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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다니다 쇼핑한 글임(실미도관련)
최**
|Views 403
|2004.02.05
1월 31일 영화 실미도가 드디어 한국영화 신기록을 세웠다.
전국 관객 835만을 넘어 서서 앞으로 이 신기록이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고 한다.
너무나 극적이었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었던 데에다 영화 자체의 극본 또한 탄탄했고, 홍보 활동을 비롯한 영업 전략도 성공적이었다는 등 각종 찬사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당시의 실미도 사건과 영화 속의 이야기가 다소 차이가 나는 점이 있어서...
누군가가 한 번은 정리를 해 주어야 사람들의 혼동이 덜할 것 같아서 감히 한 번 정리를 시도해 보았다.
----------------------------
이 사건의 발단은 영화에서도 잠깐 다루었듯이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
<1967. 4 . > 북한, 남파 공작부대 124군부대 창설
-- 총 8기지 2,400명 규모 (1개 기지 병력은 300명씩)
<1968. 1. 5> 북한 124군 제6기지 유격장교 25명, "청와대 습격 모의훈련" 실시
-- 6기지는 서울경기 침투 담당 특수부대임 --
<1968. 1. 14> 25명을 31명으로 증원하여 2일간 마지막 사격훈련 실시
<1968. 1. 17> "경기도 유격사령부" 견장을 단 우리 국군 복장으로 김신조 등 31명이 남쪽으로 출발함
-- 1999년 6월부터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apos김신조침투로&apos가 공개되어 안보교육에 활용됨
<1968. 1. 20> 청와대 근방에서 우리 나라 군경과 교전 중 김신조는 생포되고 많은 수가 사살되었으나 일부는 계속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함.
-- 밤 10시 서울 세검동 자하문 초소에서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탄에 순직함.
-- 또 이날 밤 전투에서 민간인 5명 사망하고 경찰 2명 부상함.
<1968. 1. 21> 군경 합동 수색단에서 서울 경기 지방의 무장공비 소탕작전 개시.
-- 청와대 뒷산 등에서 계속 작전 수행.
<1968. 1. 23> 원산 앞 바다 공해상에서 미국 군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에게 끌려가는 사건 발생함.
-- 남북한 문제가 연속적으로 며칠간 전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함.
<1968. 1. 31> 무장공비 소탕 작전 종료.
-- 1명(김신조)생포, 27명 사살, 3명(박재경 등) 놓침
<1968. 2>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우리 국군 직할의 북파 공작원 부대 창설 결심
-- 미군 관리의 국군 북파 공작원 부대는 있었으나 우리 군 관리는 없었음.
<1968. 4> 실미도에 공군 소속 제 2325전대 209 파견대(일명 684부대) 창설함. -중앙정보부 예산 지원-
-- 파견대장 김준웅 상사, 소대장 김방일 중사. 훈련병은 김신조 일당과 같은 수로 31명으로 출발함
※ 영화에서는 전원 범죄자 출신이나, 실제는 절반 정도가 범죄자 아닌 일반인 출신이었음
※ 영화 속의 훈련 장면은 극기훈련 수준에 불과한 것임. 실제 훈련 강도는 훨씬 더 강했음
※ 훈련기간 중 사망자는 모두 7명. 나중에는 24명으로 줄어 들게 됨
---- 1명은 바다 수영 훈련 중 익사함.
---- 1명은 상관에게 대드는 하극상 항명 사건으로 몰매 맞아 죽음
---- 2명은 실미도에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즉결 처분 처형.
---- 3명은 무의도로 넘어 가서 무의분교의 여교사를 집단 강간하다가 잡혀 와서 총살.
※영화에서는 줄타기하다가 떨어져서 1명이 죽고..
※강간하다가 들켜서 2명이 자결하는 것만 보여 줌. 상당히 축소된 것임
<1970. 10>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실미도 684부대 해체 결정. 예산 지원 중단함.
-- 그동안 지급되던 훈련병 봉급 중단, 부식은 갈비에서 단무지와 보리밥으로 변경
-- 폭탄으로 고기잡아 구워 먹기도 하고 양귀비 재배하여 부족한 약품을 보충하기도 함
-- 서서히 불만감 고조됨
<1971. 8. 22>일요일. 684부대장 김준웅 준위와 소대장 김방일 중사, 육지로 나와 인천의 모 병원 방문함
-- 실미도 훈련병의 유탄에 부상 당한 무의도 어민에 대한 병 문안이었음.
