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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말도 섬 총기 난동 사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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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0

말도섬 총기 난동 사건

우리 정보부대 방에서 지금 이시간 옛 파견대 탐방 푸로그렘으로 많은 회원들이 서해안 북쪽 연백 앞에 있는 말도(파견대) 섬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꼭 이번 정보부대 출신 말도작전을 성공 시키고 돌아 오기를 기원 합니다. )

비록 나는 직접 이번 작전에 참가는 못하지마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든 곳이기 때문에 땅끝이라고 할수 있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48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섬 말도 를 그리워 하면서 이글을 씁니다.
옛날에 이글을 한번 올린 일이 있는데 말도섬을 회상 시켜 드리기 위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서 올립니다.

동해안 기습작전에서의 받은 충격이 채 가시지않는 상태에서, 오류동 본부에서는 동해안 오호리파견대 김태원이가 작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6006부대(네꼬부대)가 사용하다가 우리 공군정보부대에 건물과 임무를 넘겨줘서,
새로 생기는 말도섬에 나를 배속시킨것이다.(그해의 작전은 주로 연백 앞바다를 통하는 작전이 였음)
새로 생기는 부대이자 임무 또한 막중했기에 소령이 파견대장이였고, 상사만도 7명이나 되였으며 대원들은 나를 비롯해서 30여명이였다.
여러 파견대와 부서에서 특별히 차출되여온 베테랑급의 무서운 첩보부대원 들이였다.
이 30명의 무서운 대원들이 (이중에 내 동기생은 3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선배들) 혹시나 있을 하극상 난동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오류동 본부에서는 악질로 유명한 상사 7명을 새로 창설하는 말도섬 파견대로 같이 배치 시켰든것이다.

대원들 중에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잡아다가 30명을 연병장에 집합 시켜놓고 낌새를 보이는 대원을 앞에 끌어 내여 7명의 상사들이 빳다로 주먹으로 발길질로 반 병신을 만들고 쓸어지면 바케즈물을 퍼부어 가면서 초죽음을 만들었다.
겁을 주기 위한 시범인동시에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하,극상 난동의 경고성 기합이 였다.

이섬은 이따금 인민군들이 넘어와서 목을 베여 간다는 이북 염전이 빤히 보이는 전방 섬이다. 밤에는 아예 콘셋트 문만 꼭 걸어 잠구고 보초도 없이 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해야한다,
모두가 36발짜리 탄창이 꽃인 M2를 끌어 않고 잠을 청한다.
그런데 작전때마다 내가 필요하다고 불려 나간다.
한번씩 배를 타고 작전을 나갔다오면 아무리 뱃짱이 좋기로 유명한 나였지마는 자꾸만 무서워지고 반면에 더 잔인해진다.
자꾸만 싸나워진다.
왜? 그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소문은 김태원이가 작전 잘한다는것이다.

사람 미치고 환장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그당시 내 암호가 깡패중대 김상사 였다.
(당시 통신수단은 전기가 없었기에 아예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손으로 돌려가면서 발전을 시키는 통신기를 사용 했음)
통신대에는 6006부대에 있다가 현지 입대한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L 중사님이 계셨다.

이분은 나만 만나면 “야! 태원아, 오늘 또 무전으로 깡패중대 김상사 찮드라.” 이말은 작전이 힘들고 중요하면 무전으로 꼭 나를 찾는다는것이다.
그소리를 들을때마다 나는 등꼴이 오싹 함을 느낀다.
그러나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작전을 나갈때는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꽉 막힘을 느낀다.
너무 자주 작전에 참가 하다보니 나도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렇타고 쫄병인 내가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라는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후방에 빠저 나가서 마음 편한 군대 생활을 하고 싶었다,
밤마다 눈만 감으면 적지에서 기습 당하든 당시 상황과 죽은 H상사의 시체의모습과 죽은 시체를 어께에 메고 휴전선을 넘든 악몽이 나의 잠을 설치게 하며 밥맛도 뚝 떨어져서 식사를 할 수가 없게되였다..
아프다고 침대에 들어 누어서 굶은 지가 사흘이 된 것 같으다.
이틀 까지는 그래도 동기생들과 선배들이 찾아와서 아프다는 나를 위해서 위로를 하며 빨리 회복해서 작전에 나가야 한다고………………..
그러나 부하가 그렇게 고민하고 굶고 있는대도 파견대장 L 소령이나 7명의 상사는 한사람도 찾아와 주지 않었다.
모두가 나에게 관심 밖이되여 간다고 생각하니 무척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사흘이나 굶어서인지 정신이 좀 휘미 한것도 같고….. 손도 좀 떨리고……..
그날따라 밖에는 부슬 부슬 가랑비가 나리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의 (콘셋트와 식당의 거리는 약 150m 거리에 위치) 모두 점심 시간인지라 식당으로 다 내려가고 텅빈 30명 수용 콘셋트 복판쯤에 내 야전 침대와 사물통이 있고 그 곁에 는 30발 총알이 장전된 M2가 서 있었는데 갑자기 총을 끄내여 실탄을 장전하고 총구를 내 손바닥을 겨누고 쏴 버릴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후방으로 후송 시키지 않을가 한는생각을 하면서 ………..

