 계급을 망각하기 시작했고 온천하가 내것인냥.............
윤중사에게 내가 없는동안 높은 분들 모르도록 잘 알어서 하라고 일러 놓고(전권을 위임하고) 그동안 빼 돌려 두었든 많은 돈을 들고 고향과 같은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 덕실 그리는 강원도 태백으로 갔다.
지금 같았으면 몇시간 만이면 달려갈 거리를 그때의 교통 사정으로는 하루 반이 소요되는곳이다.
술에 취하면 길 거리에서도 권총을 빵 빵 쑤면서 친구들과 후배들 앞에서
폼을 잡으면서 백만 장자처럼 돈을 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어린 나이에 적지에서 당했든 기습의 후유증 때문에 그래서라도 내 마음을 달래보고 싶었든 것이였음을 새삼 느긴다.
그 지역 경찰이나 군부대에서도 더 큰 사고를 칠가봐 나를 아주 상전 모시듯이 대우 해주는바람에 그 재미에 빠져서 2주만에 제진 항구로 돌아 왔을뗀 내 전권을 위임 받은 윤중사의 배신으로 인해서 나는 무단 이탈자의 신분이 되여 있었다.
오호리 파견대장님 앞에 불려 갔다.
다행히 영창은 안보내고 무단 이탈자로서의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1개월간 외출 금지 빳다 15대를 맞아야만 했다.
화가 머리끝가지 치민 파견대장님이 직접 빳다를 들고 왔다
빳다 15대를 때린다는것이다.
나는 기꺼히 맞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믿었든 윤문관이 나를 배신하고 자기가 제진항 파견대장이 되여 있는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었기에 이를 뿌드덕 갈다보니 더 큰 용기가 생겨 빳다 열다섯대
맞는것이 어려웁지 않을것 같았다.
오히려 이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부대원들이 안절 부절이다.
빳따를 치기 시작 했다.
하나, 둘, 셋,
열다섯대를 때리겠다든분이 겨우 세대를 치고 그냥 빳따를 팽개치면서 반성문을 써라고 하면서 그냥 대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끝 나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이 의문이 였는데 이번에 한국에 나가서 만나게되면 꼭 한번 물어 봐야겠다.
그당시 파견대장 유규림 대위........
그 후에도 내 거칠은 군대 생활 동안 계속 나를 감싸 주셨든 형님 같은 그분을 영원히 잊어버릴수가 없다.
며칠전에는 51년전 미인 처럼 아름답기만 하든 사모님과 장시간 전화상으로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얼굴은 못보고 전화상으로 나누었든 사모님이 분명 70세가 훨씬 넘었을텐데
아직도 그때 그음성 그대로이다,
사모님 닮아서 예쁘기만하든 어린 딸 명숙이
이뻐서 우리 대원들은 질투를 해가면서 서로 업어주든 유명숙이가 벌써 50세가 넘은 중년으로 대학교수가 되여 연세대와 이화 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단다.
아이니칼하게도 전방에서 업어주든 문제아 같은 병사는 목사가되고 업혀 다니든 대장님딸은 교회 권사님이 되셧다니 이 얼마나 소설과 같은 이야기 입니까?
인자하기만 하시든 유규림 파대장 그분은 현재 공군 안국 동지회 회장(공군대령예편) 직분을 맡고 계시면서 북파요원들의 보상법을 통과 시키기 위한 일에 총력을 다하고 계신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 나도 한사람이지마는………..
또한 수많은 북파요원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 갔는데 위령탑이라도 세워서 그들의 영혼이라도 달래 주고 싶어하는 공군 안국 동지회 회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머리 숙여 기도 한다.
또한 이일의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무총장님은 나도 잘아는 병 19기 이원성 예비역 상사가 계신다고 한다.
모두 보고 싶은 얼굴들이자 지나간 이야기 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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