★ 연안부두에서 실미도행 배가 막 출발했을 때, 김준웅 부대장이 김방일 중사의 약혼녀가 인천으로 찾아 왔다는 무전 전화를 받음
-- ★ “야, 허준호! 아니 김 중사! 너 약혼녀 왔단다. 오늘 그냥 인천 있다가 내일 들어 올래?”
-- ★ 김방일 중사, “넷, 감사합니다!” 바로 바다에 다이빙하여 헤엄 쳐서는 약혼녀 만나러 연안부두로 돌아감. *^.^*
※ 영화에서는 허준호가 높은 사람들 만나러 멋있게 출장가는 것으로 되었으나 ....
※김중사의 목숨을 살린 이 때의 다이빙 장면도 "20세기 최고의 다이빙"으로 기록될 만한 멋있는 것이었음
<1971. 8. 23> 실미도 사건 발생
05:00 훈련병들, 일제히 활동 개시
-- 부대장 김준웅의 숙소에 침입, 단검과 망치로 때리고 카빈 총으로 무전기를 박살냄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멋있게 권총자살함 -
-- 기간병 내무반에 들어 가서 카빈으로 난사, 대부분 자다가 죽음,
-- 1명은 변소 갔다가 총 소리 듣고 똥통 속으로 들어 가서 살아 났고,
-- 1명은 평소 두꺼운 이불 체질이라, 그 이불 때문에 살아 났고,
-- 바다 쪽으로 도망 가던 5, 6명 중 대부분은 총에 맞거나 익사하였으나
-- 그 중 1명은 실미도 앞 돌섬까지 무사히 헤엄쳐 와서 살아 났음.
-- 또 2명은 바닷가 수많은 바위 뒤에 꽁꽁 숨어서 살아남.
-- 용감한 기간병 1명은 훈련병 2명을 사살한 뒤에 총 맞아 죽었고..
-- 실미도를 점령한 훈련병들.., 아침도 먹고...
-- 신나게 노래하며 한바탕 환호하고 놀다가.....
06:30 지나가던 6톤급 어선을 총으로 위협하여 세워서는 배를 타고 실미도를 빠져 나감.
--★ 외박으로 안 돌아 온 김방일 중사에게 일부 훈련병이 쪽지를 남기고 실미도를 떠남
== “소대장님,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쪽지 내용에서 훈련병들의 착잡한 심경이 보이는 듯함.
=== 기간병 생존자는 이불 속 및 화장실, 바위 뒤와 돌섬에 몸을 숨긴 5명과 간밤에 인천서 안 돌아온 소대장 김방일 중사 등 모두 6명임.
10:00 김재명 대간첩대책본부장 공식 기자회견
- "무장공비 남파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휴전선 및 강화도로 침투한 무장공비 14명 중 10명 사살했다.."
-- 너무 자주 듣는 소리라 많은 시민들은 반신반의하거나 아예 무관심.
-★- 같은 시간에 북한적십자사가 또 다음 내용을 발표함
-- “26일 대한적십자사의 문서를 받을 연락원을 2명 파견할 것이다”--
== 남북관계에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실미도 훈련병들은 불안해 했었다. 실미도를 막 떠난 지금은 신경도 안 쓰지만--
12:10 실미도 훈련병들. 무의도에서 24톤 안강망어선으로 바꿔 타고 송도 초소 앞 500미터 지점 상륙함
-- 얼룩무늬 예비군복 차림에 “중앙 유격사령부”라는 견장을 착용
★ 1. 21 사건 때 북한의 김신조 일당의 견장은 "경기도 유격사령부"였다
-- 상륙 후 송도 해안에서 일부는 해수욕 온 기분도 내 보고 잠깐 놀다가 “이젠 슬슬 가 보자”며 일어 섰다.
---★ 그 때만 해도 인천 송도는 엄청 손님이 많은 해수욕장이었다
-- 해안 초소에서 근무하던 김형운 일병이 용감하게 “누구냐”고 했더니
---- “어떤 놈은 바다를 기며 훈련하고, 어떤 놈은 바닷바람을 쐬며 초소근무하냐”
----“우리는 특수부대인데 해상침투 훈련 중”이라며 다들 중얼중얼대면서 지나갔다는데...