그런데 문제는 며칠을 굶어서인지 안전장치 핀을 어떤쪽으로 향해야 단발인지 연발인지 기억이 안난다.
단발 같으면 “땅” 하고 손 바닥만 뚫리면 후방병원으로 후송되여 얼마 동안만 치료하면 되지만 만약 핀이 연발로 되여 있으면 따따따따땅 한번 쏠려는순간 연속으로 총알이 나가서 손이 완전히 달아나는 병신이 되는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다리 쪽에다 총구멍을 겨누어 봤다,
그러나 도저히 연발인 상태에서는 총을 쏴서 손이나 다리가 떨어저 나간 병신이 되고 싶지않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서 점심식사를 끝마친 병사들이 콘셋트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당시 나보다 2기 선배인 두 대원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올라와 콘셋트 입구 침대에 걸터 앉아서 장기를 뚜기 시작한다,
콧셋트가 떠나갈듯이 큰 소리로 장기판을 때리면서 “장이야” “궁이야” 소리를 지른다.

나는 원래 장기를 뚫줄 모른다.
천천히 하는 것을 싫어한다. 뭐든지 속전 속결이다, 그토록 성격이 급하다.
그래서인지 그당시 유행하든 당구도 칠줄 모른다.
한번 치면 와다닥 싹 쓸어버려야 속이 후련하기 때문에 천천히 끝맺는 것을 싫어 했기에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장기를 뚜면서 장이야, 궁이야 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여서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운 내귀를 자극하므로 사흘을 굶어서 텅 빈 내 골이 뻐게지는듯이 쾅쾅 울린다.
“이 X끼들”!
나도 모르게 침대위에서 뻘덕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세워뒀든 총을 끄집어 들고 제일 소리치고 까부는 선배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따따따따따따따땅” 연발이였다.
나는 나대로 연발로 나가는 총의 반동에 의해서 홀카닥당 뒤로 자빠저 버리고 내가 조준은 했으나 떨렸든지 내가 쏜 총알이 선배가 앞으로 치켜쓴 6각 작업모자의 앞창을 뚫고 천정에 총구멍을 내면서 지나갔다.

연발이 였기에 일곱발이나 동시에 나갔든것이다.
장기 뚜든 두선배는 너무 놀라서 침대 밑에 들어가 숨었고 식당에서 식사하든 병사들은 놀라서 모두 콧셋트로 달려 올라 왔다.
삽시간에 파견대는 아비 규환이 되고 말었다.

탄약 연기가 자욱한 콘셋트 입구로 7명의 악질 상사들이 몰려 왔다.
문에 들어서자 “ 누가 총 쐈어” 하면서 훌터 본다.
이때사 침대 밑에 숨어 있든 선배 두사람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상사 얼굴을보고…또 내 얼굴을보고 불안해 하니 상사들은 눈치를 차리고 내 앞으로 닥아 오면서 사나운 눈초리로 다시 한번 소리 친다.
“누가 총 쐈어.?”
벌렁 자빠저 있든 내가 슬거머니 일어나 앉으면서 대답했다.

