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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깡패중대 김상사 시대는 끝나고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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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9

깡패중대 김상사 시대는 끝나고
포항 대보의 사고로 인한 후유증은 컸다.
가까운 이웃이나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도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간단한 짐을 챙겨
신설되는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30관제경보전대 제주대대로 발령을 받고 쫏기다 싶이 포항 대보를 떠났다.
명색이 계급이 하사관이였기 때문에 중사 계급장을 달고 25명의 헌병들을 거느리는 헌병대 대장직을 맡았다.
이미 내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든 헌병들이 얼마나 나를 두려워하는지 통 나와 눈을 마주처 주지를 않는다.(사실 나는 강한자에게는 무섭고 약한자에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였음)
다만 감찰감 출신인 대대장 P소령님은 이미 내 소문을 다 듣고 있었으며 너 한번 맛좀 봐라는 식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에 도착해서 신고 할때부터 나의 기 죽이기 싸움이 시작되였다.
하시는 말씀이 오늘부터 김중사 너 버릇 내가 곤치 겠다. 너가 깡패중대 김상사란 별명을 가진 못된놈이란 thas은 다 들었다.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막 노는 모양인데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너 비록 헌병대장이지마는 여기는 군인 사회이다. 내 부하이기에 지시에 복종해야한다,
그리고 너는 앞으로 헌병이기에 권총은 차되 실탄은 장전 못하며 탄창은 항상 비여 있어야하며,
시내로 외출 할때는 나에게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한다.
야! 이거 진짜 임자 만난 다드니 정말 임자를 만난셈이다.
듣다 듣다 참을수 없어서 한마디 했다.
아니 P소령님! 여기가 어디 논산 훈련소인줄 아십니까?
그리고 경례를 부친뒤에 그냥 뛰쳐 나와 버렸다.
P소령님께서는 이때 감정이 몹시 상한 모양이였다, 그로부터 만날때마다 무조건 내가 옆구리에 차고 있는 권총 탄창구멍에 손을 넣어보고는 총알이 없으면 빙그시 웃고 지나간다.
나는 웃어야할지 화를 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도 명색이 25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헌병대장이다.
어린 아이들이 장난치는것도 아니고………..
아무리 내 강패중대 김상사의 기질을 고쳐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는 고맙지마는 나도 자존심이 있지 않는가?
가능하면 부대장인 P소령님과 부딛치지 않기로 했다, 언제 내가 갑자기 나 자신을 자제 못하고
사고를 칠까봐서 걱정이 되였기 때문이다.
우리 헌병대는 그당시 미공군 레다부대 헌병대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그러기에 미군들이 전출을 가게되면 한국공군들에게 모든 부서를 인계해주고 떠나고 있었기에 떠나는 그들의 사물함이나 옷장들은 모두 내가 인계를 받았든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헌병대 콘셋트에는 말단 헌병이라도 모두 미군들이 주고간 멋진 옷을 걸어두는 개인 옷장들이 다 있었다.
그뿐이랴 그당시 헌병대 내무반 콘세트 끝 부분에는 내 침대와 대원들이 직접 아방궁 같은 개인 침실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헌병들이 시내 순찰을 마치고돌아오면서, 울타리 없이 평화로운 제주시민들의 진열해둔 집 뜰에 미리 봐 두었든 귀중한 화분을 들고 들어와서는 내방을 치장해놓고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뿐이랴 그당시 고급 품목으로 구하기 어려운 제니스 큰 라디오를 구해 왔고 가까운 일본에서 방출하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곡조에 딸아서 변하는 오색 전등을 달아 놓고 음악에 마추어 색갈이 변하는 조명을 받아 음악을 감상하는 즐거운 시간들이 마냥 흘러가는 어느날 드디여 일은 터지고 말았다.
내가 없는 사이 이 사실을 보고받은 부대장께서 직접 헌병대 콘셋트에와서 확인을 하고 갔다.
마츰 그날이 토요일이 였다.
부대장실 근처를 지나는데 많은 군인들과 장교들이 있는 곳에서 P 소령께서 “헌병대장 김중사” 하고 불러 세우신다.
나는 무슨 영문인줄 모르고 앞에가 섰다, 먼저 부대장은 또 예외 없이 내 권총 탄창에 손가락을 찔러보고는 닷자 고짜로 하시는 말씀이 헌병대 내무반에 옷 장이 많으니 열개만 빼내서 다른 병과 내무반장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라는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못한다고 했다, 내 부하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강했다.
“명령이야!” “빨리 나누어 줘라.” 즉각적으로 “나는 그 명령 못 지키겠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보고 있다.