※ 영화에서는 초소 김일병이 총 맞아 죽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의 김일병은 “21명이 지나갔다”면서 2 번이나 착실하게 보고했다.
-- 민가에서 통일화 신발 하나를 그냥 가지고 가려다가 주인이 뭐라 그러자 500원 주고 감.
-- 송도 옥골고개에서 해수욕객 상대 떡장수 할머니(70)에게 떡 1,700원어치 사 먹고 돈 2,000원을 주고 감.
-- 그리고 숲 속에 LMG 총 1정과 실탄 1상자(250발) 숨겨 두고 떠나 감
☆ 이 상자는 곧 동네 아이 이염호 군(16)에게 13시 30분 경 발견됨
12:53 인천 시내로 가던 항도교통 시내버스에게 총을 들고 서라고 함.
-- 경기 영 5-2373 기사 임명오(30), “군인들이 총 들고 장난을 다 치네” 웃으면서 차 세움
-- 실미도 군인 중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지휘자인 듯 했다고 함.
-- ★ 이원희(23) 소위, 병력 24명 인솔하여 즉각 출동. 괴한(?)들 버스에 타는 걸 목격.
-- 버스가 500미터 정도 갔는데, 이원희 소위가 버스 뒤에서 주책없이 용감하게(?) 공포탄 2발 발사한다
★★★ 이것이 육지에서의 첫 총소리였으며 앞으로 전개될 대참극의 시작이었다.
☆☆☆ 육지에서마저 그 지겨운 총소리를 들은 실미도 군인들, 눈이 확 뒤집혀졌다
---- 그래도 실미도 군인들, 침착하게 우문국 씨(54. 전 인천박물관장) 등 승객 6명과 버스기사, 여차장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하고서는..
--- 즉각 버스 밖으로 총을 응사한다. 쌍방 500발의 총알이 오고 갔다.
--- ☆옥련이발소 앞에서 놀던 김은희(5) 총탄에 사망
--- ☆최성기(23) 하사 복부에 관통상, 전용하(24) 병장 왼쪽 어깨에 찰과상
---이 때 버스 안에서 실미도 군인도 2명 사망함.
-- 버스 기사도 오른팔 부상... 실신
-- 실미도 군인 중 공군소위 출신 김종철(29)이 대신 운전함
-- 첫 교전 후 버스에서는 “프린스호텔로 가자”“인천한일은행으로 가자” 설왕설래하다가
-- 모 중학교 2학년 장 모 군(15)에게 “서울로 가는 길이 어디냐”라고 질문을 하기도 함
-- 버스는 학익동- 용현동-숭의로터리-제물포역-석바위까지 갔는데
-- 버스 오른쪽 뒷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하차함.
-- ☆ 이 시내버스에는 군복 입은 사망자 2명과 중상자 2명을 남겼음
-- 약 10분간 버스를 기다리다가 서울 방면으로 가는 급행시외버스를 정지시킴
-★- 이 날 제물포고 박정윤 선생(부천 거주),수원여고 양숙자 선생과 함께 이 버스를 타고 가던 안양공고 배대기 선생이 갑자기 "앗, 뭘 놓고 왔다"면서 이 정거장에서 후다닥 일어서서 내렸다는데, 버스에 올라타는 실미도 군인들과 옷깃을 강하게 스침.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난다고 함.(계속 타고 가던 박정윤 선생은 부상 입원, 양숙자 선생은 사망으로 운명이 갈린다)
-- 영등포 경유 수원 가는 이 태화여객 경기 영 5-1681(기사 정영소. 38), 드디어 서울 방향으로 출발함
--운전기사가 고의적으로 천천히 운전하자 실미도 군인(김종철로 추정됨)이 핸들을 잡고 같이 운전, 이를 본 어느 여자승객이 "운전은 그냥 혼자 하게 내버려 두지" 야단치는 바람에 운전기사가 혼자 운전해 감.
--실미도 군인들, "몇 년간 휴가도 못 가고 보리밥만 먹었다", "후배 군인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는 등 왁자지껄함.