“ 내가 쐈어.”
“왜? 쐈어?” 나는 여유있게 천천히 대답 했다.
“총알이 나가는지 안나가는지 볼려고 쐈어”
“뭐 이 X 끼” 하면서 때릴려고 달겨든다, 나도 질세라 벌떡 일어나서 신짝이고 사물통이고 뭐고.닥치는대로 집어던졌다.
정말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나도 모를일이다. 7명의상사와 나 한사람의 대결이다,
그것도 3일을 굶은 상태에서 치고 받고 하다가 결국 한쪽 팔을 그들의 손에 잡히고 말었다.
좁은 공간에서 손을 뺄려고 주먹을 첬든 것이 콘셋트 안에 있는 그 강하고 뚜꺼운 화이바 속에 내 주먹이 쑥 들어가면서 완전히 두손이 잡히는순간 나는 기절을 하고 말
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이 몰롱한 가운데 여러 사람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눈을 살며시 떠 봤다.
온 하늘이 사람들의 눈알들로 빤짝 빤짝 가득 찼다.
이상하다, 죽으면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데 내가 천당에 왔는지?
아니면 지옥에 왔는지 어쩨서 이렇게 온하늘이 눈알 투성인가? 내가 살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 다리를 꼬집어 봤다.
아픈것을 봐서는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눈을 감고 다시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가 기절을하자 죽은줄알고 파견대장으로부터 대원들에 이르기까지, 특히 동기생들은 내입에 물을 떠 넣어 주면서 안타깝게 내이름을 부르며 드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가 누워서 눈을 뜨고 위를 쳐다 봤을때는 모두 내 얼굴을 드려다 보느라고 밑으로 향한 눈알들이 나에게는 온통 눈깔들 뿐이였든것이다.
그때 대장님의 다정한 음성이 들린다.(이분은 아주 서민적으로 생겼고 누가봐도 특수부대 장교 같지를 않었지마는 아주 유능한 정보장교였다.)
“태원아, 이제 정신이 드느냐?”
그때야 설움이 복받힌 나는 마구 소리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럴수가 있습니까?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 약 한알 갔다 줬어요? 윗 사람들이 내 신상에 대해서 관심이나 가져 줬어요? “

파견대장은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그당시 파견대에는 구급 약 마저 준비 안된 상태였음)
그리고는 상사들과 병사들에게 나를 잘 도와 주라고 부탁하고는 대장실로 올라가 버렸다.

밖에는 가랑비도 멎었고 구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실컷 울었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내 마음 속에는 평온 찾아 오고 있었다.
뒷편 콘세트 통신실에서는 계속 요란하게 똔스스 똔똔 삐삐비------교신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날따라 그소리가 나에게는 영 기분 나쁘게 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가 얼마지 않아서 통신대 L중사가 나에게 달려와서 하는말이
“ 야, 태원아 너 본부에다 미첬다고 무전 첬다, 그래서 네꼬부대장께서 특명으로 헤리콥트를 보낸단다, 45분 있으면 도착하니 빨리 준비해라.”

나는 너무 놀랐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 우리 동내에는 미친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동내 사람들이 미친사람을 붙잡아다가 묶어놓고, 막 패든가 굵은 뾰쭉한 침을 미친 사람 몸 여기 저기를 마꾸 찌르는 것을 봤다.
그런대도 미친 사람은 정신이 없어서인지 아픈줄도 모르고 히죽 히죽 웃는 것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무척 무서워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미친 사람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 후방에 나가면 나를 정신 병원에 입원을 시킬텐데…….
역시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조금 정신상태가 이상한 친구가 있으면 저 X끼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려. 라고 농담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청량리로 가야되는 신세가 되였다………..
미친 사람은 미처서 아픈줄을 모르지마는 나는 정신 상태가 멀쩡한데 그 아픔을 어떻게 참는다는 말인가?
나는 벌떡 일어 났다.
“야, 너희들 내가 미첬냐? 봐라 , 멀쩡하잖아…..” 하면서 일어서서 콘셋트 바닥으로 내려가서 내가 껑충 껑충 뛰여 보였다.
그런데 이게 왼일인가. 내무반에 있든 모두가 놀라서 이구 동성으로 소리 친다.
“야, 태원이 또 발작한다. 묶어라 빨리 묶어.”

큰일 났다 이제 내 변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잘못 변명하다가는 꽁 꽁 묶여서 헬리콥터에 실리겠다.
포기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45분만에 미공군 헬리콥터가 도착 했고 군의관과 한국통역장교 그리고 승무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여 왔다.
간단한 상황을 묻고 곧 청진기로 미군 군의관께서 진찰을 한다,
결과는 미첬으니 바로 후송해야 된다는것이다.
나는혼자 생각 했다. 정말 사람 하나 병신되는 것은 잠깐이란 사실을 터득했다..
꼼짝 없이 미친놈 취급 당해서 후송되는것이다.
들것에 묶여서 헤리콥트쪽으로 실려 가는 들것뒤에는 30여명의 내 동료들이 울면서 딸아오고 있다.
아마 미처서 떠나가는 전우의 모습속에서 슬픔을 느겼을것이고 또한 언젠가는 자기들도 나처럼 이렇게 실려서 후방으로 가게될지?
아니면 죽어서 시체로 이섬을 빠저 나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휴전선이 가깝기 때문인지 헤리콥트가 떠서 서해 바다위를 얕게 날아 45분만에 김포 군용 비행장에 착륙 했다, 이미 네꼬부대에서 보내준 앰브란스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급하게 달린엠브란스가 오류동 우리부대 의무실에 도착하니 밤 9시쯤 되였다.
나 하나 때문에 온 부대가 비상이 걸려 있었다.
그기다가 의무실 바로 앞콘세트에서는 미그기를 몰고 방금 자유의 나라로 귀순한 노금석 대위를 심문하느라고 장병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병실에는 비상 근무를 하고 있든 의무실장님의 진찰이 끝나자 곧 닝겔 주사를 두병을 주사 했는데 약이 얼마나 좋았든지 언제 3일 굶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원기를 회복 했다.
그기다가 하루밤을 악몽 없이 푹 자고 났드니 훨 훨 날듯이 몸이 가벼웠다.

