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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의리 의 날 강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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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1

지금도 생각하면 아주 챙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질수 밖에없는 몇가지 지난 날의 일들을 고백 할려고 한다.
오류동에 소재한 20특무전대 정보학교 제 6기생으로 우리 33기생중 30명이 입교를 하게 되였다.
모두가 그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바로 공군에 입대, 겨우 신병 교육을 마친 무리들이 였다.
여기서 6개월의 정보 교육이 끝나면 오류동 2325부대, 공군본부정보국 또는 공군범죄수사대(O.S.I.) 아니면 각 전투비행단 정보관계부서로 배치되게 되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30명의 동기생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두부류의 무리가 있었다.
아주 공부 잘하고 머리가 좋은 지성파가 있는반면 나 같이 공부 보다는 싸움질을 좋아하는 (운동선수들이 많았음)문제아파가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남에게 지고 못 백이는 나도 이번만은 학생회 회장자리를 한사코 싫어 했는데(그때 나는 대전항공병학교 수료식 회식 자리에서 복싱선수 출신인 안홍모라는 동기생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나를 때려서 영 얼굴이 말이 아니였음) 그 안홍모가 나서서 그날의 미안함을 만회도 할겸해서 강권적으로 나를 또 정보6기 학생회장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또 문제아들파가 정보6기를 휘여 잡게 되였다.
교육 기간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사고를 치는 가운데 정보교육 3개월쯤되였을때인것 같다.
그당시 나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에 다니고 있든 동창들은 종로 5가 뒷골목 흐름한 하숙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가난한 대학생들이 였다.

그당시 하숙집이란 아침저녁은 식사가 제공되지만 점심은 제공되지 않었기에 한참 먹을 나이인 동창들에게는 일요일이 여간 괴롭지 않았을 것이 였다.
그러나 너무 가난한 동창들이 였기에 아예 주말이면 다 모여서 내가 외출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문제아 기질이 있는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든 구해 먹여야지 (그들은 공부는 잘하되) 너무 순진해서 없으면 굶고 앉아 있기 일쑤 였다.
매주말 외출을 나가서 점심때는 그래도 싼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사발씩이라도 마시고 혜여 졌는데 그날 일요일은 돈이 한푼도 생기지를 않었다.

그래서 외출을 포기하고 말었다,
일요일 외출때는 의례히 우리 훈련생중 당번 한사람씩을 남겨두는데 오늘은 내가 남겠다고자원을 했드니 모두가 기뻐하며 다 외출을 나가고. 나 혼자서 내무반을 지키게 되였다.

화창한 좋은 날!
내무반에 벌렁 들어 누워 있는 내 마음이 영 우울하기만 하다.
점심을 굶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동창들의 눈망울이 하나 하나 지나 간다.
흡사 어린 참새 새끼들이 엄마 참새가 물어다줄 먹이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처절한 모습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망울속에 우리 내무반 벽에 일열로 죽 걸려 있는 훈련병들의 개인 동정복 상의들이 보인다, 그상의 속에는 밖에서는 볼수 없으나 쓰봉이 걸려 있다,
그러나 상의때문에 하의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바로 이거다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40벌의 하의들을 모두 뽑아서 정보학교 뒷 철조망 밖에서 기다리는 장사꾼을 불러서 좋은 값에 팔았고 그 돈을 들고 쏜살같이 차로 달려 종로 5가 뒷골목 동창들의 하숙집으로 뛰여 갔다.
아직도 점심을 해결못하고 나만을 기다리고있는 동창들에게 구세주 같이 내가 나타 났다. 이들에게 국밥을 배불라 사먹이고 오늘은 아예 얼큰 하도록 막걸리도 퍼 마시게 했다.
얼마나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지?????

그러나 문제는 이제 부터였다 과연 어덯게 할것인가.
우리동기생들이 귀대시간보다 먼저 부대로 돌아온 나는 꾀를 썻다.
부대 정문앞에는 대포집이 하나 있었다.
그대포집 앞에서 술판을 채려놓고 심각한 모습으로 귀대하는 동기생들을 불러 앉혔었다.
“야 술 한잔 해라.”
“ 야 태원아! 왠일이냐, 미안하다 우리 끼리 외출 나갔다와서……..”
“아니야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돌아 가셨어 , 그래서 고향에는 못가고 홧 김에
술이나 마시는거야………………..아 아………..”
“아 그랬구나 아이고 미안하다. 야, 이거 군대생활이 말이야. 어머니가 돌아 가셔도 못가고 말이 안되네………..”
이런식으로 외출 갔다오는 동기생들에게 술한잔씩 다 먹이고 부대로 들어 보냈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건네주는 위로의 술잔에 취한체 내무반에 들어왔다.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동기생이 소리를 지른다,
“야! 내 동정복 쓰봉 없어 졌다.”
“뭐야?.” “내것도” “내것도”
늘상 나를 도와주든 안홍모라는 동기생이 큰 소리로 한마티 쏘아 부쳤다.
“ 와……….. 이거는 완전히 날 강도 짓이다. 썅,
누가 내일 남대문 시장 나가서 바지만 40벌 사오너라,
기합 안받을려면 내일 저녁 점호전에 사다 걸어둬야 한다.알었나.... 썅.”

모두가 태원이 짓인줄은 알지마는 술한잔씩 얻어마신 죄와 어머님 돌아 가셨다고 심란해 하는 동기생의 마음 안건드릴려고 나를 서로 곁 눈질해 가면서도 모른체 묻어주든 고마운 동기생들 생각에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죄스럽기만 하다.
옛날 나는 왜? 그렇게 날 강도 같이 놀았을까?
하기사 날 강도인 친구 덕택에 점심에다가 술까지 얻어마신 동창들이 있었으니
결국 의리의 날 강도?

정말 “날 강도” 같은 나를 하나님은 지금도 다듬어서 필요하게 써 주시고 계심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이번 고국방문길 12월20일 청진동으로 정보부대인의 모임에 나왔든 내 33기 동기인동시에 정보학교 동기생인 성학중(공부 잘하는 학구파이기 때문인지 제대후 중앙기상대 예보부장으로 은퇴를 했음)이가 하든말이 지금도 기억 난다,
“태원아 니는 그때부터 하늘에서 놀았고 나는 땅에서 놀았짢나………….”
맞았어! 그런데 나는 항공병학교에서도 33기생 견습소대장인 내 곁에 그가 있었고 정보학교에서도 6기생속에 같이 있었으며 첫 적지 침투를 하든 동해안 오호리 파견대도 같이 나갔으며 또 말도 파견대에서도 총기 난동을 부렸을때도 같이 있었으며 나를 위로해주든 그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으니 참 묘한 인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