-- “중앙청 가자”“국회 가자”며 자기네들끼리 계속 정처없이 떠들고 있음
★★ 이 버스에서도 실미도 군인들은 승객들에게 일제히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고 계속 당부했다. 바깥에서 날아오는 만약의 총탄에 대비하여 취한 조치이다.
-★- 이 때 어떤 군인이 승객들에게 직업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 제물포고 박정윤 선생이 "나, 제고 선생이요"라 그랬더니 자기 사촌누나가 교사인데 제일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경쓰지 말고 머리 숙이고 계세요" 그러길래 머리를 팍 숙이고 있었다.
-- ★ 12개의 경찰지서와 검문소를 통과하여 소사까지 15km 가량을 그냥 신나게 달림.
-- ★ 운전기사 정영소 씨, ‘우리나라 검문체계 왜 이 따위냐’ 속으로 계속 투덜댐.
-- 동인천경찰서 김창원 순경, 사이카로 인천 석바위에서부터 계속 따라 오다가....
-- 소사검문소에서 드디어 버스를 앞질러 용감하게 가로막다가 등에 총을 맞고 즉사함.
13:25 신앙촌입구 검문소에서 또 경찰 1명 부상
-- 제1, 제2, 서울대교는 바리케이드로 차단
-- 군 경 예비군 및 장갑차 1대와 헬리콥터 2대가 동원됨
13:30 "정체불명 무장괴한 20 여명 인천에서 서울로 진입중"이라고 방송에서 보도됨
-- 영등포 문래동 방림방적 앞에서 착실하게 교통신호 기다리던 중.... (이 때 큰 트럭 1 대도 버스 옆에서 함께 교통신호 기다렸음 )
---- 이 때 실미도 군인들 약간 한눈 파는 사이에 운전기사가 비상구를 열고 도망 가서 인근 파출소에 쏙 들어 감.
-- ★ “저를 믿고 버스 탄 승객 분들에게 미안해용” 나중에 기자들에게 사과함.
-- ☆ 참, 그 때 버스는 운전기사석 옆에도 비상구 문이 있었음. --
-- 실미도 군인 중 김종철(29)이 오른 손에 총 들고 왼 손만으로 버스를 비틀비틀 운전하면서 대방동 로터리 방면으로 계속 주행.
전국 관객 835만을 넘어 서서 앞으로 이 신기록이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고 한다.
너무나 극적이었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었던 데에다 영화 자체의 극본 또한 탄탄했고, 홍보 활동을 비롯한 영업 전략도 성공적이었다는 등 각종 찬사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당시의 실미도 사건과 영화 속의 이야기가 다소 차이가 나는 점이 있어서...
누군가가 한 번은 정리를 해 주어야 사람들의 혼동이 덜할 것 같아서 감히 한 번 정리를 시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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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발단은 영화에서도 잠깐 다루었듯이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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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4 . > 북한, 남파 공작부대 124군부대 창설
-- 총 8기지 2,400명 규모 (1개 기지 병력은 300명씩)
<1968. 1. 5> 북한 124군 제6기지 유격장교 25명, "청와대 습격 모의훈련" 실시
-- 6기지는 서울경기 침투 담당 특수부대임 --
<1968. 1. 14> 25명을 31명으로 증원하여 2일간 마지막 사격훈련 실시
<1968. 1. 17> "경기도 유격사령부" 견장을 단 우리 국군 복장으로 김신조 등 31명이 남쪽으로 출발함
-- 1999년 6월부터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apos김신조침투로&apos가 공개되어 안보교육에 활용됨
<1968. 1. 20> 청와대 근방에서 우리 나라 군경과 교전 중 김신조는 생포되고 많은 수가 사살되었으나 일부는 계속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함.
-- 밤 10시 서울 세검동 자하문 초소에서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탄에 순직함.
-- 또 이날 밤 전투에서 민간인 5명 사망하고 경찰 2명 부상함.
<1968. 1. 21> 군경 합동 수색단에서 서울 경기 지방의 무장공비 소탕작전 개시.
-- 청와대 뒷산 등에서 계속 작전 수행.
<1968. 1. 23> 원산 앞 바다 공해상에서 미국 군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에게 끌려가는 사건 발생함.
-- 남북한 문제가 연속적으로 며칠간 전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함.