이틋날 아침 11시쯤 행정과에 근무하는 병사가 나를 찾아 왔다.
행정과장께서 불러오라고해서 왔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이 수고 했다고 하면서 최소한도 2주정도는 휴가를 끊어 주면서 푹 쉬고 돌아오라고하면서 등이라도 두드려줄것이다라는 기대감을 갖고
행정과장 앞에가서 섰다.
“말도 파견대 일병 김태원 행정과장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하고 경례를 부첬다.

그런데 유도 선수같이생긴 행정과장 김세권 대위는 인상을 팍 쓰고 나를 사무실 넓은공간으로 끌고 나와서 뎃뜸 묻는 것이
“너 이 X끼 말도섬 에서 미처서 들어 왔어?”
“예 그렇습니다” 팍 팍 복싱하듯이 내 오른쪽 아구와 왼쪽 아구를 주먹으로 힘껏 친다.
“너 몇기 생이야” “옛 33기생입니다” 팍 팍 또 두대를 연거푸 맏는다.
“ 너 최종학교 어디 나왔어?” 답을 하면 또 두대, :”너 몇 살이야” 또 두대.
계속 터진다. 맞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된다.

나는 환자가 아니냐?
그래서 나는 도저히 참을수 없어서 차렷 자세에서 양 다리를펴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반항심으로 째려보면서 이야기 했다.
“ 여보시오, 나는 환자요, 우리 인간적으로 대 합시다.”
“ 뭐 여보시오, 인간적으로 대하자고, 이 새끼……” 하면서 가슴 얼굴 가릴것 없이 사정없이 때린다.
나는 생각했다, 너무 심하게 패기 때문에 차라리 좀 쓸어저 뻗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기 때문에 그럴수가 없었다.
때리다 때리다 지치니까, 유도에 업어치기를 할려고 짊어지는데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가나…………………나도 운동깨나 한놈인데…. 결국 쓸어지지 않으니까 땀을 비오드시 흘리면서 하는말이 다음에 보잔다.

많은 행정과 요원들이 다 보는앞에서 망신을 당한 셈이다.
내 입안은 터저서 엉망이고 콧피를 흘려서 코주부 처럼 되여 있었다.
사무실을 나올려고 하는데 이광경을 보고 있었든 행정과 선임하사관인 유인환 상사가 자기를 딸아오란다.
기간사병들 내무반으로 끌고 가드니 “
이자식 선임하사관 보는 앞에서 장교에게 하는 버릇이 그것 뿐이야?
“빳따 열 다섯대 마자아.”
기합을 넣어 가면서 열다섯대를 거뜬히 맞았다.

뒤에서 이광경을 보고 있든 내무반장 최 중사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선임 하사관님 이 새끼가 정말 그랬어요?. 맛좀 봐야 겠네 파견대만 돌아 다녀서 본부 맛을 모르는구만 ” 이렇게 해서 열 다섯대를 또 맞았다.
보나 마나 내 궁둥이가 완전히 다 터져서 엉망 진창이 된 것 갔다.