P소령은 여기에 신경을 쓴 탓일까. “뭐야 명령에 불복종?” 하면서 내 따귀를 쎄차게 한대 갈겼다.
느닷없이 얻어 터지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발작적으로 나도 달려 들었다.
위신을 생각했든지 나를 자기 방으로 들어 오라고 하면서 앞에서서 실내로 들어간다.
나도 용감하게 딸아 들어 갔다,
이 방안에서 두사람이 붙었다.
난장판이 되였다.
많은 장교들이 뜯어 말려서 무사히 진압은 되였지마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제가 보통 이 아니였다. 총기를 사용한 하극상 어쩌면 총살 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부대장님도 막상 이 큰 사건 앞에서 어떻게 할바를 모르고 씩씩 거리는 나를 앞에 않혀 놓고 말리던 장교들을 다 내여 보내고 나서는…. 우리 둘이서 어떻게 수습할지를 의논 하자고 했다.
내가 하는말은 “ 왜? 사람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왜 자꾸 괴롭히는거요?” 였다.
정말 나도 안타까웠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환경은 나로 하여금 가만 두지 않았다.
이제는 올곳 가지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담담할수 가 없었다.
어차피 육군 형무소로 갈바엔 멋있게 가자 였다.
드디여 부대장이 입을 열었다, 결론은 나를 일단 감옥에 보내야 되겠으며 감옥에 있는동안 계속 석방할수 있도록 손을 쓰겠다는것이다.
이때 나도 감정적으로 한마디 했다.
언젠가 감옥에서 나오면 꼭 당신을 찾겠오……………..
나는 죽어도 아무도 울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마음되로 하세요.
하고 내무반 콧셋트로 돌아 왔다. 헌병대원들은 내 소식을 듣고 불안한 마음들을 감추지 못한체갑자기 내무반 청소를 하고 있었다.
벌러덩 침대 위에 드러 누웠다.
필름처럼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그동안의 인생길이 눈에 필름처럼 지나 간다.
결국 이렇게 해서 인생이 내가 입버릇처럼 뇌이든 굵고 짧게 끝나는가보다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이상한 감촉에 눈을 떳다. 내 침대 곁에 부관인 박병효 중위가(나중에 고등고시합격 경찰총경을 거처 신민당 여수, 순천 국회의원으로 계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심)와서 나를 깨운다. 지금 부대장님께서 장교 모두와 같이 파티를 열어놓고 나를 꼭 참석 시키라고 한단다.
만약 같이 안가면 자기가 기합을 받으니 같이 가자는것이다.
그당시 박중위는 군대생활중에서도 고등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였다.
내가 그에게 커피도 날라도주고 많이 도와 드렸다.
결국 파티에 박중위 때문에 참석했으며 나를 위로 하기 위한 파티라는 것을 알었다.
그로부터 부대장님이 얼마나 나에게 잘해주든지,………… 그러나ㅜ 그동안 오산에 있는 본부 감찰감이 내려왔다 가셨고 드디여 오산 30전대 헌병 대대장님도 다녀 가셨다.
모두 한결같이 왜 근무 헌병을 때리느냐는 것이 였다.
듣기에 신났다.
그러나 사고후 2주만에 갑작스럽게 도착한 군용기에 내간단한 짐을 챙겨서 아무도 모르게 헌병대장님에게 전하는 편지 한장을 들고 오산 본부 헌병대로 올라 왔다,
이유는 내가 제주도에 있는 한은 질서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 였다.
편지를 받아본 본부 김철수 헌병대대장님은 “누가 우리 헌병을 함부로 건드러 하시면서 내가 전해드린 그편지를 좍좍 찢어 버리는 것이 였다.
정말 나에게는 은인과 같은 고마운 분이였다.
그리고 제주도의 P부대장님도 나에게는 은인과 같은 고마운 분이 였다.
얼마든지 군법회의에 회부되여 감옥에 갈번 했는대도 사랑으로 감싸주신 그분이기에 사회에 나온뒤에도 자주 만나 뵈였고 별을 하나단 준장으로 예편 큰 기업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할 때 내가 목사가 된 것을 가장 많이 축하해 주신분이시다.
그리고는 헌병대장님께서 너가 원하는곳이 어디냐? 묻기에 내 고향이 가까운 강능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꼭 제대를 시켜주십시오. 그리하여 강능헌병대로 오게 되였고
조심 조심 조용한 군대생활을 하다가 드디여 죽음을 넘나들든 나의 풍운아 같은 깡패중대 김상사 시대가 끝나고 5년 6개월만에 제대 명령을 받고 풍운아와 같은 깡패중대 김상사가 사회로 나오게 되였다.

어린 스믈두살 나이로 첫 적지 침투때 기습을 당하고 적지에서 소나무 포기를 붙잡고 하늘을 향해서 애절하게 빌며 매 달렸든 하나님께의 서원,
"하나님 날 한번만 살려 주시면 내 은혜를 꼭 갚을깨요."

지금 나는 그 하나님과의 서원을 갚아가고 있는중이다.
지금 내 나이 칠순이다,
집에서 손자 손녀를 다리고 다녀야할 나이인데 선교본부에서 나는 은퇴가 안되니 계속 남아서 일해 달라는 부탁 때문에 선교지에서 계속 뛰고 있는 이축복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가능할것인가?

지금 도리켜 생각해보면 죽음을 넘나드는 수없이 많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마다 오늘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군대 생활을 하든 5년 6개월동안 나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선후배님들이나 이웃 들이 피혜를 봤을것이다.
주님을 만나고 내 죄를 회개할때 기도를 드렸지마는 이 시간을 빌어서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며 용서를 빈다.


2003.12.09