<1968. 1. 31> 무장공비 소탕 작전 종료.
-- 1명(김신조)생포, 27명 사살, 3명(박재경 등) 놓침
<1968. 2>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우리 국군 직할의 북파 공작원 부대 창설 결심
-- 미군 관리의 국군 북파 공작원 부대는 있었으나 우리 군 관리는 없었음.
<1968. 4> 실미도에 공군 소속 제 2325전대 209 파견대(일명 684부대) 창설함. -중앙정보부 예산 지원-
-- 파견대장 김준웅 상사, 소대장 김방일 중사. 훈련병은 김신조 일당과 같은 수로 31명으로 출발함
※ 영화에서는 전원 범죄자 출신이나, 실제는 절반 정도가 범죄자 아닌 일반인 출신이었음
※ 영화 속의 훈련 장면은 극기훈련 수준에 불과한 것임. 실제 훈련 강도는 훨씬 더 강했음
※ 훈련기간 중 사망자는 모두 7명. 나중에는 24명으로 줄어 들게 됨
---- 1명은 바다 수영 훈련 중 익사함.
---- 1명은 상관에게 대드는 하극상 항명 사건으로 몰매 맞아 죽음
---- 2명은 실미도에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즉결 처분 처형.
---- 3명은 무의도로 넘어 가서 무의분교의 여교사를 집단 강간하다가 잡혀 와서 총살.
※영화에서는 줄타기하다가 떨어져서 1명이 죽고..
※강간하다가 들켜서 2명이 자결하는 것만 보여 줌. 상당히 축소된 것임
<1970. 10>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실미도 684부대 해체 결정. 예산 지원 중단함.
-- 그동안 지급되던 훈련병 봉급 중단, 부식은 갈비에서 단무지와 보리밥으로 변경
-- 폭탄으로 고기잡아 구워 먹기도 하고 양귀비 재배하여 부족한 약품을 보충하기도 함
-- 서서히 불만감 고조됨
<1971. 8. 22>일요일. 684부대장 김준웅 준위와 소대장 김방일 중사, 육지로 나와 인천의 모 병원 방문함
-- 실미도 훈련병의 유탄에 부상 당한 무의도 어민에 대한 병 문안이었음.
★ 연안부두에서 실미도행 배가 막 출발했을 때, 김준웅 부대장이 김방일 중사의 약혼녀가 인천으로 찾아 왔다는 무전 전화를 받음
-- ★ “야, 허준호! 아니 김 중사! 너 약혼녀 왔단다. 오늘 그냥 인천 있다가 내일 들어 올래?”
-- ★ 김방일 중사, “넷, 감사합니다!” 바로 바다에 다이빙하여 헤엄 쳐서는 약혼녀 만나러 연안부두로 돌아감. *^.^*
※ 영화에서는 허준호가 높은 사람들 만나러 멋있게 출장가는 것으로 되었으나 ....
※김중사의 목숨을 살린 이 때의 다이빙 장면도 "20세기 최고의 다이빙"으로 기록될 만한 멋있는 것이었음
<1971. 8. 23> 실미도 사건 발생
05:00 훈련병들, 일제히 활동 개시
-- 부대장 김준웅의 숙소에 침입, 단검과 망치로 때리고 카빈 총으로 무전기를 박살냄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멋있게 권총자살함 -
-- 기간병 내무반에 들어 가서 카빈으로 난사, 대부분 자다가 죽음,
-- 1명은 변소 갔다가 총 소리 듣고 똥통 속으로 들어 가서 살아 났고,
-- 1명은 평소 두꺼운 이불 체질이라, 그 이불 때문에 살아 났고,
-- 바다 쪽으로 도망 가던 5, 6명 중 대부분은 총에 맞거나 익사하였으나
-- 그 중 1명은 실미도 앞 돌섬까지 무사히 헤엄쳐 와서 살아 났음.
-- 또 2명은 바닷가 수많은 바위 뒤에 꽁꽁 숨어서 살아남.
-- 용감한 기간병 1명은 훈련병 2명을 사살한 뒤에 총 맞아 죽었고..
-- 실미도를 점령한 훈련병들.., 아침도 먹고...
-- 신나게 노래하며 한바탕 환호하고 놀다가.....