그러나 이제는 기합이 다끝났겠거니 했는데, 느닷없이 작업모를 삐딱하게 쓴 키가 조그마한 병사하나가 내무반으로 들어오면서 이광경을 보고 하는말이
“야, 이 X끼 나는 이놈의 X 끼가 내 선밴줄 알었네, 너 이 X끼 내 빳다 맛좀봐라. “하면서
열다섯대를 또 때리겠다는것이다, 이사병은 나보다 2기선배인데 보일러실 목욕탕 근무자이다. 내가 지난번 말도섬으로 전출을 갈 때 하루밤을 본부에서 묵는통에 목욕탕에가서 샤워를 하는데 찬물이 자꾸 나오기 때문에 나는 우리부대 심부럼하는 쑈리 인줄알고(미6006부대와 같이 생활 했으며 이부대는 모두 계급장을 안달고 다니기 때문에 누가 상사인지 누가 쑈리인지 처음에는 구분이 잘 안됨)
반말로 “ 야, 찬물이 잖아 뜨거운물 좀 더 올려 “ 하고 큰 소리를 첬는데 선배 였든 모양이다. 그 꼬마 선배의 빳다 열다섯대중 세데째를 맞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아 땀을 씻고 있는 행정과 유인황 선임하사관 앞에가서 내가 분노에 찬 얼굴로 말 했다,
” 선임하사관님 아시다 싶이 오늘 나는 너무 많이 맞았습니다. 더 이상 나를 때려서 생기는 일은 선임 하사관님이 책임 지십시오. 이제부터는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확 박살을 내고 싶었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지마는 이것은 너무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때서야 선임하사관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빨리 가서 대야에 물 떠와서 저애 얼굴 시켜줘라.
빳다 세데를 때리고 꼬마 선배는 내 얼굴을 세수 시켜 줘야만 했다.

나는 의무실에 돌아와서 화풀이를 군의관 소령님에게 다 했다.
군의관께서는 백배 사죄를 한다,
그리고 당장 네꼬부대장과 우리 부대장을 찾아가겠다고 했드니 극구 사죄를 한다. 자기 환자를 이 모양으로 만든 군의관의 책임 또한 크다.
군의관은 그때사 행정과장이 화가 난 이유를 이야기 해 줬다,
그 행정과장은 어제 일찍 퇴근을 해서 말도 총기 난동사고를 모르고 있었단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했드니 부대장님께서 어제 말도에서 후송되여온 미친 환자 어떻게 되였느냐?고 물었드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 했단다. 그러니 부대장으로부터 행정과장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기합을 톡톡히 받게되였고 그래서 그 화 풀이를 나에게 한 것이 였다.

의무실에와서 치료를 받으면서 군의관도 놀라고 나도 또 한번 놀랐습니다.
입안이 터저서 엉망이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 그리고 코와 입술이 또한 부어서 형체가 완전히 바뀌여저 버렸습니다.
그순간 나는 마음을 다구처 먹었습니다.
나는 원래 학교에서는 말썽은 피웠지마는 그러나 의리를 중요시하고 살아 왔습니다.
또한 나는 누가 나를 인정해 주면 그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훈련이 잘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조국이 나를 인정해줘서 많은 동료중에서 작전 잘한다고 쫄병인 나를 찾는다는 사실이 자부심으로 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얻어 터지면서도 쓸어지지 않고 견뎌낸 사실에 대해서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므로 인해서 이제부터는 하루 빨리 나의 안일을 위해서 빠저 나온 말도 섬으로 다시돌아가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작전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기 시작하니 무진장 얻어 트진 상태에서도 때린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이 싹 없어지면서 그들을 통해서 내 마음을 바뀌여 졌으니 오히려 그들이 고맙기까지 했다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본부가 싫어졌고 빨리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말도 일선 파견대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때렸든 행정과장에게 빨리 섬으로 보내달라고 했을 때 무척 당황해하고 망설인다,
어차피 내가 섬으로 다시 나가는 문제는 네꼬부대장과 우리 정보부대부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나 내가 기합을 받았다는 사실을 높은분 들에게 보고 할가봐 겁을 집어먹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바뀐 사실을 다 이야기 했을 때 오히려 잠시 높은 분의 책망을 듣고 흥분 상태에서 구타를 하게 되였노라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시 말도섬으로 빨리 갈수 있도록 주선해 줘서 7일만에 인천에서 공작선을 타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나왔든 말도섬 파견대로 뒤돌아 갔다.
이미 내가 다시 온다는 소식을 무선을 통해서 듣고 많은 선후배들이 말도 조그마한 섬 선착장으로 몰려 나왔다.
잠시 동안이 였지마는 그동안 그리웠든 얼굴들이였다.
모두의 인사가 “ 야! 태원이 후방 갔다 오드니 살쪄 왔네, 서울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는것이다.
그렇타고 싫큰 얻어 트져서 얼굴이 부었다는 이야기는 할수 없었다.

나는 더욱 악해지기 시작하였고 그래야만 죽음을 동반한 수많은 작전에서 내가 살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너무 잘 알기에 최고로 잔인해지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었다.
때로는 선임자들 까지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