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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실미도 교육대장 김순웅 상사를 회고하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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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31

김순웅상사의 사진을 보노라니 옛 추억이 뒤 살아나네요.
오류동 에서는 알려 지지 않았든 엄청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덧 고개 육군 특수부대 습격 사건”
지금이야 인천에서 서울로 갈려면 여러 방면으로 고속도로 또는 국도를 이용할수 있지마는 50년대 그때는 기껏 인천-부평-소사-오류동-영등포-한강 다리(하나 밖에 없었음)를 건너서 서울로 가는 국도 하나 밖에 없을 때였다.
영등포 서울간 전차들이 한강을 한가롭게 건너 다니든 시절,
오죽 했으면 나는 멋을 부리느라고 모시 바지 저고리 속에 권총을차고(밖에서 봐도 모시 적삼 속에 비치는 권총) 부채 하나를 쥐고 여름에 종로 거리를 어설렁 어설렁 활보 하면서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고 설치고 다닐 때 였으니 ………………
내 나이 스믈 네살때가 전성 시기였든 것 갔다.

그 당시 나는 항상 부채를 들고 다녔다,
하얀 모시 바지 저고리에는 부채가 어울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의기 양양 했든지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군용 집차나 민간인 차든간에 모두 내 자가용과 같았다.

내가 들고 있는 부채를 땅밑을 향해서 정지 신호를 하면 아무 자동차든지 내 앞에 찍---하고 정지하든 시절........
특수 부대원이라면(건들어 놓으면 시끄러워서) 꼼작을 못하든 암울한 시대 였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런 영화의 한장면과 같은 시대 이야기를 할려고 한다,

그때가 어느 봄날인걸로 기억된다.
우리 특수부대원 30명은 고된 훈련으로 피곤에 지쳐서 깊이 잠들어 있는데 느닷없이 비상이 걸렸다.
새벽 2시 …………
몇시간전에 우리 대장이신 김종걸 대위님께서 인근 덧고개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특수부대원들에게 술집에서 망신을 당했다는것이다.
그 특수부대는 중대 병력인데 바로 덧 고개(오류동에서 영등포 방면으로 약 500메터쯤 거리, 나중에는 그 건물이 우리 락하산 교육장이 되였지마는)에 주둔 하고 있었다.

여태끝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든 실력들을 써 먹지 못해서 모두가 몸이 근질 근질해 있든 참이라…….
이때다 하고 눈을 부비면서 특수부대를 향해 달려 갔다.
우리는 총과 칼 또는 몽둥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맨 몸으로 달려갔다.

먼저 보초를 서고 있는 위병소를 제압 했다.

드디여 고요히 잠들어 있는 각 내무반을 향해서 동작이 제일 빨랐든 김순웅 상사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비상” “비상” “삣쌍”
이미 전등불을 모두 부셔 버린 칠흙 같이 어두운 캄캄한 각 내무반과 복도,
“비상” 이라는 소리에 놀라서 허겁 지겁 옷을 줏어 들고 나오는 대원들을 문앞에서 나오는 순서대로 무조건 박살을 내기 시작 삽시간에 온 부대를 평정 해 버렸다.

100여명의 부대원들은 완전히 초 죽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을 두고 아비 규환이라고 하는것인가?
차츰 먼동이 터 오기 시작 했다.………….

흡사 전쟁터와 같은 아비 규환,
얼마지 않아서 어떻게 연락이 되였는지 육군헌병 백차와 육군병원 암브란스가 싸이렌을 울리면서 달려와서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싣고 가는것을 봤다.

우리는 큰 작전이라도 성공한것처럼 대오를 지어서 의기 양양 하게 군가 까지 부르면서 부대로 돌아 왔다.

그런데 드디여 올 것이 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부대가 뒤숭숭하고 우리는 모두 쫏기다 싶이 개봉동 (첩보부대 뒷산 계곡)에 천막으로 가 건물을 세우고 상엄한 경비 속에서 그곳에서 한달간 외출 금지를 당한체 죽도록 고생스러운 훈련과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마는 그날밤 난동을 통해서 많은 상대방 군인들이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비록 총이나 칼, 몽둥이는 사용 안했다고는 하나 아무튼 잠자다가 졸지에 당한 그들이기에 손 한번 못써보고 당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생겼겠는가?
우리는 모두 일당 백으로 훈련받은 북파 요원들인데…………

여기에 책임을 물어서 많은 상급자와 우리 모두가 희생을 당할뻔 했는데 부대의 특수성 때문에 양쪽이 다 잘못이 인정되여 높은 분들 몇분만 희생을 당했든 모양이다.

또한 이런 상황 모두가 군사 기밀 이기에 쉬쉬 하는 가운데
사고를 친 우리 부대원 모두 적지에 침투 한걸로 하기 위해서 한달간 외출을 금지 시키고 개봉동으로 격리 시켰든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태는 일단락 되였으나 앞으로 또 다시 일어날 사고를(복수) 미연에 방지 한다는 차원에서 그 부대는 그곳에 온지 한달 만에 결국 다른 지역으로 떠나 가 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마는 그자리에 우리 락하산 교육대가 들어선 것이다.

아마 1960년대에 서울 인천간 기차를 타고 다녔든 후배님들은 기억할것이다.
오류역을 500메터 앞에두고 오른쪽 편에 락하산 쩜프 훈련장이 보이고 오류역 왼쪽편에 산이 보이고 산등성이 여러곳에 써치라이트로 감싸 있는 산속 건물이 우리 2325부대 본부이였며(네꼬부대와 합동으로) 산등성이에 몇 개의 안테나가 있는곳이 통신소였다.


지금도 그날 생각만하면 가슴이 두근 그린다.

날쎈 재비같이 설쳤든 그 였는데...........
실미도에서 허망하게 당했든 김순웅 상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우리 작업복 유행이 바지 가랭이가 다리에 딱 붙는 맘보 바지 스타일이 였다, 원래 군인 들은 워커 구두에는 작업복 바지 밑에 윙을 넣어야 하는데 나는 항상 윙을 넣지 않고 바지 밑에서부터 세겹정도를 겹처 올려 입고 다녔는데 순웅이도 내 바지 폼이 멋 있다고 딸아서 바지를 겹처 입고 다녔다.

얻어 터지기도 하면서도 끝내 고집 스럽게 세겹 겹쳐 입는 맘보 바지를 입고 다녔기 때문이였을까?

그러기에 실미도 영화 시사회때 마즈막 장면 김순웅 대장이(안성기 분)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쏠때 나는 통곡이 튀여 나왔든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춘호님이 올린 그의 사진을 보니 ........
가슴이 미여 질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