06:30 지나가던 6톤급 어선을 총으로 위협하여 세워서는 배를 타고 실미도를 빠져 나감.
--★ 외박으로 안 돌아 온 김방일 중사에게 일부 훈련병이 쪽지를 남기고 실미도를 떠남
== “소대장님,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쪽지 내용에서 훈련병들의 착잡한 심경이 보이는 듯함.
=== 기간병 생존자는 이불 속 및 화장실, 바위 뒤와 돌섬에 몸을 숨긴 5명과 간밤에 인천서 안 돌아온 소대장 김방일 중사 등 모두 6명임.
10:00 김재명 대간첩대책본부장 공식 기자회견
- "무장공비 남파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휴전선 및 강화도로 침투한 무장공비 14명 중 10명 사살했다.."
-- 너무 자주 듣는 소리라 많은 시민들은 반신반의하거나 아예 무관심.
-★- 같은 시간에 북한적십자사가 또 다음 내용을 발표함
-- “26일 대한적십자사의 문서를 받을 연락원을 2명 파견할 것이다”--
== 남북관계에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실미도 훈련병들은 불안해 했었다. 실미도를 막 떠난 지금은 신경도 안 쓰지만--
12:10 실미도 훈련병들. 무의도에서 24톤 안강망어선으로 바꿔 타고 송도 초소 앞 500미터 지점 상륙함
-- 얼룩무늬 예비군복 차림에 “중앙 유격사령부”라는 견장을 착용
★ 1. 21 사건 때 북한의 김신조 일당의 견장은 "경기도 유격사령부"였다
-- 상륙 후 송도 해안에서 일부는 해수욕 온 기분도 내 보고 잠깐 놀다가 “이젠 슬슬 가 보자”며 일어 섰다.
---★ 그 때만 해도 인천 송도는 엄청 손님이 많은 해수욕장이었다
-- 해안 초소에서 근무하던 김형운 일병이 용감하게 “누구냐”고 했더니
---- “어떤 놈은 바다를 기며 훈련하고, 어떤 놈은 바닷바람을 쐬며 초소근무하냐”
----“우리는 특수부대인데 해상침투 훈련 중”이라며 다들 중얼중얼대면서 지나갔다는데...
※ 영화에서는 초소 김일병이 총 맞아 죽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의 김일병은 “21명이 지나갔다”면서 2 번이나 착실하게 보고했다.
-- 민가에서 통일화 신발 하나를 그냥 가지고 가려다가 주인이 뭐라 그러자 500원 주고 감.
-- 송도 옥골고개에서 해수욕객 상대 떡장수 할머니(70)에게 떡 1,700원어치 사 먹고 돈 2,000원을 주고 감.
-- 그리고 숲 속에 LMG 총 1정과 실탄 1상자(250발) 숨겨 두고 떠나 감
☆ 이 상자는 곧 동네 아이 이염호 군(16)에게 13시 30분 경 발견됨
12:53 인천 시내로 가던 항도교통 시내버스에게 총을 들고 서라고 함.
-- 경기 영 5-2373 기사 임명오(30), “군인들이 총 들고 장난을 다 치네” 웃으면서 차 세움
-- 실미도 군인 중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지휘자인 듯 했다고 함.
-- ★ 이원희(23) 소위, 병력 24명 인솔하여 즉각 출동. 괴한(?)들 버스에 타는 걸 목격.
-- 버스가 500미터 정도 갔는데, 이원희 소위가 버스 뒤에서 주책없이 용감하게(?) 공포탄 2발 발사한다
★★★ 이것이 육지에서의 첫 총소리였으며 앞으로 전개될 대참극의 시작이었다.
☆☆☆ 육지에서마저 그 지겨운 총소리를 들은 실미도 군인들, 눈이 확 뒤집혀졌다
---- 그래도 실미도 군인들, 침착하게 우문국 씨(54. 전 인천박물관장) 등 승객 6명과 버스기사, 여차장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하고서는..
--- 즉각 버스 밖으로 총을 응사한다. 쌍방 500발의 총알이 오고 갔다.
--- ☆옥련이발소 앞에서 놀던 김은희(5) 총탄에 사망
--- ☆최성기(23) 하사 복부에 관통상, 전용하(24) 병장 왼쪽 어깨에 찰과상
---이 때 버스 안에서 실미도 군인도 2명 사망함.
-- 버스 기사도 오른팔 부상... 실신
-- 실미도 군인 중 공군소위 출신 김종철(29)이 대신 운전함
-- 첫 교전 후 버스에서는 “프린스호텔로 가자”“인천한일은행으로 가자” 설왕설래하다가
-- 모 중학교 2학년 장 모 군(15)에게 “서울로 가는 길이 어디냐”라고 질문을 하기도 함
-- 버스는 학익동- 용현동-숭의로터리-제물포역-석바위까지 갔는데
-- 버스 오른쪽 뒷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하차함.
-- ☆ 이 시내버스에는 군복 입은 사망자 2명과 중상자 2명을 남겼음
-- 약 10분간 버스를 기다리다가 서울 방면으로 가는 급행시외버스를 정지시킴
-★- 이 날 제물포고 박정윤 선생(부천 거주),수원여고 양숙자 선생과 함께 이 버스를 타고 가던 안양공고 배대기 선생이 갑자기 "앗, 뭘 놓고 왔다"면서 이 정거장에서 후다닥 일어서서 내렸다는데, 버스에 올라타는 실미도 군인들과 옷깃을 강하게 스침.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난다고 함.(계속 타고 가던 박정윤 선생은 부상 입원, 양숙자 선생은 사망으로 운명이 갈린다)
-- 영등포 경유 수원 가는 이 태화여객 경기 영 5-1681(기사 정영소. 38), 드디어 서울 방향으로 출발함
--운전기사가 고의적으로 천천히 운전하자 실미도 군인(김종철로 추정됨)이 핸들을 잡고 같이 운전, 이를 본 어느 여자승객이 "운전은 그냥 혼자 하게 내버려 두지" 야단치는 바람에 운전기사가 혼자 운전해 감.
--실미도 군인들, "몇 년간 휴가도 못 가고 보리밥만 먹었다", "후배 군인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는 등 왁자지껄함.
-- “중앙청 가자”“국회 가자”며 자기네들끼리 계속 정처없이 떠들고 있음
★★ 이 버스에서도 실미도 군인들은 승객들에게 일제히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고 계속 당부했다. 바깥에서 날아오는 만약의 총탄에 대비하여 취한 조치이다.
-★- 이 때 어떤 군인이 승객들에게 직업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 제물포고 박정윤 선생이 "나, 제고 선생이요"라 그랬더니 자기 사촌누나가 교사인데 제일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경쓰지 말고 머리 숙이고 계세요" 그러길래 머리를 팍 숙이고 있었다.
-- ★ 12개의 경찰지서와 검문소를 통과하여 소사까지 15km 가량을 그냥 신나게 달림.
-- ★ 운전기사 정영소 씨, ‘우리나라 검문체계 왜 이 따위냐’ 속으로 계속 투덜댐.
-- 동인천경찰서 김창원 순경, 사이카로 인천 석바위에서부터 계속 따라 오다가....
-- 소사검문소에서 드디어 버스를 앞질러 용감하게 가로막다가 등에 총을 맞고 즉사함.
13:25 신앙촌입구 검문소에서 또 경찰 1명 부상
-- 제1, 제2, 서울대교는 바리케이드로 차단
-- 군 경 예비군 및 장갑차 1대와 헬리콥터 2대가 동원됨
13:30 "정체불명 무장괴한 20 여명 인천에서 서울로 진입중"이라고 방송에서 보도됨
-- 영등포 문래동 방림방적 앞에서 착실하게 교통신호 기다리던 중.... (이 때 큰 트럭 1 대도 버스 옆에서 함께 교통신호 기다렸음 )
---- 이 때 실미도 군인들 약간 한눈 파는 사이에 운전기사가 비상구를 열고 도망 가서 인근 파출소에 쏙 들어 감.
-- ★ “저를 믿고 버스 탄 승객 분들에게 미안해용” 나중에 기자들에게 사과함.
-- ☆ 참, 그 때 버스는 운전기사석 옆에도 비상구 문이 있었음. --
-- 실미도 군인 중 김종철(29)이 오른 손에 총 들고 왼 손만으로 버스를 비틀비틀 운전하면서 대방동 로터리 방면으로 계속 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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